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 없는 인생 Ep.5

다시 신입으로

by 설계도 없는 인생

나는 대기업에 맞는 인재인가?


S사를 퇴사한 건 3월, L사에 입사한 건 그다음 해 1월이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적당히 해왔던 노력이 통했던 걸까? 남들만큼은 했지만, 그 이상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합격이라는 게 단순히 스펙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다.

아마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취준 기간 동안 친구들과 국토 종주를 다녀왔는데, 그 일정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물론 이건 나중에 자소설 스토리로 써먹었다.)


입사가 확정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얼떨떨함.
그리고 곧이어 따라온 건 걱정이었다.
대기업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연고지와 떨어져 생활하는 건 괜찮을까?
어떤 부서에 배정받을지, 함께 일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일지…
모든 게 불확실했고, 그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은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그 흐름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 경험한 ‘대기업’은 연수원부터 달랐다.
따로 마련된 연수원에서 제법 긴 교육을 받았다. S사와 비슷하게 팀을 나누고 협동해서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이었는데, 그 구성이 꽤 재밌었다. 게다가 우수한 성과를 내면 고과에 반영도 되었다고 들었다.
자연스럽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교육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실무 배치 전까지 한 달간 추가 교육이 이어졌는데, 이번엔 각자 배정될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실무 교육이었다. 회사 내부 프로그램 사용법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었고, 겉보기엔 쉬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큰 틀만 보여준 수준이었다. 막상 실무에 투입돼 그 프로그램을 다뤄보니, 훨씬 복잡했다.


그 교육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팀에 배치됐다.

나를 포함해 동기 4명이 함께였는데, 사업장 교육 때 이미 안면을 트고, 또 나이도 같아서 금방 친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그 넷 모두 퇴사했다.

그 팀과는 우리 모두, 인연이 아니었던 거다.

대기업에서의 업무는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실제 역할(Roll)을 부여받고 ‘1인분’을 해내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에 아마 공황이 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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