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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오헨리단편선

2024년 11월 19일

by 행크

그렇게 포근하던 날씨가, 주말에 내린 비 한 번에 마치 ‘이럴 때가 아니지!’ 하며 정신이라도 차린 듯 추워졌다. 마침내 오늘 아침은 영하의 온도로 시작한다.

출근하려고 차로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빠져나가는데, 모네의 풍경화를 연상하게 했던 길가의 나무들은 어느새 울긋불긋한 잎을 밤새 떨어뜨려 앙상해져 있고, 얼마 남지 않은 이파리마저도 바람 한 번에 속절없이 흩날린다. 단지에서 큰길로 나가는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노란 은행잎 하나가 차의 앞 유리창에 툭하고 떨어진다. 유난히 따뜻했던 가을 탓에 늦게 늦게 물들던 은행잎이, 별안간 찾아온 겨울비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차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와 그리고 2024년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쯤에서 다들 떠올리는 소설이 하나 있을 것이다. 바로 <마지막 잎새>. 오늘의 이야기는


오헨리의 <오헨리 단편선>이다.


몇 년 전부터 다시 한번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손이 가지 않던 책을 올해는 드디어 집어 들었다. 내가 몇 살 때부터 책이란 것을 읽기 시작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생각해 보면 <오헨리 단편선>은 어린 시절 내 마음에 처음으로 작은 흔적을 남긴 책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기말고사-그때는 초등학생(국민학생)도 매달 시험을 보았다-도 끝나고 겨울방학과 더불어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두고 있었다. 학교를 안 가도 되는 겨울방학도 물론 좋지만 우선은 크리스마스! 늘 조금씩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어떤 선물을 기대할 수 있고 또 받을 수 있는 날 아닌가.


문제는 집안의 경제 상황이었는데, 그 시절의 우리 집은 극히 가난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먹고사는 문제는 간신히 넘어섰지만,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는 많이 팍팍한 그런 수준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 집뿐만 아니라 많이들 그러고 살았기 때문에 박탈감 같은 감정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는 점이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이에 비하여 눈치가 없지는 않았던 나는 그해도 집안 사정이 별로 안 좋다는 것을 알아챘고,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몇 시간 고민 끝에 나름의 결정을 내리고 어머니께 먼저 제안을 하였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이나 한 권 사주세요.” “그래도 괜찮겠니?”

아주 짧은 순간에 어머니의 얼굴에 미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밀려나갔다.


방학식 날이자 크리스마스이브 - 당시 제주도는 겨울방학식을 항상 12월 24일에 했다- 인 24일에 중앙로에 있던 우생당 서점에 가서 내가 직접 고른 책이 <오헨리 단편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문고판이었는데, 초등학생 작은 손에 부담이 없기도 했고, 책 값도 쌌기 때문이었다. 아마 책 값이 1,000원 남짓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 자체에 관심이 갔기 때문인데, 그 이전부터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오헨리의 단편들의 이야기를 듬성듬성 들어와 호기심이 있었고 그의 다른 이야기들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으로 5학년 겨울 방학의 많은 시간을 채웠던 기억이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그때를 되돌아보면 그 일은 나의 독서 생활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집에 다른 것은 없거나 부족해도-심지어 TV도 MBC 만 나오는 흑백 TV였다- 유독 책만큼은 차고 넘쳤는데, 내가 미처 손대 보지도 못한 책들도 너무 많았고, 형이 있었던 덕에 어린이용 동화나 세계 명작, 거기다가 <어깨동무>, <소년중앙> 같은 어린이 잡지도 심심찮게 집안을 굴러다녔지만, 그 모두가 내가 고른 책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기억할 순 없지만 어느 날 글을 깨치고 읽게 되어 그 뒤로 만화책부터 시작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어도 다 누군가가 사다 놓은 책들이었는데, 처음으로 내가 직접 고르고 산-물론 계산은 어머니가!- 책이 바로 <오헨리 단편선>이다. 게다가 그 책은 더 이상 어린이 용이 아니라, 깨알 같은 글자에 그림은 단 한 장도 없는 어른용 책이었다. 그렇게 나의 독서는 한 단계 도약을 한 셈이었다.

실제로 그 뒤로는 아버지의 책장에 꽂혀있는 어른용 책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고 거기서 종이와 글자로 된 아주 많은 보물들을 발굴해 내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으로 돌아와, 민음사판 <오헨리 단편선>을 다시 펼쳐 들었다. 이젠 그때와 달리 어른용 책이라도 글자가 시원하게 커졌고 책도 훨씬 크고 두껍다. 책장에 몇 년 전부터 내 눈길을 끌기만 했던 책을 비로소 꺼내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내용들이 기억과 조금씩 다르다. 그 사이에 흐른 시간이 만만치 않으니 내가 기억하는 내용들이 조금씩 틀어져 있었나 보다.


찬찬히 읽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그의 소설들은 요즘 나오는 소설들처럼 치밀하거나 섬세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헨리의 이야기들은 마치 우리가 어릴 적 한두 권쯤 읽어보았을 전래동화집 같다. 약간 헐렁하기도 하고, 결말을 쉬이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아마도 백 년 전쯤이나 그보다 좀 더 오래전 미국 -특히 뉴욕-에 살았던 서민들의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끔, 아니 가끔보다는 좀 더 자주 이런 이야기들이 끌릴 때가 있다. 아주 작은 기쁨과 그보다는 조금 더 큰 슬픔, 그리고 우리에게 미소를 안겨주는 유머와 또 그만큼의 쓸쓸함들. 늘 우리 곁에 머무는 감정들이 그의 소설에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그중에서도 어느 가난한 부부가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이야기에 담겨있는 인생의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는 언제나 많은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2024년,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는 요즘은 더욱더 그런 감정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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