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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Dec 08. 2021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갑니다.

"엄마~ 이거 싸인 좀 해줘"

"뭔데?"

"경위서야....친구랑 싸워서 경위서 썼거든, 싸인 받아오래"

"........무슨 경위서를 수시로 쓰냐? 또 싸웠어?"

"아니라고, 아 진짜~ 진짜 억울해....걔가 장난을 먼저 쳐서, 그냥 같이 장난치고 있는데, 내가 걔를 깔봐서 함부로 했다잖아! 아니라고 했는데, 계속 맞다니깐 어떡해, 그냥 빨리 쓰고 끝내버려야지!"


이 무슨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오는 형사와 청소년들의 강압수사 장면도 아니고,

아니라는데, 계속 맞다고 하니깐, 빨리 끝내고 싶어서 쓰라고 하는데로 썼다니...

2학기 들어 4번째 경위서였기에, 이번에는 그냥 싸인을 해서 보내기가 싫었다.


3번째까지 받아올 때도, 속은 부글거렸지만, 13살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을 너무 잘 알기에, 

선생님도 얼마나 화가 나면 이러시겠나 싶은 공감이 되었기에, 아들을 얼르고 달래며 싸인을 해서 보내주었다.


매번 억울한 상황은 항상 부록처럼 끼어있었지만, 세상에 따지고 들면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절대적인 선이란 없기에, 누군가의 기쁨이 누군가에겐 슬픔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억울할 원인 자체를 만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1년을 마무리해가고 있었는데, 또 사건 경위서라니...

경찰서라도 불려가 앉은 듯,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가 적은 경위서를 수십번 읽었다.

정말 문제가 됐던 상황은 마지막 친구와의 다툼이었는데, 1~5번까지 매 교시마다 '떠들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반성하며 죄송하다는 자백. 

참담했다. 

정말 이렇게 매 시간마다 떠들어 죄송할 정도의 일을 만들었다면, 이건 제 정신이 아닌거다.


"앉아봐라. 너는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는거니? 왜 모든 수업 시간에 떠드는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수업내용 이야기한건데, 무조건 내가 잘못한 것을 전부 적어내라니깐 어떡해!"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되지, 니가 안 떠들었는데 거짓말로 적은거야?"

"안 떠들진 않지, 어떻게 수업 시간에 아무 말도 안하냐고, 애들이랑 준비물도 주고 받고 얘기도 하지....."


진짜 CCTV를 돌려볼 수도 없고, 그냥 다른 아이들이랑 똑같이 했다는데 왜 모든 것이 하루종일 잘못한 것 투성이일까?

심지어, 이틀 전부터 쉬는 시간에 움직이지 못하게 규칙을 만들었단다. 우리 아이 포함 5명에게.

이들은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쉬는 시간도 아무 활동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몇 주전에는 아예 '시커먼스'라는 이름을 붙여서 한 조로 문제아(?)들을 다 모아서, 발표와 각종 활동에 제한을 두었다는 증언까지 있었다.

아이의 입장만 들으면, 세상 억울한 일이다.


결국 나는 엄마 혹은 아들의 대변인이자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한 프로파일러같은 마음으로,

담임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다. 

선생님의 입장도 들어봐야, 내 마음의 오해도 풀리고, 아이가 정말 억울하기만 한 것인지, 개선할 일들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이톡으로 문의를 남기니, 다음 날 오후 3시에 오라고 하셨다.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으시는 걸로 봐선, 대략 짐작을 하신 듯 했다.




담임 선생님의 첫 느낌은 다소 차갑지만, 차분한 분이었다.

덤벙거리는 아들은 선생님의 나이를 할머니쯤 되신 것 같다고 했지만, 딱 봐도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선생님이셨다.

짧은 인사를 주고 받으며, 본론을 과감하게 던졌다.


"선생님, 어제 이 경위서를 받고서 제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이대로라면 정말 우리 애는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음....어머니......사실이 맞습니다."

"네?"

"학년 초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차츰 장난이 늘더니, 11월쯤 되어서는 무리를 지어 함께 집단행동을 하네요...통제가 쉽지 않아, 제재를 가한 부분이 많습니다"


선생님과 1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선생님의 고충이 무엇인지도 느끼게 되었다.

엄마로써 내 아이의 입장을 조금 더 감싸주고 싶은 마음을 내비추었지만, 선생님의 어려움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교실 문을 들어서기 전까지, '일단 기선 제압을 할까? 침착하게 고상을 떨어볼까?' 컨셉과 입장문 발표의 정리들로 머리가 복잡했었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같은 엄마 대 엄마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모든 벽이 무너졌다. (적어도 내 마음엔....)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이렇게 어머니처럼 관심을 가져주시면, 저도 속시원히 아이들 문제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저희가 먼저 꺼내면 불쾌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네,선생님~ 정말 수고 많으셨네요. 남은 6학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가정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어머니, 저랑 이야기가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상담 신청할 때의 마음은, '선생님, 아이들의 개성을 최대한 포용해주시고, 다양성을 존중해주세요.'였는데, 교실 문을 나올 때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 역할을 감당해내는 모든 개개인은 소중하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학생으로써 겪는 성장의 고통, 선생님이 일과 사명감 사이에서 겪을 번뇌, 내가 엄마로써 겪는 인내의 시간..

모든 것은 가치 없는 것이 없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아이의 이야기만 들어보거나,가끔 내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대한민국의 교육은 변화나 성장이 전혀 없어보였다.제도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고, 사람이 또 그런 사람을 만들고, 그런 사람이 또 그런 제도를 만드는....악순환의 고리는 얼마나 세월이 지나야 만족하는 모양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함만 있었다.


선생님과 짧은 상담을 통해 갑작스레 달라진 상황은 없었다.

아이의 경위서는 결국 수정없이 선생님께 전달되었고, 아이는 언제나 똑같은 "노력할께요"라는 말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엄마와 아이의 마음을, 아이와 나는 선생님의 마음을 충분히 나눈 시간이었기에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마음만은 가득 찬 기분이었다.


또 언제 어떤 일로, 어떤 컨셉을 잡고 학교를 방문할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문제 해결보다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우선한다면, 언제나 선한 것들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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