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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사람들

2023년 1월 17일

by 행크

교토로 가족 여행을 하던 중의 어느 날 밤 시인 김삿갓이 대화의 주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아이가 김삿갓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말을 꺼내어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아이가 궁금해한 것은 왜 그 사람에게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그리고 왜 방랑을 떠났는가였다. 아이에게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를 이래저래 해주다 보니 김삿갓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자연스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연유로 김삿갓은 여행-방랑-으로 평생을 보낸 사람이고, 그리 원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그가 했던 여행의 기록은 지금까지 남아 후세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생각보다는 그리 오래전 인물이 아닌-19세기 사람이다- 까닭에 많은 일화와 시들이 남아서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슬픔을,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천재지변 같은 전염병으로 잠시 주춤하고는 있지만 ‘대 여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제외하고는 닮고 싶은 부분이 많은 까마득한 대선배님인 셈이다.


그의 본명은 따로 있지만 아무도 그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김삿갓’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그 별명 앞에 자주 ‘방랑시인’이라는 네 글자를 같이 붙여 부르곤 한다. ‘시인’이라는 말은 말할 것도 없고 ‘방랑’이라는 말도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연상하게 하는 참으로 낭만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방랑+시인’은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의 말이다. 마치 원래 한 단어였다가 어쩔 수 없는 어떤 이유로 헤어졌던 짝인 것만 같다.


생각은 또 다른 가지로 뻗어나가는데, 방랑시인이라는 근사한 칭호는 대선배님에게 바치기로 하고 지금 여행을 떠나온 나에게는 어떤 호칭 -칭호가 아니라- 이 어울릴까? 우선 떠오르는 단어는 ‘관광객’이나 ‘여행자’ 정도? 아니면 ‘나그네’?


‘관광객’이나 ‘여행자’라는 말은 참 평범하다. 이 단어들을 입 안에서 굴려 보면 마음속에서 별다른 정서적인 환기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마에 힘을 주고 좀 더 생각을 짜내보니, 유명하다는 관광지 앞에서 사진 찍고, 또 이름난 맛집에서 사진 찍으면서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 오른다. 참 평범하고, 그래서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적절한 호칭이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관광객’과 ‘여행자’ 두 단어 사이에도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설명하기 쉬운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나의 편견을 일부 담아 굳이 표현하자면, ‘관광객’이라는 말은 이미 좋다고 잘 알려진 곳을 편안하게 즐기러 가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는 되지만 시간은 많지 않은 현대인들에게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곳만 골라서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편안함과 쾌적함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비용은 기꺼이 지불할 마음을 가지고서 여행에 임하는 사람들, ‘관광객’.


이에 비해서 ‘여행자’는 커다란 트렁크보다는 배낭을 짊어진, 그리고 혼자 거나 많아도 두 명 정도인 그런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좀 많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관심을 끄는 장소나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그런 사람들, 때로는 멀리까지 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그래서 뭔가 사연도 좀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여행자’.


‘나그네’는 좀 다르다. 우선 입 안을 구르는 순우리말의 느낌이 참 좋다. 그 뒤로 따라오는 여러 가지 연상되는 이미지들도 풍부하고 재미있다. 앞에서 ‘방랑’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그 못지않게 다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어느 마을에 잠시 머물렀다 정처 없이 또 길을 떠나는 김삿갓의 뒷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방랑’이라는 말에는 운명 같은 슬픔의 정조가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떠나는 것은 그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그 결정의 원인과 과정이 결코 달갑지 않다. 그리고 그 여정이 언제 어디에서 끝날지 자신도 모른다. 자기 인생에서 꼭 해결하고 싶은 일이 있어 길을 나서지만 어떤 확신이 있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떠나야 하기 때문에, 운명이 자신의 등을 떠밀고 있기 때문에 길을 나서는 것이다. 김삿갓처럼 속죄와 구원을 찾아서, 혹은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서, 또 혹은 엇갈린 인연으로 떠나버린 연인을 찾아서 그렇게 떠나지만, 성공을 확신할 수는 없고 심지어 그 자신은 이 여정이 어쩌면 실패하리라는 예감도 안고 있다. 그래도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에 떠나는 것이다.


‘나그네’는 조금 다르다. ‘방랑’이 갖는 슬픈 정서도 일부 공유하면서도 낙관적인 정서도 은은하게 뿜어내는 느낌. ‘나그네’들은 고단한 여행이라도 때로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 같다. 힘든 산길을 오르며 거친 호흡을 내뱉다가도 고갯마루에 낮게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며 ‘잘 올라왔네~’하며 씩 웃음 지을 수 있을 것 같고, 등에 진 배낭에 먹을 것 하나 없고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어도 ‘다음 마을에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걸음을 재촉할 것 같다.


위의 호칭들이 갖는 색깔처럼 저마다의 이유와 방식으로 방식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그래도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삶이 주는 크고 작은 무게에서 잠시-때로는 아주 오랫동안- 벗어나, 낯선 공간을 마주 하며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다르고 떠나는 곳도 서로 다 다르고,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이들 각자에게 어울리는 호칭도 다르지만 그러면 어떤가? 그 여행들 하나하나가 그대로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추억이 될 것이라는 것은 여행을 한 번이라도 가본이라면 잘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온 바로 지금, 또다시 새로운 여행을 꿈꾸며 항공권 사이트를 클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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