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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Jan 27. 2022

타일 아저씨가 사준 커피 한 잔의 댓가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

영하 4~5도를 넘나들던 늦은 밤, 안방 욕실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쩌~~~~~억!


"찌야~~~괜찮아?"

욕실 문을 열자, 목욕중이던 아들은 수건을 든 채 얼음이 되어 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엄마, 저.....기 봐바......나 아무 짓도 안했어......벽이....."

타일 6장이 단층이 난 채로 쭈~~~욱 금이 가버린 게 아닌가!

약간 실금이 난 정도가 아니라, 좌우로 층이 벌어지면서 아예 갈라져버린 것이었다.

타일이 떨어져 아들에게 맞기라도 했으면 어쩔뻔 했나...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자보수 기간이 끝난 관계로 무상수리 불가일 것이고, 똑같은 타일을 찾지 못하면 전체 교체를 해야할 판이었다.

어렵사리 동네 엄마들에게 수소문해 하자보수팀을 담당하던 타일 아저씨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 분은 똑같은 타일을 보유하고 계실뿐 아니라, 수리 결과도 모두 만족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짧은 통화 후, 아저씨는 마치 대기라도 하신 듯 한달음에 상태를 살피러 오셨다.


"타일이 딱 봐도 6개인데, 아마 수건 수납장 뒤로도 더 깨졌을 수 있습니더"

"하...그래요? 여튼 잘 좀 해주세요...보수팀에서는 비용을 00만 받으셨다는데...싸게 좀 해주세요"

"아~~~그 가격은 절대 안됩니더. 그건 내가 여기 상주해있을 때 가격이고, 이건 내가 일부러 와야잖소!"

"네네...알아요~ 그럼 얼마나 더 드리까요?"

"35 주소!"

"네? ...... 조금만 깎아주세요...타일 6장에..."

"인건비가 안돼요. 35 주소!"


우리집 화장실과 똑같은 타일을 갖고계신 그 분은, 내게 절대적인 갑이었다.

결국 어찌어찌 사정해서 30으로 비용을 맞추고, 바로 다음날 오전에 오시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타일 기술이나 배울껄....하는 속상함이 배고픔도 잊게 했다.

점심도 굶고 쓴 커피 한 잔으로 시커먼 속을 달래려는 찰라, 타일 아저씨의 노란 점퍼가 눈 앞에 쓱 스쳐갔다.

깎아달라고 비굴하게 굽신거렸던 내가 부끄러워 모른 척 할까 하던 순간, 아저씨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안녕하세요~ 사장님, 여기서 또 마주치네요 호호호"

"아...네네 안녕하쇼"

아메리카노 한 잔 얼른 주문하고 나가려는데, 카페 사장님은 내 돈을 돌려주셨다.

"왜요?"

"아~ 여기 사장님이 커피 사주신대요~"

"네?"

결혼하고 처음으로 낯선 남자에게 얻어마셔보는 커피라, 이걸 받아먹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꽤 어색한 순간이었다. 타일 아저씨는 세상 자비로운 표정으로 " 걍 드셔, 갖고 가셔" 하며 웃어보이셨다.


비용도 깎아주고, 커피까지 사주니...

이거 내 미모(?)가 한 몫 하는 순간이구나~~~

30 날라갔다 속상하던 마음이, 타일 아저씨의 커피 한 잔에 눈 녹듯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여보! 타일 아저씨가 5 깎아주고, 커피도 사줬다~~~나 아직 살아있어~~~"


남편은 내 말에 콧방귀를 며, "너 분명 뭐 호구 잡힌거야...원래 그거 10 받고 하던 일일거야"라며 날 놀려댔다. 이유가 뭐든, 뭔가 내가 승리의 깃발을 든 것 같은 기분은 왜인지...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30이면 싸게 한 것 같다는 기쁨에 도취되어 갔다.




타일 아저씨는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환한 얼굴로 오셨다.

거대한 장비들을 들고, 주작업자라는 어르신 한 분까지 모시고 오셨다.

거대한 굉음들과 함께, 나에게 친절하신 타일 아저씨는 노련한 솜씨로 깨진 타일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고 계셨다.


1시간쯤 지날 무렵, 아저씨는 온통 하얀 먼지를 뒤집어쓰신 채 뚱한 표정으로 날 부르셨다.

"사모님~ 이거 도저히 안되겠습니더. 6장이 깨진 게 아이고, 옆으로 옆으로 계속 금이 나갑니더. 추가 비용이 들겠습니더!"

"네? 아니...어제 그것까지 예상하시고 금액 측정하신댔잖아요....그냥 30에 좀 해주세요~"

"안됩니더. 절대 이건...그 가격에 안됩니더. 주작업자분이 못하겠다싶니더!"


이 무슨 상황인가!

이미 타일은 6장 이상 벽에서 다 떼어놓은 상태인데, 추가 비용 지불이 안되면 작업을 중단한다니....

말로만 듣던, 그러한 수법(?)에 걸린걸까?

어리둥절, 멍청하기까지 한 내 순백의 표정에 타일 아저씨도 주작업자도 모두 손을 멈추었다.

"어쩌실랍니까!"

"네? 뭘 어째요....얼마를 더 드려야하는대요?"

"원래 20 추가인데, 15만 더 주이소"

"15요? 그 2~3장 추가에 15를 추가하세요?"

"밑으로 계속 나갈수도 있잖아요! 일단 더는 안부를테니까, 15만 추가하이소!"


세상에나...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 얻어 마시고, 15만원을 추가하게 되다니..

타일을 2~3장 더 깨진 건 사실이지만, 타일 1장 가격이 얼마인지 아는 내 입장에서는 15만원의 추가비용은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너 호구잡힌거야'

남편의 비웃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나의 친절함에, 나의 미모에 빠진 줄 알고 승리감에 젖었던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하....해주세요....총 45 맞죠? 더는 추가 없죠?"

"그래해야지요...더는 안받도록 만들어야지요!"


추가비용이 승인된 후, 더 금이 가는 타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타일 아저씨의 따뜻했던 공짜 커피 한 잔에 너무 환한게 웃었던 나의 순진함때문에...

매몰차고 격하게 가격흥정을 못하게 된 처참한 패배감!

참으로 쓰디쓴 아메리카노 한 잔이 된 셈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왜 떠오를까?

타일 아저씨의 선의가 왜인지, '빅 피쳐(Big Picture)'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웃픈 사연의 공사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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