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국립 박물관

2023년 2월 4일

by 행크

이번 교토 가족 여행의 첫 일정으로 교토 국립 박물관에 오게 되었다.


여행을 그리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어느 도시를 가면 그 도시의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곤 한다. 한 도시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은근히 그 도시의 색깔이나 분위기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교토 같은 오래되고도 오래된 도시는 더더욱 박물관이 그 도시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


2 년 전 경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도 도착하고 첫날 일정이 경주 국립 박물관이었는데,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박물관의 전 공간을 꽉 채운 유물들을 보면서 어떤 쾌감을 느꼈다. 서울의 중앙 박물관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2 천년을 견디어 온 도시가 보여주는 힘과 매력은 과연 대단했다. 차분한 로맨스 영화인 줄 알고 보러 갔더니 쉴 새 없이 액션이 이어지는 블록버스터를 보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교토 또한 경주 못지않은 도시인지라 교토에 올 때마다 가보고 싶었지만 늘 연말연시에는 길게 휴관을 하는 탓에 번번이 보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왔었다. 그리하여 연말연시 연휴 기간을 피한 이번 여행에서는 단연 1번 코스로 교토 국립 박물관을 택한 것이다.


입장권을 사서 박물관으로 들어갔더니 새해를 맞아 특별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토끼 해 -올해가 계묘년이다- 를 맞아 토끼와 관련된 다양한 미술품과 유물들이 전시 중이었다. 처음에는 동선을 따라가며 나름 재미있게 전시를 보고 있었는데, 가도 가도 계속 토끼 전시뿐이다. 전시실이 1 층부터 3 층까지 있었는데 모두 토끼에 대한 전시만 있는 게 아닌가. 음.. 나쁘진 않지만 기대와는 다른 전시에 조금은 실망도 되었다. 천년 도시의 국립 박물관이라면 화려하거나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긴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그래서 관람객에게 시간을 넘어 공감을 끌어내는 그런 유물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였는데, 그냥 좀 이쁘고 귀엽고 다양한 토끼 캐릭터들의 전시장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그마저도 3층에 이르자 밑천이 다 떨어졌는지 토끼와 상관없는 전시품들도 있고 뭐, 좀 그랬다.


한편으로는 토끼와 상관없는 그 전시품들이 오히려 인상적이기도 했는데, 일본의 귀족들이 집안의 가보로 물려주었을 것 같은 칼들을 전시하는 공간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 사람을 베는데 썼을 것 같지는 않고 가문의 상징으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들고 나왔을 것 같은, 아주 화려하고 멋지게 장식된 칼들이 수십 자루 전시되고 있었다. 저 칼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공력을 들였을까 생각하니, 일본의 봉건 시대에 살았을 대장장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그 공간 안에 남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살짝 아쉬운 마음을 안고 건물 밖을 나왔을 때 마침 교토는 해가 지고 있었고, 지는 해를 받고 있는 교토 박물관의 정원이 오히려 오래된 도시 교토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박물관은 구관과 신관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신관 건물 앞에 펼쳐져 있는 넓은 정원은 여느 일본식 정원들과는 달리 그다지 정교하게 꾸며져 있지는 않고 적당히 구획만 나눈 뒤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정원이었고 남쪽 도시 특유의 색감을 간직한 겨울 정원은 노을에 물든 구름들이 흩어져 있는 저녁 하늘과 참 잘 어울렸다.


천천히 정원 쪽으로 발을 옮기다가 정원 한가운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이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이 왜 여기에…?’ 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주 근사한데..!’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전 세계에 열 점도 안 되는 작품을 교토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인데, 딱히 이 작품을 크게 홍보하고 있지도 않아 자칫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던 걸 다행히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었다.


<생각하는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2006 년인가 2007 년 서울에서였다. 남대문 근처에 있던 삼성 플라자 앞에 로댕 갤러리가 생기면서 로댕의 유명 작품들을 한 곳에서 전시를 하였는데, 당연히 입장료는 있었지만 ‘이게 웬 떡인가’ 하며 달려가 보았던 기억이 있다. 작품 수가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굵직한 작품들이 제법 있어서 보는 즐거움이 아주 컸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버전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지옥의 문>의 상단에 있는 조그만 버전 -이게 오리지날이다- 이고 이것을 따로 크게 만든 것이 널리 알려진 커다란 버전인데, 여러 조각상들을 수용하기에는 전시장이 많이 좁은 데에다 실내라서 좀 답답하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훌륭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는 느낌이 있었다. 그에 비해 이곳 교토의 <생각하는 사람>은 야외의 넓은 정원에서 홀로 지는 해를 향하고 앉아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 크게 마음에 와닿았다. 마치 천년의 세월을 품은 이 도시에서 명멸해 간 인간들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는 것만 같은 그 모습은 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어떤 다른 유물보다 더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지니는 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프랑스의 파리도 아니고 한국의 서울도 아닌, 일본의 교토에서 새삼 로댕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고 그의 작품을 이토록 근사하게 배치해 둔 박물관에 감사하며 박물관의 출구로 향했다. 우리가 박물관의 마지막 관람객이었는지 출구 앞에는 경비원 복장의 직원이 우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분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박물관 일정을 끝내고, 저녁으로 뭘 먹을까 이야기 나누며 교토역으로 가는 206번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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