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함
작은 물방울 하나가 큰 파도를 일으킬 때가 있다.
나는 길을 멈춰 서 있는 사람들, 뒤돌아가길 원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과거에 잠긴 사람들, 트럭에 치여 우는 사람들, 길을 시작하지 못한 채 웃고 있는 아이들, 길을 알려주는 못하는 어른들, 울고만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늘 공통적으로 불우함을 가지고 산다. 아름답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서, 가난하기만 한 부모를 만나, 상처뿐인 학창 시절을 보내서, 한 순간의 선택으로 인해서, 믿었던 친구 연인에게 큰 상처를 받아서.... 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거나, 선택할 수 없는 빗방울 하나가 인생을 불우함으로 만들어 버리기 시작한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는 늘 걷잡을 수 없는 어려움을 보낼 때, 불우함으로 우리를 잠식해 간다. 그 불우함은 어느새 내 한편에 객관적인 증거로 자리를 잡는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내가 뾰족한 거야.' '모두가 날 싫어하는데 당하는 내게 문제가 있는 거야.' '똑같은 문제를 또 겪는 거 보면 내가 못났어 맞지. 노력이 부족한 거야.'
늪에 빠지는 걸 알아채는 건 쉽지 않아. 늪에서 나오는 것 또한 쉽지 않아.
불우함은 결국 나를 혐오하게 되는 수단이 된다. 가난함이 내가 인생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이 내가 삐뚤빼뚤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모두가 날 싫어하니 나 또한 나를 싫어해도 되는 안일함을 만든다. 똑같은 문제를 늘 실패하니 빌어먹을 노력도 안 하는 사람으로 날 생각해도 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만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나, 가끔은 아니 우리는 꽤 자주 우리만의 불우함의 늪에 빠진다. 그리고 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한다. 늪에 빠진 우리는 불우함의 추악한 이면만을 떠올리며 기억을 객관적인 증거로 포장한다.
가난이 중요했을까? 받지 못했던 사랑이 정말 내게 중요했을까? 그들이 싫어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을까? 똑같은 문제에 대한 실패가 정말 내게 중요했을까? 우리에게 정말 그 이유들이 우리가 멈춘 이유였을까?
사진과 영화는 다르다. 사진의 장면은 영원하지만, 영화 속 장면은 흘러가니까.
혹시라도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0000년 00월 00일 00시 00분 00초 불우한 당신에게 시간이 지금 멈춘다면 당신은 지금 불우함 속에 아파하는 게 끝일 거예요.
우리의 삶은 사진이 아니니까요. 정말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우한 환경들 속에 내 머릿속에 외치는 그 말이 정말 중요했을까요? 내게 불우함은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며 나를 미워하고 멈추고 아직도 멈춰있지만, 그 사진이 없어지길 바랐던 건 아니라는 걸요.
볼품없을 글이었겠지만, 불우한 사진 속에서 정말 중요한 말 당신에게 되뇌길 바라요. 그건 당신이 알고 있을 테니까요. 내 영화가 다시 나아갑니다.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될 불우한 당신의 사진이 다시 영화가 되길 바랍니다.
내게 불우함은 사진입니다. 그날의 늪에 빠져 많은 상처만 남길 때도 있지만, 그 사진이 바래지고 다시 흘러갈 때 나는 늘 내 길을 다시금 시작하게 하니까요.
내 영화도 당신의 영화도 끝이 쓰이길 기도합니다. 끝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잖아요! 결국 명화는 불우하지 않아야 되는 전제는 없으니까요. 글을 읽는 명화'ㅇㅇㅇ'의 이야기가 잘 맺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