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주름 좀 어떻게 하래

-이게 나야, 이게 나라고-

by 당진

13년 전쯤의 일이다. 울산에서 소개로 한 할머니가 병원을 방문하셨다. 한눈에 보기에도 얼굴의 마디마디에 주름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할머니께선 상담실에 앉자마자 하소연으로 당신의 삶을 브리핑하기 시작하셨다.


“젊었을 땐 그래도 곱다는 소리 들었는데, 남편 먼저 보내고, 4남매 학교 보내고 시집 장가보낸다고 사는 게 바쁘고 여유가 없었어.


이제 좀 살만해서 모임도 나가고 친구들이랑 여행도 가고 하는데, 친구들이 나를 볼 때마다 요즘 부쩍 이런 말을 많이 해.


주름 좀 어떻게 해봐.”


딱히 아는 병원도 없고 소개소개로 우리 병원까지 오셨다는 할머니는 간절하셨고 비장하기까지 한 모습이셨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돈 걱정 말라고 내가 여기 올 때는 다 돈 마련해서 왔다며 갑자기 치마를 뒤적뒤적하시더니 한 겹 두 겹 속바지 안에 있는 주머니에서 70만 원을 꺼내셨다.


요즘이야 5만 원으로 모으면 손아귀에 70만 원은 충분히 잡히는 양의 금액이지만, 1만 원의 70장은 무게도 그렇고 부피도 꽤 나간다. 그걸 소중히 치마 안 속바지 속에 겹겹이 넣어 가지고 오신 것이다.


소중히 두 손 모아 할머니가 주신 돈을 받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그리 개운하지 않았다.


좋아진다고, 좋아질 거라고 말씀드렸지만, 당신에겐 결코 작지 않을 무게의 돈을 받았을 때 이미 마음 한구석에 큰 부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하는 효과를 얻어가야 할 텐데.. 사실은 가능할까~ 스스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70만 원이 아니고 천만 원을 들이면 효과가 있을까? 사실은 시술비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이미 골골이 자리 잡힌 주름은 당신이 살아오신 힘드신 삶만큼 만만찮은 무게로 얼굴 곳곳에서 말하고 있었다.


너무 열심히 살았고 힘든 삶이었다고.. 울산 할머니와의 만남에서 나는 메디컬 철학을 가지게 된 건지도 모른다.


울산 할머니 같은 어르신들이 주위에 너무 많다. 치열하게 살아오신 세월의 흔적이, 희로애락이 그대로 당신 자신이 되어 표정에서 주름에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그렇게 한평생 너무 열심히 살았다고..


남편을 위한 따뜻한 밥 한 끼의 정성이, 시어머니에 대한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공양이, 줄줄이 낳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삶의 터전에서 경제도 책임져야 했던 또순이의 기질이


세월을 등에 업고 처진 눈꺼풀로, 자글자글한 이마의 주름으로, 처진 양볼로, 입가의 골 깊은 팔자주름으로, 칙칙해진 마른 입술로 말하고 있었다.


이게 나야. 이게 내 삶이야.


과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어떤 의미를 붙여가며 할머니 먹고살만하시다면서 얼굴 관리 좀 하시지 왜 이렇게 되도록 그냥 계셨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얄팍한 아름다움에 관한 관점이 바뀌는 계기가 분명 이때였었다.


우리 부모님들의 삶이 고스란히 자리 잡은 얼굴의 그 모든 것들을 인정하자.


고객들을 바라다볼 때 그분들의 삶이 녹아있는 얼굴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비로소 올바른 상담이 이뤄진다는 걸 이때 알았다.


그분들의 처진 주름에 놓여있는 소중한 추억을 몇 푼의 금전적 시술로 업그레이드시킨다는 건 어설픈 미용 철학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발전된 미용시술로 보톡스도 놓고 주름의 곳곳에 필러도 놓고, 실로 얼굴 근육을 잡아당긴다고 주름이 다리미로 펴듯이 쫙 펴지고, 처진 근육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올라붙진 않는다.


우선 당신들의 삶을 이해하는 깊이와 어우러진 철학이 있는, 이너뷰티의 개념이 없다면 어울리지 않는 과한 시술의 결과로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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