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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별

게으름

by IRIS

반복되는 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나는 여전히 게으르다. 도로를 달리는 것보단, 산길을 걸어가는 게 좋다. 직진하는 것보단 우회하는 것이 편하다. 앞을 보는 것보단 주변을 둘러보는 걸 좋아한다. 실현하는 것보단 꿈꾸는 걸 사랑한다. 출발하는 것보단 주저앉아서 쉬는 게 행복하다. 난 게으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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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매일 게으른 삶을 살아. 나태하고 누워만 있고 꿈만 꾸는 그런 한심한 사람 그게 나야. 난 게을렀고 늘 게으를 거야."


난 게으르다. 바쁜 현대사회에 나는 시간을 허투루 쓰기만 한다. 계획보단 즉흥적이며 노력보단 미뤄두는 것들이 훨씬 많다. 24시간 중에 14시간은 버리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으른 내 모습에 포장할 것도 내세울 것도 하나 없을 테지만, 이 순수한 게으름이 내가 꿈꾸는 길을 걷게 만든다.

나는 내가 걷고 있는 아동상담이라는 길을 사랑한다. 아동을 선택했고 그러다가 우연히 상담을 공부하게 되어 지금까지 걷고 있다.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들을 사랑해서?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널리고 널렸다. 게을러서 나는 이 길에 들어왔고 게을러서 이 길 위의 선택을 생각하지 않는 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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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만 부지런했으면 더 많은 것을 배웠을 텐데, 내가 좀만 열심히였으면,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었는데"


게으른 삶을 늘 살다 보니, 잃을 게 많은 삶을 살아야 했지만, 늘 잃는 것보단 얻는 것이 많았다. 눈에 보이는 성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으로 나는 평가받았고, 핀잔과 무시가 아닌 칭찬과 격려 안에서 살아갔다. 상담을 하고자 진학을 원하던 내게 현실이 아닌 꿈을 꿀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왔다. 난 여전히 똑같았으나, 늘 얻는 것이 많은 삶이었고 내게 꿈을 걸을 수 있는 길은 늘 주어졌다.

나는 늘 두려웠고 위태로웠다. 내가 만든 가면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가면 안에서 내 얼굴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그렇기에 나를 바꾸고자 노력했다. 산길보단 도로를 우회하는 것이 아닌 직진을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아닌 앞을 꿈만 꾸는 것이 아니 실현을 하기로 나를 바꾸려고 했다.

바꾸려고 했던 내 삶에선 점점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아졌다. 노력에 대한 비판, 업무에 대한 능력 부족, 내가 쌓아온 학력에 대한 의문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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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색은 귀여운 빨간색이 되려고 해. 노란색은 아름다운 노란색이 되기 위해 살아가. 그럼 oo색인 너는 멋진 oo색이 되기 위해 살아가? 대단한 흰색이 되고 싶은 건 아니고?"


나는 게을렀다. 그래서 이 길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 늘 부지런하지 않았기에 난 내가 아이들과 지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지 않게 했다. 나태했다. 늘 시간을 흥청망청 써왔기에 남을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이는 내가 상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가 꿈꾸는 길에 늘 얻는 것이 많았던 건, '모두'의 객관식이 아니라 '나'만의 주관식을 써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두'의 객관식을 쓰려고 했던 그 시간은 게을렀던 내가 볼품없어진 시간이었을 것이다.

게으름 그 하찮은 여덟 번째 별은 내가 늘 '나'다울 수 있는 길을 걷게 만드는 힘이다. 별 볼일 없는 내겐 게으름은 멋진 '나'를 꿈꾸는 길을 비춰주는 등대다.


'여러분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은 무엇인가요? 모르겠다면 나만의 색 찾아보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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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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