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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Nov 04. 2021

너 이러고 어떻게 사니?

내 삶이 네게 위로가 되었구나

동갑내기 나의 친구는 사연이 많다.

내 일이 아니라, 쉽게 풀어낼 수 없는 이야기지만, 지금은 딸 하나 그리고 남편과 살고 있다.

엄마들도 동갑, 딸들도 동갑, 만나면 참 편한 사이다.


부산과 경주라는 거리때문에 자주 볼 순 없지만, 미칠 것 같은 일이 생기면 결국 서로를 찾곤 했다.

몇 달전, 남편과의 다툼으로 친구는 부산으로 가출같은 외출을 한 일이 있었다.


"꼭 이런 일이 있어야 보는거지?"

"그러게 말이다."

"빨리 부산으로 와~ 얘기나 좀 하게"


차로 달려 1시간30분이면 올 거리였지만, 마음이 평안할 때는 그 거리도 멀게 느껴진다.

울화가 치밀고, 내가 속해 있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내 목을 비튼다는 기분이 들어야, 1시간 30분은 화를 발산하며 미친듯이 액셀을 밟아 올 수 있는 거리가 되는 것이다.


보라빛과 푸른빛이 무섭도록 창백하게 보이는 친구의 입술과 눈밑 다크서클들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외로웠을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사는게 다 그렇다고, 백만번은 들었을 법한 위로는 아예 귀에 들어가지도 않는 듯 보였다.


영문도 모른체 따라온 딸은 우리 막내와 조용히 앉아 엄마의 모습을 관찰했다.

여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엄마의 감정과 공감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듯 하다.

둘은 멀찌감치 앉아 조용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자기들의 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되돌릴 수 없는 슬픈 인생 이야기에 빠져 도돌이표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시커먼 무리들이 뛰어들어왔다.


"엄마~~~엄마~~~집에 있어?"

"어~~오늘 있었어. 학교 잘 다녀왔어?"

"회사 안나갔어? 오예~~~빨리 간식 좀 줘~~"

"응....그래, 이모한테 인사 좀 해라"

"어?? 안녕하세요~~! 야야야야, 빨리 이거 오락 깔아라고!"


순식간에 집안 분위기는 시골의 오일장터처럼 왁자지껄했다.

우리집 아들 둘을 따라 들어오는 서너명의 남의 집 아들들...

'안녕하세요....'라는 낮은 목소리로, 무채색 운동복 차림의 남자들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눈물을 훔치던 친구는 흠칫 놀라, 주방으로 날 쫒아 들어왔다.

우리 아들들 포함 6명의 남자들은 오락을 하면서도 실전의 싸움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니가 막아, 아냐 너 빠져!"

"아 씨~~뭐야 막으라고!"


욕설이 난무하며 정신없는 몇 십분이 흐르고, 친구와 함께 준비한 간식을 내어가자,

정글의 사자들처럼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릇들을 비워냈다.

비우고 채우기를 두 세번, 흩어진 부스러기들을 치우고, 냄새나는 양말들이 지나간 자리를 닦아대고...

갑자기 차가웠던 집의 온도가 분주한 움직임들 때문인지 후끈 달아올랐다.


오락 시간이 끝나고,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 5살 동생들을 보며 아들들은 장난을 시작했다.

던지고 안고, 잡으러 뛰고, 숨고 찾고, 놀리고 울리고를 무한 반복...


오전 내내 우울한 기분을 끊어내지 못했던 친구는, 어느새 빙그시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야...너 이러고 어떻게 사니?"

"응? 크크크크 좀 심하지? 나 매일 반복이야"

"넌 진짜 우울할 겨를도 없겠다....에휴...정신 차리자. 너도 정신줄 붙들고 사는데..."


친구의 우울한 마음을 한 방에 정리해준 위로의 순간이었다.

나보다 더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도 사는데...' 라는 마음이 든다고 하더니 그런 류의 위로였을까, 아니면 사람 온도의 따스함 덕분이었을까?


그 날따라, 머리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시커먼 남자들을 소몰이 하듯, 억세게 사는 내 모습이 친구의 마음엔 백 마디 말보다 진한 위로가 됐던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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