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잘안 Oct 22. 2021

막내 딸의 영재성?

그저 예쁜 셋째, 늦둥이처럼 키우라는 가르침

"엄마는 나쁜쟁이, 엄마는 진짜 나쁜쟁이야!"

매일 저녁, 자기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막내 딸이 내게 쏟아내는 말이다.


문구점을 수시로 들르고,

매니큐어로 나뭇가지를 칠하고,

국수 가락을 화장실 변기에서 불리고,

인형 머리를 물감으로 물들이고...


모두 5살 아이들이 할 법한 행동이지만, 나이 든 엄마는 뒷정리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니, 수용해준다 하면서도 입으로는 '적당히 좀 해라'가 슬며시 튀어나오곤 한다.


"엄마는 진짜 나쁜쟁이야, 왜 내가 치운다는데 못하게 해? 내가 얼마나 똑똑쟁이인데...나 정리 대박 잘 한다고!"

말처럼, 깔끔하게 정리를 해줬더라면 말리지도 않았겠지~

어질고 사라지고, 정리하면 다시 나타나 어질고...온 집안이 쑥대밭이다.


나는 나쁜쟁이, 자기는 똑똑쟁이.

매일 듣는 이 말이 어느샌가 자연스레 나의 별칭이 되어 버렸다.

오빠들도 모두, 엄마가 잔소리만 하면, "엄마는 나쁜쟁이"라며 빙그시 놀려댄다.


'나쁜쟁이'.

아이의 입에서 자연스레 나온 말이었지만, '나쁘다'와 '쟁이'가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렸다.

불현듯 호기심에 국어사전을 찾다보니, '장이'와 '쟁이'의 차이가 이렇게 나와 있었다.

'장이'는 수공업자의 직업 이름에 붙이는 접미사이고,
'쟁이'는 어떤 성격 등을 나타내기 위해 붙이는 접미사이다.
  

오호라~ 아이의 말대로 하자면, 나는 '나쁜 것에 익숙한 혹은 나쁜 것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쁘다'는 속성 뒤에, '-장이'를 붙이지 않고, '-쟁이'를 붙인 것은 어쩌면 적절한 선택이었다.


어랏, 진짜 우리 딸이 똑똑쟁이였네?


당연히 국어사전에 '나쁜쟁이'라는 단어는 등록되어 있지 않았고, '똑똑쟁이'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쟁이'를 채택했다는 사소한 한 가지에도 격하게 감탄하며, 넌지시 특혜를 베풀어주었다.

"알았어~똑똑쟁이야~그럼 마음대로 놀고, 정리도 다 해줘야 한다.꼭~~"

"응, 오케이~마미~"


셋째를 키우고서야, 평범함에도 '경이로움'으로 반응하여, 아이를 살리는 재미를 조금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만으로 38세가 되던 해에 얻은 막내 딸은, 소위 말하는 늦둥이다.

극단적인 두 성향의 아들을 키우며 적당히 힘도 빠졌고, 8년의 육아 경험도 쌓여있는, 나름 내공을 가진 엄마를 만난 것은 딸의 행운이었다.


막내는 무얼해도 예뻤다.

16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해서 장소불문 젖을 먹여야 했지만, 가능하다면 서너살까지도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쩔 수 없이 17개월부터 어린이집도 다녔지만, 그 상황만 아니었다면 7살까지 뭘 해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고 싶은 아이였다.

모든 것을 수용했다기보다, 적당히 마시기 좋은 보리차같은 사랑의 온도로, 아이를 바라본 것 같다.

그냥 사랑이었다.


얼마 전, 노규식 박사(영재발굴단)의 부모 코칭 강의를 온라인으로 듣게 됐다.

'아이의 재능을 살리는 부모의 역할' 중에, 아이를 늦둥이처럼 키워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아이의 인지발달과 잠재력 개발을 높이는 것에는, 아이를 늦둥이처럼 너그러운 자세로 바라봐주는 부모의 태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랬다

비록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어지럽히는 '바지런쟁이' 막내 딸이지만, 쑥대밭을 만드는 것도 모두 귀여운, 늦둥이기에 가능한 여유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를 '똑똑쟁이'라고 부르는 막내, '-쟁이'라는 접미사를 적절하게 붙여주는 영특함?

나이 든 엄마라 잘 챙겨주지 못하는 부실함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며 웃어본다.


진짜 '똑똑쟁이'던지 말던지...

아무래도 예쁘다.그저~

작가의 이전글 엄마,나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