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슈아 Aug 02. 2023

저에게 콜을 주지 마세요

처음 도보 배달을 시작하며

여자 후배의 한 마디가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사로잡았지만 당장 실행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엄연히 말하면 문제는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새로 접하고 시도한다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해 보고 싶어도 선뜻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 것일까?

그렇게 다시 변화 없이 보내는 시간을 약 2주간 했다. 익숙한 내 패턴의 삶으로...


그리고 다시 월요일이 왔고 여느 때와 같이 아침 미팅에서 팀원들의 주말 안부를 물었다.

"주말 잘 보냈어?"

의미 없는 안부 물음이었기에 팀원들의 대답에 리액션은 보였지만 나에게는 단순히 한 주를 헤쳐나가기 위한 아이스브레이킹이었다.


그렇게 그 27살 여자 후배의 차례가 되었고, 이 친구는 배달을 무려 3건이나 했으며, 남자 친구와 저녁 먹는 것에 보탰다고 했다.

다시 내 귀가 솔깃했다.

"3건이면 얼마야? 3건이나 걸어서 하는 거 안 힘들어?"


처음 이 친구가 배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직후 내가 던졌던 질문보다 나도 모르게 꽤나 구체적이다.


"네 과장님, 집 바로 앞에 베라 있고 배달도 집 근처로만 배정돼서 안 힘들었어요. 남친이랑 같이 했어요.

도보로 하면 집 근처로 배정이 되나 봐요. 그냥 같이 이야기하면서 좀 걷고 9천 원 벌었죠! 과장님도 한번 해보세요~"

"가게에서는 어떻게 말하면 돼? 따로 준비물은 없어?"

"네, 보냉백만 있으면 되고 그냥 가게 가서 배달 왔다고 하면 돼요. 엄청 쉬워요!"


사실 마지막 말만 내 귀에 남았다, '엄청 쉬워요'


돌이켜 보면 만약 '엄청 쉬워요'가 아닌 다른 말이 나왔다면 본능적 반작용으로 인해 해 볼 생각을 안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다짐했다. 쉽다고 하니 나도 해봐야지!


그렇게 그 친구에게 아주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다. 어떤 앱을 설치하면 되고, 배달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배달 후에는 무엇을 해야하는 지...무려 20초 동안...


그렇게 다시금 주말은 왔고 토요일 저녁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친구에게 20초 동안 배운 대로 앱을 실행해 봤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적합한 배달을 찾고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 순간부터는 행여나 실수할까 봐 혹은 콜을 내가 못 보고 놓칠까 봐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1분만 있으면 잡히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지?'

켜지면 바로 콜이 꽂힐 것이라 생각해서 만반의 마인드 세팅을 끝냈는데 기대와 달리 핸드폰은 잠잠했다.

'신호등 2번만 더 바뀌면 그냥 끄고 가자'

그렇게 신호등이 2번 바뀌는 동안에도 핸드폰은 잠잠했고 약속대로 신호등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호등의 절반을 건너왔을 무렵, 갑자기 핸드폰에서 처음 듣는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고, 심장의 쿵쾅거림은 극에 달했다. 달려서 신호등의 남은 절반을 건너 핸드폰을 확인했다.


베스킨라빈스 매장명과 배달지가 적혀있었고, '수락' 버튼이 있었다.

낯선 매장명과 배달지, 그리고 정체 모를 수락 버튼...

아직 배달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지만 마치 수락 버튼을 안 누르면 베스킨라빈스측으로부터(SPC)로부터 혼날 것만 같았다.

혼나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버튼을 여러 번 눌렀고 핸드폰 알람은 멈췄다.

약 3초 간의 그 짧았던 순간 내 머리는 하얘졌고 뭘 누르고 뭘 내가 한 것인지도 모르고 일단 누르기만 했다. 

알람이 멈추니 내 심장도 진정됐다. 그리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천천히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픽업 완료' - '배달 수행 중'이라는 메세지와 함께 픽업 시간이 찍혀있다. 

그리고 마치 미션을 수행하듯 팩맨 같은 녀석이 예상 배달 완료 시간을 향해 전진하는 디스플레이가 나타났다.


픽업 완료? 난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됐고 매장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픽업 완료라니?

내 머리가 하얘진 그 순간 내 손가락은 혼자서 '배달 수락' '매장 도착' '픽업 완료'까지 다 눌러버렸던 것이다.


10초간 길에서 망설였다. 어떻게 하지? 그냥 도망갈까? 핸드폰 꺼버릴까? 전화 오겠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고, 멘탈 나간 나를 스스로 다독이며, 매장 위치명과 네비를 천천히 살폈다. 다행히 안심이 됐다. 내가 있는 곳 바로 앞 대형 쇼핑몰이었고 쇼핑몰 내 어디에 위치한 것인지 구체적인 위치는 모르지만 뭐 찾아보면 되니...


다만, 난 이제 매장에 가려고 하는데 앱에서는 '배달 중'이라는 메세지와 도착 예정 시간이 째깍째깍 가고 있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늦으면 어떡하지? 손님한테 욕먹는 건가? 베스킨라빈스에서 전화 와서 혼내는 거 아니야? 

새로운 것을 시도한 나 자신에게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다. 

'이번 건만 하고 앞으로 다시는 안 한다!'


그렇게 쇼핑몰을 향해 무작정 뛰었고, 안내도에서 해당 매장의 위치까지 파악했고 찾아갔다.

내 인생에 그렇게 사력을 다해 뛰었던 것이 몇 번이나 될까?


헉헉 거리며 도착한 매장 앞, 또 본능이 발동한다.

'매장 주인한테 왜 이제 왔냐고 혼나는 거 아닌가? 픽업 완료도 안 됐으면서 왜 눌렀냐?'

세상 모든 뭇매가 나한테 쏟아질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만약 배달학이 있다면 배달학 교과서에 나올법한 멘트로 

"안녕하세요 해피크루입니다.배달 수행와러 왔습니다!" 외치며 들어갔다.


"아, 배달 오셨어요?"

"넵!"

"어디 가세요?"

"네? 아 잠시만요"

다시금 핸드폰을 열고 배달지 주소를 천천히 살펴봤다. 

매장 아르바이트생을 대하는 것이 회사 CEO에게 전략 보고 하는 것보다 더 떨리고 어려웠다.


그런데 매장에서는 "수고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준비된 물건을 건네주곤 다시금 본인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닌가.


다행이다.


그렇게 나는 네비를 켜고 주소지 위치를 확인하고 그쪽으로 다시금 달렸다.

팩맨이 시간으로 날 압박하고 있었다. 시간 초과되어 그 어떤 무리들로부터 혼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목적지인 아파트에 팩맨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소진될 즈음 도착했다.

벨을 눌렀다. "베스킨라빈스 왔습니다."

문이 열리고 손님의 손이 보였다. 공손히 전달드렸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과 함께.

 

 




작가의 이전글 띵동 배달 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