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 근무 일지 3
의지하던 사람의 나약함이 확인되는 순간 물러서는 게 맞을까. 무슨 이유인지 알고 싶은 것도 집착이냐고 언니는 내게 물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확인받고 싶은 어리석음보다는 감정의 여진이 계속된 거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계주 경기처럼 명확히 출발선상과 도착지점을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을 뿐, 지숙 언니는 여전히 감대리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묻는 언니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언제 옥계로 돌아가냐고 물었다. 되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돌아가는 차편시간에 맞춰 나타났다.
딱딱한 플라스틱 터미널 의자의 이질감은 감대리의 속내를 더 이상 감추지 못하게 하는지 처음으로 솔직한 말들을 지껄였는데, 언니는 그 내용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 처연했을 마지막날의 대화는 지숙언니의 기다림과 감대리의 계산셈 사랑이 결코 만나는 지점이 없는지 재구성해 보았다.
ㅡ 일이 지쳐갈 즈음 네가 눈에 들어오더라. 자그마한 체구에 눈을 찡긋거리며 웃고 어려운 일도 물어보며 곧잘 해 내는 모습이 기특했지. 아침에 출근하면 변함없이 보게 되는 모습이 안 오는 날에는 궁금해지고 회식 자리에서는 나도 모르게 옆자리에 앉아 챙겨주었어.
ㅡ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일이 손에 안 잡혔어요. 동료들의 입담도 거칠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도 많았어요. 사람들의 오고 감이 많은 부서에서 잘 지내봐야겠다는 결심은 사회생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게 날아오는 화살을 같이 막아주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어렴풋이 아빠가 있었으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싶을 정도로 대리님이 챙겨줄 때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었어요.
ㅡ 사람들이 우리 얘기를 가십거리로 삼을 때 정신이 들었어. 이게 아니다 싶었고 네가 마침 출장소 근무를 신청하니까 나랑 같은 생각이라고 여겼지. 퇴근을 같이 하는 모양새가 데이트처럼 비칠 수 있구나 싶어서 네가 전근 간 뒤로 나도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가 났어. 서울 근무를 신청한 이유이기도 해.
ㅡ 점심시간에 전화를 기다리며 마음이 설렜어요. 무료한 사무실에서 일부러 재미있는 일을 만들 성격도 못되니까 하루에 좋은 일 하나만 생겨도 근사한 하루겠구나 싶었어요.
ㅡ 잘 지내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고. 마주 보며 지내다가 점심 먹고 나니 너 생각이 났어. 별다른 주제가 없어도 너 얘기 듣는 게 싫지 않았거든.
그 익숙한 오고 감을 사랑 광주리에 넣고 싶은 건 누구였을까. 곧 차가 왔고 언니는 차 떠나는 시간 십여분을 남기고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가슴 아리다는 표현보다는 기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빠르게 보고 지나치는 것처럼 명명할 수 없는 감정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캐리어를 차 아래 싣고 자리를 살펴주기까지, 지숙언니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ㅡ 헤어지는 여인을 위해
낮게 읊조리는 옆좌석 손님은 자리까지 바꾸어 주었다. 차가 빠져나간다. 겨우 고개를 든 언니가 손을 들었다. 그건 작별의 인사라기보다 부여잡고 싶은 것을 찾는 중이었을 것이다. 감대리가 차량 움직임을 좇아 오더니 차창에 간신히 붙어 있는 언니의 손에 자신의 손을 살짝 포갰다.
그렇게 믿고 싶어 그렇게 보인 듯, 처음으로 언니는 감대리의 눈빛을 읽었다. 지켜봐 주는 시선이 정겨워 예쁘게 보이려 했던 꾸밈이, 언니가 감대리를 똑바로 보는 순간 걷혀갔다. 차가 방향을 잡고 도로에 들어서면서 언니 손에 물결 핀이 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