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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혜 Jul 31. 2022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등판

교실 안 작은 섬 2

엄마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을 열 살 때 알았다. 주체할 수 없는 몸의 움직임을 부끄러워해 입학식 졸업식 총회 등등 학교에서 이뤄지는 행사에는 할머니가 참석했다. 용감무쌍한 엄마가 반드시 참석하려 해도 할머니는 다른 일을 시켜 엄마가 간신히 실천하려는 딸아이 동행 계획을 흐지부지 만들었다.


할머니도 학교 행사 오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여든 고개 넘어 평생 막내딸의 매니저로 살아왔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가려해도 노구가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 곁에 서는 엄마 역할하기엔 주름이 많다고 초등 입학식 때도 운동장 벤치에 앉아 계셨다. 그래도 할머니 모습을 찾아내고 혼자가 아니라는 안심을 하고 나면, 나도 이 행사의 구성원이라는 자긍심이 막 밀려왔다.


- 엄마 안 왔니?


그 누가 물어봐도 손가락으로 아무 데나 가리키며


- 왔어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엄마 역할을 해 줄 것 같은 할머니가 치매 초기 증상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 놓고 건네주지 않거나  학교 준비물을 몇 번이나 얘기해 두어도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우겼다. 학교 식당 보수 공사가 길어지면서 배를 곯는 날이 많아졌다. 할머니의 기억에서 손녀의 방은 사라지 있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등판이 시작되었다. 서투른 손놀림이지만 소꿉놀이하듯 엄마는 나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도시락이 제일 문제였다. 평생 요리를 해 보신 적이 없어 간을 맞추는 것을 어려워했다. 아니 간의 차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설탕과 소금이 색깔은 흰색으로 같았지만 크기나 손 끝에서 뿌 때 감촉은 분명 달랐다. 엄마는 아주 기본양념 습득부터 헷갈려했다.


마가 할머니 등 너머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마 상상하고 예상하며 하는 것들이 엄마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점심시간에 앞 뒤 자리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는데 내 도시락을 내놓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두고 왔고 말하곤 교실 뒤뜰을 배회하곤 했다.


점심을 일찍 먹은 아이들은  교실 뒤뜰에 유 놀이를 했다. 물끄러미 앉아 구경하다가 틈새에 끼여 놀이에 빠지기도 했다. 살짝 배고픔이 퍼져 갔지만 점심시간만 지나가면 내가 가진 불편한 현실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웅성거림이 귀에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놀이를 하던 친구 하나가 팔을 번쩍 들어 교실 뒤뜰 학교 후문 쪽으로 난 코너를 가리켰다.


- 저기 봐! 누가 춤을 추고 있어.

- 아니야, 걷는 게 이상해.


그 순간 나는 내 쪽으로 바람이 불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한 친구들은 확인을 해 봐야겠는지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대상에게 더 가까이 갔다. 바람이 부는 방향과  춤 선이 일치해 그 댄서는 점점 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그 손 끝에는 보통 춤 선을 살리기 위한 도구가 아닌 도시락이 달려 있었다.

 

엄마의 춤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친구들이 점점 둘러싸며 따라 하거나 우스꽝스럽다고 킥킥거려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세상을 딛고 서는 다리의 문제인지, 순수한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생각의 문제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 우리 엄마는 댄서야.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도 않고 영향받지 않은 채 걸어오고 는 엄마를 향해 외쳤다.


※ 사진은 부산일보 2020년 8월20일

기사에 소희(가명)엄마 이야기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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