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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Oct 26. 2021

밥 씹어먹을 힘도 없구나.

삼남매 엄마의 일상 넋두리

아침 7시.

미라클모닝은 꿈도 못꾸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니, 이미 13살 첫째는 깨어있다.

목적도 없지만, 왠지 있어보인다며 아침 8시엔, 엎어지면 코 닿을 학교로 달려간다.


분주하게 아침밥까지 먹여서 첫째를 보내고 나면, 아침잠이 많은 10살 둘째의 짜증이 시작된다.

8시50분까지 등교라며, 8시 48분에 겨우 집을 나선다.

속이 부글부글 천불이 나지만, 아침부터 나무랐던 어제의 일이 떠올라, 화를 꾹꾹 참고 보냈다.


둘째와 비슷하게 일어난 남편은, 그 사이 어느새 출근을 하셨고...

9시10분 등원하는 셋째는 9시가 되어도 눈을 못뜬다.

평소같으면 잠결에 옷을 입히고 양치를 시켜서, 그냥 안고 뛰어가는데, 오늘은 그것마저도 왠지 귀찮았다.


'에이 모르겠다..'

사무실의 급한 일은 재택 근무로 대체하고, 셋째가 일어날 때까지 일과 청소를 번갈아 가며, 눈에 보이는 것들만 발가락으로 집어 옮겼다.


11시쯤에야 겨우 일어난 셋째는 난데없이 소풍을 가잔다.

나들이야 언제나 좋지만, 일도 청소도 아무것도 정리 안된 그 타이밍이 좀 애매했다.

12시까지 징징대는 아이를 바라보며, 미련하게 노트북을 잡고 있던 나는....

결국 모든 것을 덮고 일어났다.


"가자. 가자. 나가보자!"


왜 안보냈을까...

왜 출근하지 않았을까...

왜 일상의 규칙을 깨어버렸을까...


그렇게 돌발적으로 셋째를 데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수목원으로 향했다.

수목원 도착이 1시쯤.

광활한 수목원을 뛰어다니며 뒹굴기를 3시간....

에너자이저인 5살은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넓은 수목원에서 길이라도 잃을까봐 얼마나 쫒아다녔던지,

4시 30분쯤 수목원을 나설 때, 내가 무슨 지리산이라도 등반했던마냥 지쳐버렸다.


저녁시간 도저히 밥을 할 수도 없었고, 하기도 싫었다.

두 아들은 쉴새없이 학교에서의 부당한 사건들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하나하나 들어주고 공감해주자니, 정서적 에너지도 바닥을 쳤다.


"안되겠다. 우리 밥 사먹으러 가자."


다시 메뉴를 정하기위해 싸우는 10분,20분...

그냥 고기 먹자는 내 의견으로 마무리하고, 남편 없이 세 아이를 데리고 고기집을 갔더니,

이건 밥을 먹는건지, 수발을 드는건지...

고기 굽기가 무섭게 그릇은 비었고, 거의 2시간을 그렇게 굽고 먹이고 했더니,

내 입으로 고기를 집어넣을 힘조차 없었다.

오늘도 결국 팔을 들 힘만큼만 몇 숟가락 먹고 땡이다.


하루하루는 조금씩 다른 모양이지만,

어쩌면 밥을 씹어먹을 힘도 없는 내 모습은 매일 이렇게 똑같은 건지....


그래....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엄마는 오늘도 열심히 살았단다.


밤 11시가 다 되었지만, 나의 또 다른 하루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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