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요리를 안 한다던 내가

코로나 이후

by 와앙만두

독립하기 전에는 요리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나이도 먹었는데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과 달걀프라이 뿐이었다. 스페인 순례길에서 내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달라는 외국인 친구들의 부탁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빼고는 불만도 없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시간은 아깝게 여겨졌고, 혼자 살게 되면 모든 음식은 사 먹거나 시켜 먹을 거라고 엄마에게 말했던 기억도 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린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는 나는, 원래가 음식에 까다롭지 않아 반찬 투정도 없었다. 치아 교정을 했던 중학생일 때, 이가 아파 제대로 씹을 수가 없어 매일마다 먹었던 곰국도 늘 맛있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밥에 김치나 김이면 충분했다. 뒤늦게 귀가한 엄마가 놀라서 다른 반찬을 꺼내주면 다시 반찬통을 정리해서 넣는 게 귀찮아서 싫었다.


잘 먹긴 하지만 엄마에게 불만이었던 점은 몇 가지 있었다. 고기를 먹으면서 왜 고기 맛도 제대로 안 느껴지게 쌈을 싸 먹어야 하는지도 이해가 안 됐고, 불고기를 만들 때 고기보다 채소가 더 많은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막 독립하고 나와서 기숙사에 살 때는 직장에서 하루 세끼를 다 줬기 때문에 집에서 챙겨 먹을 일이 없었다.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집에 붙어있는 날이 없었다. 일찍 나갈 준비를 하느라 아침은 거르고, 혼자만 외출하는 날이면 카페만 돌아다니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식사보다는 감성적인 카페를 한 군데라도 더 가고 싶었다. 예쁜 디저트를 더 많이 먹고 싶었다.


요즘에야 저속노화란 말이 생기고, 커피와 디저트만 먹는 건 건강에 안 좋다고 말하지만, 그 시절에는 몰랐다. 밥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 디저트를 먹는 것보다, 디저트만 먹는 게 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작정하고 파스타를 만들었다. 그때의 내겐 파스타도 굉장히 큰 요리였다. 정성스럽게 요리하고, 미리 사둔 예쁜 접시에 담았을 때 굉장히 뿌듯했지만, 그때만 해도 어쩌다 한번 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랬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외식을 아예 안 하게 되면서 달라졌다. 주말에는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야 했다. 유튜브에서 만들어보고 싶은 음식이 생길 때마다 직접 만들어서 먹었다.


일주일에 이틀뿐이니 부담감보다는 설레는 감정이 컸다. 주방을 온통 어지럽히고 오래 걸려도 접시에 예쁘게 담아내서 먹으면 행복했다. 정작 음식 만든 사람은 입맛이 없어진다는 말은 내겐 해당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순간은 정말 즐거웠다.


한때는 요리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지금 보면 어색하지만,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가끔 내가 만들었던 음식 사진을 모아서 보면 그때의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추억에 잠긴다.

지금은 매일 요리를 해야 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외식을 한다. 가끔 하는 요리는 좋았지만 매일 하려니 쉽게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있어서다.


다시금 엄마가 떠올랐다. 어떻게 몇 십 년 동안 불평 없이 음식을 하고 먹였을까?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엄마의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을 때도, 자연스레 엄마가 떠오르곤 한다. 고기를 먹을 땐 채소가 꼭 있어야 하고, 아침마다 몸에 좋은 걸 챙기려고 할 때가 그렇다. 요구르트에 마를 갈아주거나, 키위가 좋다며 키위를 썰어서 주던 식이었는데 지금의 나도 비슷하다. 식전에 올리브오일에 레몬즙을 타 먹고, 직접 만든 그릭요거트를 챙겨 먹는다. 상대방이 싫어해도 몸에 좋으니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것까지도 닮았다.


주말 아침이면 마카롱이나 다쿠아즈 같은 달달한 디저트와 커피를 먹거나, 어묵탕과 와인을 먹던 몇 년 전의 요리 초반과는 상반된다.

가끔 요리하기 너무 귀찮을 땐 시켜 먹기도 하는데, 배달 음식은 만족감이 가장 덜하다.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시간은 줄어드는데 도리어 늘어지고 군것질까지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요리하기 직전이 가장 버거운데, 그 순간을 이겨내고 요리하면, 언제나 만족스럽다.


옛날엔 하루에도 카페를 몇 군데씩 갔지만, 지금은 보통 집에서 커피를 마신다. 오전에는 우리가 끝방이라고 부르는 공간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드립커피 내려서 마시는데, 웬만한 카페보다 더 편하고 느낌이 좋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나는 내가 아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과 커피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은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과 직접 내린 커피를 더 만족스러워한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이런 행위들이, 속도를 줄이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드립커피를 내리고 치우는 과정에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작고 단순한 행위이지만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도 요리는 여전히 귀찮다. 하지만 그 귀찮음을 이겨낸 시간이 내 하루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안다. 그 ‘귀찮음’을 넘어서면 ‘만족스러움’이 온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나는 내일도 주방으로 향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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