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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Dec 06. 2021

중년, 불 장난에 빠져들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중년이라는 무게가 무겁다.


미혼으로 환갑을 넘긴 고모는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니가 아냐며, 아이가 많아 고민도 끊이지 않는 내 삶의 무게는 얕잡아 보는 감이 있다.

난 혼자 외롭게 늙어간다는 고모의 삶이 가끔 부럽기도 한데 말이다.


아이들이 자라고 중년이 되고보니, 부모로써 책임질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진 것도 없지만, 요만큼이라도 누리는 것들을 모두 잃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도 적잖은 제한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인지, 요즘 자꾸 눈이 가는 곳이 있었다.

지인들의 카톡이나 인스타 사진에서 보여지던 '불멍 사진'이었다.

그 사진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내 머릿 속의 모든 생각들을 그 불덩이 속으로 던져 버리고 싶은 걸까?

장소가 어디든, 불을 활활 피워놓고 싶다는 충동이 들곤 했다.


귀차니즘이 심한 우리 부부는 어느 누구도 캠핑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불멍은 꼭 하고 싶었다.

남편을 조르고 졸라, 1박은 하지 않고 반나절만 캠핑장에서 불멍을 하고 오기로 했다.

내 생애 처음 캠핑장 입장이었고, 불멍의 기회가 온 것이다.


남편 지인에게 작은 텐트와 불멍 장비를 빌려 가까운 캠핑장으로 달려갔다.

난생 처음 펼쳐보는 텐트와 장작 피우기였기에 서투른 우리 모습이 우스웠다.

주변의 근사한 신상 텐트들 앞에, 무너질 것 같은 우리 텐트는 스산한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장작을 어떻게 지피는지도 몰라, 일일이 지인과 통화해가며 우여곡절 끝에 우리 화로에도 불이 올라왔다.

활활 타올라라


붉은 불길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알콜이 몸을 휩쌀 때 느껴지는 그 뜨거움이 불길에서 전해졌다.

불길에 취해 눈동자까지 풀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불멍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본 적도, 어떤 데이타를 찾아본 적도 없지만, 왜 불멍을 하러 삶의 본진을 잠시 떠나고자 하는지 짐작은 되었다.


10키로의 장작을 다 지펴갈즈음, 장작을 더 사오자는 말에 남편이 선을 그었다.

"불장난 그만해~ 오줌 싼다 진짜...."


남편은 내 고민의 무게를 알아서였을까?

조명등 하나 없어서, 서로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아 서로 아무런 대화도 없이 불꽃만 바라보고 있었다.


집을 팔아야할지도 모를 진로를 선택한 첫째, 그 첫째의 선택때문에 동생들이 무언가를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매달 사업장의 운영으로 골머리 아프다는 남편....그리고 뭐든 해야겠는데,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나 자신까지....

모든 잡념을 불장난으로 날려버리고 싶었다.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동안, 아무 말도 없이 장작을 던져가며 식었다 붙었다 하는 불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주변 상황 아무 것도 보지 말고, 불꽃처럼 활활 인생 한 번 더 태워보자는 용기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불장난에 재미 붙인 중년은 2주 뒤에 또 같은 장소를 예약해버렸다.

"여보, 나 다담주에도 불장난 하러 와도 돼?"

"그래라~~취미 하나 생겼네 불장난..."

빙그시 웃으며, 불장난의 뒷처리를 담당해주는 남편도 은근 조용한 사색의 시간이 좋았던 듯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머리카락 한 올까지 스며든 불장난의 흔적이 나쁘지 않았다.


중년의 무게가 무엇인지 짧은 말들로 정리하긴 어렵다.

부모가 겪은 젊은 날의 고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작은 소망인지, 아이들의 무게까지 내가 다 가져가버리고 싶다는 오지랖같은 책임감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디 말할 곳도, 속 시원하게 해결해줄 곳도 없는 상태, 그저 불장난으로 한 바탕 태워버리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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