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같은 말 다른 뜻
한국 ‘가면’ : 얼굴을 감추거나 달리 꾸미기 위하여 얼굴에 쓰는 물건
중국 ‘가면(미앤쥐. 面具)’ :
‘미앤(面)’은 면전에서, 얼굴을 맞대고’라는 의미이고 ‘쥐(具)’는 기구, 도구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중국어로 가면은 다른 사람 앞에서 다양한 모습의 얼굴을 보여주는 도구다.
중국 변검
한국인도 중국 변검 공연을 잘 안다. 변검은 중국 전통극으로 연기자가 얼굴에 쓴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는 공연이다. ‘변검(变脸)’에서 ‘변(变)’은 변화시킨다는 의미고 ‘검(脸)’은 얼굴이다. 한자 의미대로 해석하면 얼굴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는 것이다.
한국 전통 가면극에서 가면은 신분이나 직업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가면을 보면 연기자가 어떤 신분이나 직업으로 연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 전통 가면에 많이 등장하는 신분은 양반, 선비, 할머니, 과부, 처녀 등이고 직업은 주지 스님, 파계승, 백정 등등이 있다.
중국 전통 변검 공연에서 가면은 색으로 인물의 품성이나 성격을 나타낸다. 붉은색은 용기가 있고 덕이 있는 인물을, 검은색은 맹렬하고 거친 성품의 인물을, 푸른색은 잔인한 인물을, 횐색은 배신을 잘하는 인물을 표현한다.
그래서 중국인은 전통극에 등장하는 연기자 가면의 색깔을 보고 그 인물의 품성이나 성격을 알 수 있다.
변검 공연에서 연기자가 처음 등장할 때 검은색 가면을 썼다면 지금 연기자의 품성은 거칠고 다혈질인 사람이다. 그런데 순식간에 붉은색 가면으로 바뀌면 연기자 역시 덕이 있는 느긋한 성격의 사람으로 바뀐다. 그리고 계속 가면 색깔을 바꾸면서 이런저런 품성과 성격의 인물로 순식간에 변한다.
가면을 중국어로 ‘미앤쥐(面具)’라고 한다. ‘미앤(面)’은 ‘면전에서, 얼굴을 맞대고’라는 의미이고 쥐(具)는 기구, 용구, 도구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중국어로 가면은 다른 사람 앞에서 다양한 모습의 얼굴을 보여주는 도구’라는 의미다.
체면을 중국어로 ‘미앤즈(面子)’라고 한다. 중국어 체면(‘미앤즈, 面子)은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떤 얼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상황에 따라 다양한 품성과 성격의 얼굴 모습을 선택해서 상대방에게 보여줄 수 있는데 그 도구가 가면(面具)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얼굴 모습을 보여 주는 중국인의 생활 모습을 표현한 중국 전통극이 바로 변검(变脸 )이다.
중국인이 생각하는 체면은 자기의 이미지를 얼마나 적합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고 상대방의 의도를 면밀히 따져 본 후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가면을 쓰는 것이다.
중국인은 상대방이 지금 체면 때문에 가면을 쓰고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서로 금세 알아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기에 누구도 상대방이 실제와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중국인이 체면 때문에 가면을 쓴 모습을 알아보자.
2016년, 중국 정부는 효도를 중요시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중국은 1980년부터 한 명의 자식만 낳는 정책을 실행했기 때문에 35년이 지나자 젊은이 한 명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조부모와 외조부모까지 모두 여섯 명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텔레비전을 켜기만 하면 효를 강조하는 공익광고를 방영했다. 이렇게 정부가 효를 강조하자 사람들이 자신도 효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모든 출연자가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부모님에게 효도를 못 해서 잘못했다며, 앞으로는 꼭 효도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방청객들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되자 즐거워야 할 예능 프로그램이 눈물바다가 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바탕 눈물 잔치를 벌이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대담 프로그램에서는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몸을 흔들며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2017년, 정부 정책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텔레비전에서 효를 강조하는 공익광고가 사려졌다. 당연히 대담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이 불효했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인에게는 연극 본능이 있다
1800년대 후반 중국에서 생활한 미국인 아서 스미스(Arthur Smith)는 <중국인의 특성>이라는 책에서 ‘중국인에게는 연극 본능이 있다’고 했다. 중국인은 마치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현실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말과 행동을 한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면 또 바뀐 현실 상황에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말과 행동을 한다. 마치 현실의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A가 옳다고 하면 그렇게 여기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고, 현실의 상황이 바뀌어 많은 사람이 A가 틀리고 B가 옳다고 하면 또 그렇게 여기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중국인이 어제와 오늘 다르게 행동한다면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국인은 서로가 ‘아, 지금 상대방이 현실 상황에 맞게 연기하는구나’라고 알아챈다. 그래서 상대방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더라도 단지 보여주려고 저렇게 말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