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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두편의 시와 한편의 노래

2023 년 2월 4일

by 행크

일출 시간에 맞추어 둔 알람이 울렸다. 눈을 뜨고 호텔 창 밖을 내다보니 새벽 어스름 속에 하늘은 온통 뿌옇게 보인다. 안경을 찾아 쓰고 다시 창 밖을 보니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속초에 놀러 와 일부러 바다가 보이는 곳에 이틀밤을 머물면서 일출을 기대해 보았지만 첫날은 수평선 위 가득 낀 구름으로, 둘째 날은 이렇게 난데없는 눈으로 일출을 놓치고 말았다.

쓴웃음을 지으며 눈이 내리는 하늘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건 그것대로 또 괜찮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지우고 있는 눈을 보고 있으니 눈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고등학교 때까지-을 따뜻한 남쪽 제주에서 보내다 보니 눈은 귀하고 그리운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제주도가 눈이 아예 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데, 제법 높은 한라산이 바다 위에 솟아있어서 그 한라산의 북쪽에 위치하는 제주시에는 산을 타고 내려온 차가운 바람 덕에 겨울이면 몇 번씩은 눈이 내렸다. 그런데도 눈이 귀하다 느꼈던 이유는 그렇게 내리는 눈이 반나절을 못 버티고 금세 다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시청 뒤쪽 주택가에 살던 초등학교 겨울방학 시절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새벽부터 내린 눈이 집 앞 공터를 새하얗게 덮고 있었고 이제 눈발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갑자기 초등생 아이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이다. 4학년이나 5학년쯤 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지만 점심이 되면 이 눈은 녹아 없어지고 질척이는 물 웅덩이만 남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아무리 춥다 해도 여간 해선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눈은 결국 아주 작은 얼음 아닌가. 아침밥도 먹지 않고 바로 눈 덮인 공터로 달려 나간다. 나에게 눈은 그렇게 설렘과 즐거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고 어느 국어 시간이었다. 조선 시대 때 쓰인 시조 한 편을 배웠다.


이몸의 주거가셔 무어시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이셔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정 하리라.


조선 초에 있었던 왕가의 큰 비극적 사건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성삼문이 결국 죽음을 맞이하며 유언처럼 남긴 시이다. 이 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건 시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 대단한 드라마였기도 했지만, 시 속의 한 구절이 유독 남다른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백설이 만건곤할제”. 쉽게 풀어써보면 ‘흰 눈이 온 세상 가득할 때’ 이런 뜻이다. 그리고 국어 선생님이 여기서 백설은 ‘시련과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라 설명해 주셨다. 나는 처음에 그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시험을 보기 위해서 가르치는 대로 외우긴 했지만 정서적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눈이 오면 좋은 거지, 눈이 왜 고난이고 시련이라는 거야!’


눈에 대한 옛사람과 나의 견해 차이는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사물에 대한 인식이 이리도 다를 수 있나 재미있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새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들의 시와 그리고 나오지 않는 시인들의 시까지 찾아 읽기 시작하였다. 직접 쓰지는 못하지만 읽기는 좋아하는 저 낮은 단계의 문학 소년이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고 개인 컴퓨터도 당연히 없던 시절에 어떻게 그런 시들을 찾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도 찾아 읽었다. 그러다 어느 날 온통 눈의 이미지가 가득한 시 한 편을 만났다.


황동규 시인의 <삼남에 내리는 눈>.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좀 더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는 이 시가 교과서에도 실리고 대학 입시에도 나왔다고 하는데,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은 군사 독재가 끝나지 않던 때라 그런 일은 꿈도 꾸지 못했고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시이다. 그 당시 기준에서는 매우 불순한 시였지만 그렇기에 아주 좋은 시이기도 하다. 몇 줄 되지 않는 짧은 시 안에 망국의 예감, 어두운 잿빛 하늘, 그 아래에 펄펄 내리는 눈, 그 눈 위로 떨어지는 전봉준의 피, 백성들의 고통 같은 것들이 정말 강렬하게 다가왔다. 마치 처절한 묘사가 가득한 그림을 한 편 보는 것 같다. 이 시에서 언급하는 것 중 어느 하나 희망적이지 않고 낭만적이지 않다. 특히나 이 시에서 눈은 지금의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시련을 상징하는데 다른 해석이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하다. 심지어 이 눈은 고통과 슬픔마저 담고 있다. 비로소 나는 눈이 이렇게 시리고 서럽고 아픈 것일 수도 있구나 깨달았다.


다시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고 생활공간은 서울로 옮겨졌다. 제주에서 서울로 상당히 북쪽으로 올라온 데다 학교가 산 중턱에 있다 보니 눈과 겨울에 대한 에피소드가 좀 더 다채로워졌다. 우선 해마다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지면 학교는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상당히 싸늘해졌다. 추위에 약한 학생들은 10월부터 오리털 패딩을 입고 나타나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여기 날씨는 서울이 아니라 중부 산간지대 예보를 보아야 잘 맞는다는 말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진담에 많이 가까웠던 것 같다. 서울 시내는 비가 오는데 학교에는 눈이 내리는 일이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다들 해보는 경험이었다. 다행인 건 내가 열이 많은 체질이라 남쪽 섬나라 출신임에도 별로 추위를 타지 않고 지냈었다, 무려 11 년이나 그곳에서.


그 11 년 중 세 번째 해인 3학년 2학기 때였는데 ‘미학개론’이라는 교양 과목을 수강 신청하였다. 학점을 잘 주는 교수님인 것 같진 않았지만 수업이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난 과목이라 들어보기로 했다. 수업 첫날 갔더니 교수님이 정말 재미있는 제안을 하나 하셨다.

“성적은 리포트 한 편과 기말고사로 평가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수업 제목이 ‘미학’ 개론이잖아요? 그래서 리포트 제출에 관해서 미학적인 제안을 하나 할게요. 앞으로 두 달 안에, 그러니까 10월 31일까지 첫눈이 내리면 리포트는 면제하겠습니다. 여기서 첫눈이 온다는 것은 학교 뒷산에 눈이 온 것을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술렁였다. 10월까지 눈이 올 수 있을까? 보통의 서울 지역이라면 ‘말도 안 되는 …’ 하며 피식 웃고 말겠지만 이 동네는 좀 다르다. 중부 산간지대의 날씨 아닌가. 눈이 올 가능성이 제법 있다는 생각에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서 같이 수강하는 친구들끼리 눈이 올지 안 올지 진지하게 얘기까지 나누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10월 31일이 끼어있는 주가 되었다. 역시나 예년처럼 학교는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은 매서워졌다. 지난해까지는 이 찬바람이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아주 설렌다. 미학 개론 수업의 리포트를 멀리 날려버릴 수도 있는 그런 바람이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주의 미학 개론 수업은 주 후반부인 11월 2일에 있었다. 흥미진진한 한 주였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일기예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아침이면 도서관부터 달려가 오늘자 신문의 날씨 면부터 펼쳐 보았다. 오, 서울은 계속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가 될 거라 예보하고 있다. 정말 눈이 내릴까?


그리고 눈이 왔다, 정말로 왔다. 그런데, 오긴 왔는데, 10월 31일에 온 게 아니라 11월 1일에 온 게 아닌가. 10월 31일까지 멀쩡하던 학교 뒷산이 11월 1일 왔더니 새하얗게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탄식과 아쉬움의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미학개론 수업을 들어갔다. 이런, 강의실이 빽빽하다. 교양 과목의 특성상 수업 빼먹는 학생들이 항상 많았는데 그날은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절묘하게 내린 첫눈과 그에 따른 리포트의 향방이 모두들 궁금했나 보다. 100 명이 넘는 학생들이 가득 찬 대형 강의실에는 묘한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다. 잠시 후 수업 시간이 되자 등장하는 교수님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고 계시다. 모두가 흥분과 설렘과 기대와 긴장으로 들떠 있었다. 드디어 교수님이 입을 떼셨다.

“10월 31일까지 눈이 안 왔으니 리포트는 제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교수님의 표정이 짓궂기 그지없었다. 그때 모든 학생들이 마치 미리 입을 맞춘 것처럼 외쳤다.

“아니에요, 31일에 왔어요, 교수님!”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던져보자는 마음으로 외치고는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 것에 우리 스스로 웃겨서 한바탕 웃기도 했다. 교수님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짓궂은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여러분이 그럴 줄 알고 내가 증거를 가지고 왔지요.”

하며 사진 몇 장을 꺼내 앞줄에 앉은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사진들은 학교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뒷산을 찍은 사진들이었는데, 10월 31일과 11월 1일 날짜가 표시되어 있었고, 31일에 찍힌 푸른 산과 1일에 찍힌 눈 덮인 산은 우리 학생들의 입을 완전히 다물게 하였다.

“자, 그러면 리포트는 종강하는 날까지 꼭 제출하세요, 하하하.”

강의는 듣는 둥 마는 둥 어찌어찌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새하얗게 눈이 덮인 뒷산이 교수님 마냥 짓궂게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학교는 이른 겨울이 찾아왔고 미학 개론 리포트는 우리 곁에 남게 되었지만 그날의 눈은 설렘과 아쉬움, 웃음과 탄식으로 30 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웃음 짓게 하는 추억이 되어 주었다.


문득 정신울 차려 보니 벌써 30 년 전 일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있었다. 그동안에도 수많은 겨울이 어김없이 왔다 갔고 눈도 함께 내렸다 사라져 갔다. 또 그 시간만큼 눈에 대한 다른 에피소드들도 생겨났다. 어떤 눈은 즐겁기도 했고 어떤 눈은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들을 돌아보는 지금은 모두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딸아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노래 듣기를 좋아했는데 중학생이 되더니 더더욱 노래에 좋아하게 되었다.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애플 뮤직 가족 요금제에 가입해서 음악을 마음껏 듣게 해 주었더니 아주 애플 뮤직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러더니 어느 정도 노래에 대한 취향과 데이터가 쌓였는지 가끔 아빠에게 이런저런 노래를 추천해 주는데 상당히 좋은 노래들이 섞여 있어 뜻밖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그 가운데 잔나비의 조금 덜 히트한 노래인 <노벰버 레인>도 추천해 주었는데 역시나 좋았고, 특별히 여기에 남기는 것은 노래 가사에 눈이 나오기 때문이다.


November Rain


숨 쉴 수가 없어

움직일 수조차 없어

비가 온다, 그날처럼

나 울 수도 없고

웃어볼 수조차 없어

비가 온다

눈이 되지 못한 채

기억 속에 노벰버 레인

살며시 두 눈가에 맺힌다 또 맺힌다

들려오는 빗소리에

감춰둔 기억마저 젖는다 오 젖는다

잊힐 수 없어

기억은 계절을 흘러

비가 된다

눈이 되지 못한 채

기억 속에 노벰버 레인

살며시 두 눈가에 맺힌다 또 맺힌다

들려오는 빗소리에

감춰둔 기억마저 젖는다 오 젖는다

기억 속에 노벰버 레인

또다시 두 눈가에 맺힐 땐 또 맺힐 땐

들려오는 빗소리도

따스한 추억으로 흐르길 또 흐르길

거리거리 수놓았던

낙엽이 회색빛에 물들면 또 물들면

하염없이 흐르는 비

그대로 눈이 되어 내려라 오 내려라

비가 온다

눈이 되지 못한 채

겨울, 고요한 아침

커튼, 그 새로 흩날리는 설레임

겨울이 오길

다시 흰 눈을 기다리는

철없는 아이처럼 따스한

겨울이 오길



잔나비에게 눈은 잊지 못할 추억이고, 새로이 찾아오길 바라는 희망인가 보다. 노래 속 눈은 아직 오지 못한 채, 11월의 늦가을 비만 내리고 있어 슬프고 안타깝다. 그래서 노래 속 주인공은 간절히 그 비가 눈이 되어 내리길 바란다. 눈이 내리면 슬픈 기억도 아픈 상처도 그만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눈이 내리면 함께 찾아올 겨울도 따스할 것만 같다. 그리하여 노래 속 ‘흰 눈을 기다리는 철없는 아이’는 그 옛날 제주도 어느 동네에 살던 어떤 아이와 아주 많이 닮아 있다, 아침밥도 거른 채 눈 내리는 공터로 달려가던 그 아이와.


그 아이는 이제 쉰이 넘은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눈을 좋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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