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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Nov 09. 2021

육아서에서 하지 마라는 것만, 골라서 한 날

엄마도 사람인지라......

둘째는 올해 3학년, 10살이다.

빠릿빠릿한 형에 비해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로운 둘째는, 딱 선비같다.

지각을 해도 뛰는 법이 없었고, 누가 뭐라해도 먼저 화를 내며 부딪히지도 않았다.


타고난 성품과 환경적 요인으로 형과 정반대의 성향으로 자라난 둘째는, 내게 안식처 같은 아이로 자라났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공부할 양이 많아질수록 자주 나와 부딪히는 일들이 생겨났다.


언제나 '책임감'을 중요시하는 나는, 학생이면 학생으로써의 책임을 다 하라며, 학원은 안가더라도 집에서 문제집 1~2장은 매일 풀기를 강요(?)했다.

독서도 하루에 20분, 말씀 큐티도 5분 정도로.

네 가지 정도의 루틴을 정해놓고 지켜주길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둘째는 행동이 느긋한만큼, 마음도 조바심이라곤 없었다.

들보다 뒤쳐지거나, 다르다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다.

오히려 남들처럼 똑같이 해야한다는 것에 엄청난 반감을 갖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학원 갈 시간에 만화책이나 유튜브를 보고 누워 뒹굴다가, 미술학원 하나 다녀오고 저녁 8시까지 축구를 찬 후에 집에 들어온다.

그리고는 늦은 저녁을 먹은 후, 하루종일 미뤄둔 '엄마의 숙제'를 보며 한숨을 쉬기 시작한다.

9시쯤에야 시작한 숙제는 10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고, 11시를 넘기기도 일쑤였다.


10시에 소등을 해버리는 특단의 조치로, 숙제 수행에 속도를 내기는 했는데, 한숨의 깊이는 지구의 핵까지 내려가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이 일이 반복되고, 어떤 날은 숙제를 하다말고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몇 달을 끌어오던 어제 저녁, 결국 나는 용가리가 되어 붉은 분노를 뿜어냈다.


" 야, 이 녀석아! 넌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학생이 학생으로써 할 일도 제대로 안하면, 밥도 먹지 말아야지.

엄마 아빠가 힘들다고 돈 안벌어오면 좋겠어?

그럼 너네는 이런 따뜻한 집에 살 수 있을 것 같애? 그렇게 만화만 보고 쳐 앉아있으면, 뭐가 될건데?

유튜브 보는게 그리 좋냐? 전두엽 다 망가져도 괜찮아?

니 친구 걔 봐라, 학원을 3개를 다녀도 항상 열심히 하잖아. 넌 어쩔거냐고~~~!!

니 인생 니가 책임져라. 절대 내한테 빌붙지마라!

 책임 다 안할거면, 나가~~~~~~~!!!!! "


미친 것 같았다.

정말 필터없이 내 뱃속 저 아래에 꾹꾹 눌러담은 말들을 폭죽 터지듯이 뱉어냈다.

아이의 감정, 입장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매일마다 성경을 읽으며 인내와 사랑을 떠올리고, 육아 서적과 방송을 보면서 '저런 건 배워야 해'를 되내이면서.....

내 가장 추악한 모든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고야 말았다.


순간, 속은 시원했다.

찬물을 서너 잔 들이켜도 가슴이 뜨거웠지만, '다 꼴보기 싫다'는 한 마디로 3명 모두 잠자리에 들게 만들고 나니 조금 감정이 가라앉는 듯 했다.


'내가 뭘 한 거지?'


1시간쯤 조용한 거실에 앉아,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듣고 있자니 뭔가 마음 한 켠이 서늘해졌다.

마음이 여리고 정이 많은 아이인데,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 아이인데...

그래서 늘 학교나 학원에는 '잘 부탁드린다'고 굽신거리게 하는 아이인데....

정작 나는 그 아이에게 어쩌면 영원히 잊지 못할 대못을 박아버렸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짜증나고, 불쌍해서...눈물이 났다.




엄마의 독설에 상처 받은 둘째는 혼자 외롭게 잠들어 있었다.

항상 엄마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형,동생과 싸우며 엄마 머리카락이라도 잡고 자는 아이인데...

엄마의 날카로운 말에 베여서, 얼마나 아팠을까...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서도 내 눈을 피하며 조용히 씻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어색하고 서먹한 난 괜시리 첫째에게 또 짜증을 냈다.

"어서 먹고 가라~ 숙제 다 챙긴거야?"


둘째는 이리저리 서성이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 라며 현관으로 나섰다.

어찌해야할지 잠시 망설이는 사이, 아들이 현관문 미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

"......네?"

"잠시만 와봐..."


멀뚱히 서 있는 아들을 끌어 안았다.

"숙제 따위가 널 대신할 순 없어. 엄마가 너무 했다. 미안. 숙제 안해도 엄마 너 사랑해"

"........알아요 엄마........"

아들은 축 쳐진 어깨로 손을 살포시 흔들며 문을 밀고 나갔다.


에효...

미안하다. 부족해서...

엄마도 사람인지라, 이런 날도 있는가보다...


육아서에서 하지마라고 하는 것들 몽땅 몰아서 한 날.

비난하고, 책망하고, 비교하고,수치심을 주고 나니....

남는 것은 나에게도 아들에게도 오직 '상처'뿐이었다.

 

잘 포장되어 있던 추악한 나의 욕심을, 한 번 더 내려놓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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