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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Nov 29. 2021

다섯 식구에게 성큼 다가온 '위드 코로나' 시대

그 일이 내게는 닥치지 않을 것 같던 예감이었어.

무심했던지 혹은 무지했던지 코로나 감염의 위험은 그저 경제적,사회적 관점에서만 아픔으로 느끼고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가 선포되고 코로나 감염자수가 증가되면서, 다섯 식구에게도 감염의 가능성이 성큼 다가옴을 실감하게 된 일이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라지면서 '코로나와의 거리두기'도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느낌.

근데 이것은 그저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며칠 전, 늦은 오후 낯선 번호의 문자가 도착했다.

"귀댁의 자녀가 00일에 확진자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되어 안내드립니다. 능동감시대상자로 00일과 00일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몇 번이나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자녀는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지금 아이들 셋은 각자 어디에 흩어져 있는 것인지, 접촉한지 며칠이나 지났는데 그 사이에 돌아다닌 건 어쩌라는 건지....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막내를 어린이집에서 급히 데려오고, 각자 학원에 흩어져 있던 첫째와 둘째를 불러들였다.

보건소 전화에 불이 났는지, 계속 통화중이었기에, 셋 중에 누가 능동감시대상자인지 알 수도 없었다.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장소로 보아선 아이들 셋이 함께 들어갔던 곳이라...혹시 셋이 다 대상자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근처 보건소로 셋을 태우고 달려가면서도, 이것이 정말 내게 닥친 일인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일본의 심리학자 '이누미야 요시유키' 등의 연구(2007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불행한 사건이 나에게 발생될 가능성을, 타인에게 발생할 가능성에 비해 상당히 낮게 예측한다는 결과가 있었다.

정말 이 연구의 결과치가 신빙성을 더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러가며, 검사를 마쳤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고, 그걸 지켜보는 겁 많은 나는 또 한 번 공포에 휩싸였다.

남편에게 일찍 오라는 전화를 하려는데, 그 사이 보건소로부터 새로운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귀댁의 자녀가 00일에 확진자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되어 안내드립니다. 능동감시대상자로 00일과 00일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어쩐지...보건소에서 아무 질문없이 아이들을 모두 검사해준 것은, 이미 검사대상자로 올라와있었기 때문이었나보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아 감사했지만, 겁 많은 우리 가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틀 후까지 '자발적 격리'를 선택했다.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평생 처음 당한 확진자와의 접촉이라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48시간의 자발적 격리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 현인의 조언도, 내게 닥친 현실 앞에서는 여유로운 농담처럼 내뱉을 수 없었다.

다섯 식구가 한 공간에 꽁꽁 묶여 부딪히고 소리치다보니, 차라리 독방에 혼자 갇힌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이던 그 마지막 어느 날처럼, 우리는 차가운 바깥 공기에 목말라갔다.

씻지 않은 피부에서 일어나는 각질만큼이나 건조해진 영혼들로 서로를 귀찮아하며, 코로나로 고생하신 모든 분들을 존경하는 마음까지 느낄즈음, 겨우 '자발적 격리'를 끝내게 됐다.


자발적 격리를 자축하며, 쇼생크 탈출이라도 한 듯 우리는 근처 공원으로 달려 나갔다.

바깥 공기가 이렇게 상큼했는지 사십 평생을 살면서도 깨닫지 못했었다.

아이들도 차가운 밤공기가 좋은지, 땀이 줄줄 흐를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이 자유가 영원하길 바라며, 이만큼이었던 게 다행이라고 애써 웃고 있었다.




꿀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띵동'

눈에 익은 듯한, 꺼림직한 느낌의 발신번호로 문자가 또 날라왔다.


"귀하는 00일에 확진자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되어 안내드립니다. 능동감시대상자로 00일과 00일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읽고 또 읽었다.

정말 나를 말하는 건가? 귀댁의 자녀가 아니고 나인가? 다른 사람이 번호 잘못 쓴거 아닌가?

넋이 나가 문자를 바라보는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문자 뭐야~~~~~"

"당신도 왔어?"

"이거....우리 그 날 갔던 날이네....."

"아우.......그러네...."


가지 말껄, 잠시 앉아 있지 말걸....

그 수많은 시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2년여의 시간을 잘 보내왔는데, 하필이면 연달아 가족들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걸까...가족 구성원이 적었다면, 접촉 빈도도 확연히 떨어지지 않았을까?

가지 많은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얼마나 자주 이런 위험에 노출되게 될지, 피부로 체감하는 두려움이었다.


남편과 나는 검사받을 동지가 되어 그나마 기쁘다며, 덜덜 떨리는 손을 꼭 잡고 보건소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빨리 올라가라며 재촉하던 그 계단이었는데, 나는 마치 발목에 철퇴를 매단 듯 무겁게 한 걸음씩 올려놓고 있었다.

제발 음성의 결과가 나오길 기도하며, 우리는 또 자발적 격리에 들어가냐며 두 손을 부여잡았다.


푹 찌르는 면봉의 아픔만큼이나, 일상의 소중함을 뼈 아프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위드 코로나....뭔가 편해지는 건가 싶었더니, 나의 무식함에 대한 완벽한 배신이었다.

말 그대로 코로나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며, 수시로 코를 찌를 준비를 하고 사는 것이 '위드 코로나'가 아닐까


안 그래도 바람 잘 날 없는 우리 다섯 손가락인데...

한 번 겪고 보니, '일상의 멈춤(격리)'이 일상이 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다.

더 많은 접촉 위험만큼, 얼마나 자주 '새로워진 일상'을 품고 가야할지, 아직도 나는 현실 부적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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