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혜 Sep 23. 2022

세상에 나를 위한 방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초등 5학년이지만 키는 또래보다 머리 하나 작고 옷차림은 엄마가 골라주는, 내가 좋아하는 색이 반드시 섞인 단순한 옷을 입는다.


오늘은 체험학습 가는 날이지만 어느 물건 하나 내가 챙기지 못했다. 준비물도 엄마가 새벽 일찍 일어나 교 알리미를 확인하고 챙겼다. 미니 돗자리는 집에 없어 엄마는 문방구 문을 일찍 여는 곳을 찾아 아침부터 뛰어다녔다.


엄마는 늦게까지 일을 한다. 그리고 내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를 낳고 나서 폭삭 늙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나는 엄마 말에 의하면 산 넘어 산처럼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단다.


생후 8개월에 난치병이 발견되어 이식을 받았고 세상의 빛을 보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발달도 건강도 균형적이지 않아 계절, 날씨, 환경의 영향을 온몸으로 받고 산다. 스트레스의 강도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이 오거나 이유 없이 울 때도 있다.


엄마는 일하는 도중에도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받는다. 어딘가 아파도 속상해도 표현이 정교하지 못해 엄마는 비서처럼 나의 상황들을 듣거나 이해시키거나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엄마랑 잠자리에 들 때다.


- 엄마

- 응


마음껏 엄마를 부르며 응석 부려도 엄마는 다 받아주며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주는 게 좋다. 엄마하루 종일 속상하고 서러웠던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엄마가 측은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가슴에서 올라와 머리를 맴도는 말들로 엄마를 위로하고 싶지만 무엇이 막고 있는지 혹은 빠져 있는지 내가 하고픈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 네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 너의 방이 만들어지는 거야. 네가 사라지지 않는 한 너의 방은 그곳에 있어. 엄마는 그 방이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을 뿜어 다른 사람도 머물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해. 정말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그 방이 너에게로 올 거야.


기도문처럼 엄마는 '방' 얘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한다. 그런데 나는 그냥 스스로 배우고 얻는 것들조차 재구성을 통해 수천번의 반복을 해야 머릿속에 만들어진다. 마치 점처럼 작고 미약한 앎의 순간들이 쌓여야 하는데, 엄마 말처럼 세상 어딘가에 내가 나답게 살며 꿈을 이룰 수 있는 방이 있기나 할까.


체험학습장으로 이동 중에 반 아이들은 재잘거리고 멋지게 입은 옷을 뽐냈다. 인기 아이돌 노래나 춤사위를 보이며 담임 선생님께 음악을 틀어 달라고 한다. 나는 익숙지 않은 소란스러움과 차의 덜컹거림으로 배까지 아파왔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서 있던 엄마 생각이 자꾸 난다. 참아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간 사과와 이발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