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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Aug 04. 2022

아들아,너에게 배운다.

<포용>

"OO아~ 축구 차자!"

"지금? 음...나 지금 학원 가거든. 우리 5시에 만날까?"

"그래~~5시에 꼭 나와야 돼!"


방학 중엔 학원 순회를 도는 아이들이 많아, 같이 놀 친구를 찾기도 어렵다.

11살 아들은 몇 번의 통화 끝에 겨우 약속을 맞춘 친구를 찾아낸 기쁨에, 오후 내내 흥얼거리는 콧노래로 그 시간을 기다렸다.


5시에 만난 둘은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헤어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아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축구가 즐거워 빨간 얼굴이라기엔, 입이 너무 튀어나와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

"어! 아니...진짜 그 놈이 진짜, 사람을 짜증나게 해!!!"

"왜~~무슨 일인데?"

"아니, 물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을 팍 밀잖아! 그래서 물이 쏟아져서 나도 열받으니까 자전거를 찼지. 그랬더니 다시 또 내 공을 날려버리잖아!"

"둘이 싸운거야, 그럼?"

"아니, 걔가 시비를 건거지!!! 진짜 짜증나. 우리 문자 주고 받은거 보여주까?"


끈적한 전화기 화면에 수십개의 주고 받은 비난들이 보였다.

주로 요즘 아이들의 말줄임 표현이었고, 상대의 말을 무시한다는 내용들이었다.

마지막에 상대 친구는 아들에게 갑자기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고, 아들은 '응'이라는 짧은 답을 보냈지만 화가 안풀린 모양이었다.


"아들아, 엄마가 내용을 보니까, 이건 좀 아니다. 너 자주 걔랑 싸우잖아~ 그냥 이제 좀 어울리지마라."

"응?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지~ 맨날 학교에서도 자주 부딪히잖아."

"그래도...축구 같이 차는 친구잖아..."

"됐어~ 이렇게 안맞는 애랑 같이 놀다가,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몰라 또! 그냥 안맞는 애는 친구가 아닐 수도 있어. 다른 애랑 놀아, 그냥~"


그저 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줄줄줄 아들에게 잔소리 겸 충고를 건내고 주방으로 돌아섰다.

아들은 잠시 멍하니 서있더니, 샤워를 마치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앉았다.


"엄마, 근데....갑자기 친구를 안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해. 안맞으면 안노는거지...친구가 걔말고 없겠어? 엄마는 또 싸우고 이러면서, 그 쪽 엄마가 뭐라 할까봐도 신경쓰여..."

"응? 그래도...내 생각엔, 싸우기도 하면서 더 친해질 수 있잖아...친구는 그렇게 하면서 친해지는 거 아닌가?"


아들의 마지막 말이, 칼질에 몰두해있던 내 손과 머리를 잠시 멈추게 했다.

'친구는 그렇게 하면서 친해지는 거 아닌가...?'

언제부터인지 인간관계의 복잡함이 싫어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만 소통하는 내 모습이 들켜버린 순간이었다.

한창 뛰놀고 부딪혀가며 사회성을 길러가야할 나이의 아들에게, 엄마인 나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단 말인가!


"아....그러네....엄마가 오늘은 생각이 좀 짧았네...미안~"

"그렇지? 맞지? 괜찮아....엄마가 신도 아니고, 실수 할 수도 있지 뭐."

아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속좁은 엄마'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날 저녁 조용히 앉은 시간, 아들은 그 친구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전했다.

"엄마, 걔는 자기가 잘 하는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더라. 나는 걔가 뭐든 잘 하는 거 같던데...그렇게 얘기해주니까, 자기는 어릴 때 실수를 많이 해서 뭐든 자신이 없다고 하는거야. 그래서, 내가 얘기해줬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더 좋게 될 수 있다고."


아들은 그 친구와 싸운 일이 큰 일이 아니라고 했다. 듣고보니,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나눈 11살 아이들 사이에서 잠깐의 싸움은 오히려 또래다운 정상 행동일 수 있었다.


어른인 내 기준으로 바라본 11살 아들의 삶은 미숙해 보였기에, 아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잔소리라는 성벽을 쌓아주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깨달았다. 모든 것이 기우였다. 아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고 넓은 사고를 하고 있었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아들에게 '어른스럽다'는 수식어를 붙여줄 자격이 '어른(?) 엄마'인 내게는 없을 것 같다.

나와 많이 다른 아들의 모습을 통해, 나의 미숙함도 조금씩 영글어 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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