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약 10여 년 전 어느 날엔가 내 몸에서부터였다.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여러 개로 분화되어 서로 화합하고 다툼을 반복하던 나의 자아들 중 예민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했던 한 자아가 독립을 선언했고 그 개성의 분출로 고통이 탄생했다. 예민함이 조금씩 흘려온 잔재들이 쌓여 어떤 형체를 이뤄 갔고 마침내 통증이란 감각이 실체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나는 이 고통을 몸이라는 환경에서 자연발생한 한 명의 작가라고 여긴다.)
오랜 시간을 무형의 존재였던 고통은 기분 좋은 듯이 기지개를 쭉 켰다. 고통으로 인한 통증이 생겨난 뒤로 내 몸은 내가 살아가기에 나쁜 환경이 되었으나 반대로 통증에게 나는 싹이 움트기 좋은 최적의 배양지였다. 그렇게 나는 졸지에 아픈 사람이 되고 말았으나 나를 괴롭힌 통증에게 어떤 식으로도 반격하지 않음으로써 내 정신의 고매함을 유지하려 했다,라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건 실은 통증보다 더 오래된, 어쩌면 진짜 병일지도 모르는 착한 아이증후군이 이 상황에마저 도져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드러내놓고 병으로 보이는 병과 사회적 미덕으로 위장되어 병이길 거부하는 병 중에 오래된 병의 증상이 우세해서 내가 고통을 사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선동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 고통이라는 작가 혹은 작자는 태어나자마자 작품 활동을 시작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우람하고 위풍당당한 나무와도 같았던 그의 작품은 내 꼬리뼈 쪽에 뿌리를 단단히 박아두고는 요추, 흉추를 거슬러 오르며 달콤한 척수액을 양분 삼아 자랐다. 위를 향해 흉폭하게 뻗어가는 동안 나무는 나의 척추 마디마디를 침식해 나가며 신경과, 근육, 인대를 모조리 절단내고 뼈의 외피마저 뚫어내고 말았다.
이 잔혹한 나무는 내 목에 이르러서는 몸통의 굵기를 줄여 한 템포 쉬고는 바로 다음 순간 내 머리통 속을 잔가지들로 빽빽이 채우고는 그 잔혹함을 초록의 이파리들로 대충 덮는다. 거기에 포인트로 붉은 사과 같은 통점들을 곳곳에 열매 맺어 놓는 치밀함까지 보인다.
곧장 성장해 버린 나무는 그로부터 끊임없이 살아 숨을 쉬고 나무가 뿜어낸 짙은 숨은 내 머리통에 갇혀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엇비슷한 위치를 뱅뱅 돌다 썩어갈 뿐이고 오염된 공기 탓에 나는 자꾸만 어지러워진다.
이쯤에서 나의 육체와 정신은 형해화된 수준에 이른다. 고통이라는 작가의 눈부신 데뷔에 넉다운이 된 원래의 나는 망가진 몸을 그에게 내어주고 남겨진 영혼이라도 데리고 피신할 요량으로 다급히 도망치지만 안쓰러운 나와 내 영혼은 밤낮없이 달려보아도 도착할 곳이 고작 손가락 끝이나 발가락 끝, 다시 방향을 꺾어 달려도 머리끝까지 밖에 갈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분명 끝이지만 끝이 나지 않는 한계가 나를 그림자처럼 덮고 새로운 시작이나 탈출과 연계되지 않는 끝은 영혼을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들고 만다.
벗어날 일말의 가능성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고통이라는 작가가 쓴 작품에서 운명에 결박된 주인공이 되어 좌절해 가라앉았다 희망으로 떠오르기를 사는 내내 반복한다. 이런 내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부지런한 연재에 따른 공은 모조리 그의 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