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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Oct 28. 2021

애 셋 낳고, 나에게 남은 건

좋은 것만 말고, 진짜 솔직히~

내 인생, 세 번의 출산을 경험하며 얻은 것은 무엇일까?

사랑, 겸손, 성숙, 인내.. 다 좋다.


하지만, 오늘은 문득 "예민함"이라는 단어가 크게 떠오른다.


첫 아이를 출산한 후 3개월쯤부터 갑상선 저하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방문하자, 의사는 갑상선 저하증이 동의보감에서는 "홧병"이라고 알려주었다.

불현듯 시어머니께서 고층빌딩 갖고 계시냐는 유머로 날 위로해주셨지만,

내게는 '너무 예민한 아이'와 '너무 다른 시댁과의 갈등'이 무거운 짐이었다.


둘째는 시어머니와의 갈등 후, 정말 얼떨결에 생긴 아이였다.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서 연락이 끊긴 채 두어달을 지냈는데, 갑작스레 아이가 생긴 것이다.

태교하는 며느리를 힘들게 하긴 싫다며 어색하게 화해를 하게 됐지만,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풀리지 않는 응어리들이 남아 있었던 듯 하다.


셋째는 39세의 나이에 얻은 늦둥이인데, 아들 둘을 키우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에서 아차하는 순간에 생긴 아이였다.

딸이라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한 육아의 시간이었지만,

당시 살았던 신축 아파트의 층간소음 문제로 출산 후 2년간 너무 괴로운 시간을 보냈었다.

중간에 끼인 집이라, 윗집, 옆집, 대각선 옆집까지 밤낮으로 쿵쿵대며 시끄러운 환경이었기에, 24시간 어느 때도 마음 편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막내의 출산 후, 다년간 쌓여온 스트레스는 그렇게 폭발해버린 것 같다.

그 때부터 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지면서, 약간의 소음에도 복통을 느끼며 화장실 직행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청신경 절단술 같은 것도 찾아볼 정도였는데, 다행히 한약을 먹고 과민성 대장염은 회복되었다.


이제 막둥이도 6살이 다 되어가는데,

난 여전히 귀마개가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


아파트라는 환경을 벗어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도 나의 예민함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제일 낮은 층으로 이사왔지만,

윗층까지 내가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름 조용한 분들이 이사를 오시지만, 내 귀에는 그 분들의 사소한 움직임도 왜 다 들리는 건지...

가끔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땅이 진동되는 느낌이 전해지기도 한다.

미칠 노릇이다.


오늘도 우리집엔 백색 소음들이 가득하다.

라디오 소리, 공기청정기 소리, 낮은 경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누구도 날 헤치지 않는데, 왜 나만 이렇게 항상 긴장 상태인 것인지....


가끔은,

아이를 셋 낳고 내게 남은 것이, 오직 "예민함"뿐인 것 같은 날이 있다.

오늘이 또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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