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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Nov 08. 2021

13살 아들의 서랍 속 비밀

사춘기,모른 척 넘어가주어야 할 때

30년 전, 국민학교 6학년이던 나의 나무 책상 서랍 속에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일 나가신 엄마를 대신해 날 키워주던 표독스러운 고모의 눈을 피해, 수학 문제집의 답지를 숨겨놓았던 것이다.


고모는 엄마보다 워낙 눈치가 빨라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히 살피고 호통을 치곤 했다.

자기도 못하는 수학을 왜 그렇게 억지로 풀게 했는지, 고모의 호통과 잔소리를 피하는 방법은 100점을 맞는 것 말고는 없어보였다.


고모가 화장실을 갔거나, 할머니 방에서 티비를 보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서랍 제일 윗칸을 열어, 펼쳐놓은 페이지의 답을 베껴 쓰고, 황급히 서랍을 닫았다.


그 때 고모가 이걸 알았더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텐데, 지금까지도 추억팔이로 이 이야기가 빠진 걸 보면,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게 분명했다.


고모의 눈이 날카로워지고, 목소리가 뾰족해질수록 난 더 고모에게 들키지 않을 교묘한 방법들을 궁리해나갔지, 절대 멈출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며칠전, 6학년인 첫째 아들의 서랍을 우연찮게 열어보게 되었다.

동생이 학교 준비물인 콤파스를 찾는데, 형 방에서 본 것 같다는 얘기에 책상을 습격하게 된 것이다.

첫째는 옆 침대에 누워 만화책을 읽고 있었기에, 우린 당당히 모든 서랍들을 뒤질 수 있었다.


맨 마지막 서랍을 여는 순간, 난 살짜쿵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오 마이 갓!'

빠르지만 정확한 눈동자 굴리기로 두 아들을 살피고, 주먹을 크게 쥐어 하얗고 핑크빛 도는 막대를 잡아 빼내었다. 아무 것도 못본 것 처럼.....넣어둔 그 녀석보다 발견한 내가 더 놀라며, 그 비밀을 움켜 잡았다.


침대에서 아무렇지 않게 만화책을 보는 걸 보니, 거기에 그것을 넣어둔 것조차 까먹은 게 분명했다.

'저렇게 어설프면서, 뭐 때문에 일은 저지르나...'

약간은 어눌하고, 어느정도 순진한 첫째가 고맙기도 하면서, 이런 당황스러운 순간에는 제발 치밀해지라고 아이러니한 잔소리를 퍼붓고 싶기도 했다.


안방 화장실로 달려간 불끈 쥔 주먹을 펴보니, 심장이 쿵쾅대기도 하고,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녀석이나 나나 당황하지 않고 건강하게 넘길 수 있을지 만가지 생각이 복잡했다.


내 손바닥 위에는 핑크빛이 도는 하얀 야구방망이 모먕의 작은 템포가 놓여 있었다.


안방 화장실 수납장에 넣어두고, 가끔 필라테스 운동을 갈 때마다 사용하던 것인데, 그걸 어떻게 찾아낸 건지..

아들은 비닐까지 살포시 뜯어보고 다시 넣어둔 모양이었다.

플라스틱까지 벗겨보지 않은 걸로 봐선, 호기심에 꺼내봤다 너무 놀라 그냥 포장지로 넣어버린 게 아닌지 그 모습이 상상되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 아들에게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어디서 들었는지, '콘돔'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그게 뭐냐고 당당히 묻던 녀석이, 나의 설명이 시작되자 귀를 막으며 "그만해~~~~"라고 소리치던 게 떠올라서다.


13살 아들의 성교육을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줘야할지...

지금까지 읽었던 수많은 육아서가 책장 한 면을 다 채웠는데, 사춘기 자녀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없으니, 다시 또 사춘기 성교육에 관해서도 공부를 해야할 때가 온것 같다.


30년 전, 나의 작은 행동까지도 감시하던 고모를 피해 이리저리 비밀을 만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구속하면 할수록 더 깊은 곳으로 숨고 싶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성급하게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마 이대로 뭍어버리게 될 것 같은 아들 서랍 속의 비밀.

이렇게 하는게 맞는건지 헷갈리지만, 일단 답을 찾을 때까지는 침묵으로 아이의 서랍 속 비밀을 지켜주고 싶다.


건강한 호기심으로 행복하게 성장하길 바래보면서, 오늘도 엄마는 눈을 질끈 감고 웃음을 참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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