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은(정확히는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들은) 서로에게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 디딜 틈조차 허락하지 않으면서 자연에게는, 특히 태양과 미풍에게는 자신의 드러난 어깨 한편을 다 뒤덮여도 이물감 없이 감사하고 앞으로도 그와 비슷한 형태의 관심이 자신에게 되풀이되기를 갈구하며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그들의 은총과 애정이 이어지길 원한다.
인간에게는 오만할 정도로 느껴지는 콧대 높은 태도를 취하는 데 반해 자연에는 거진 굴종에 가까운 모습으로 도리어 자연의 끊임없는 허락을 구하고 그 너그러움을 한 줌이라도 나눠 가지길 원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인간에 비하자면 절대적인 존재인 자연만은 부디, 인간과 달리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고 골고루 세상을 다독여줘야 한다는 절망에 가까운 마지막 희망을 움켜쥐기 위한 본능적 행위인가
그걸 이해한다 해도 자연에 대한 사랑과 비례해 인간에 대한 존경이나 찬탄, 애정이 샘솟지는 않는다면 그건 방에서 책만 읽는 반편이 인간인 나의 잘못일까, 아님 저와 비슷한 것에는 부박하고 모질게 구는 인간 자체의 옹졸함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 후진 행동의 그럴듯한 항변으로 인간은 사실 자연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면 어떨까
떠오르는 대로 썼지만 쓰는 순간에도 부끄러운 글이다. 내 한계를 쉼 없이 내 속에서 보고 그것은 태어나는 순간 곧장 한계가 지어진 글이 되어버리고 다시 그걸 글이라는 가시적인 형태로 재차 보게 되는 나는 반성과 고뇌, 자기혐오라는 단어를 쉽사리 입에 올리고 불편한 옷을 입은 것처럼 그날을 아주 망쳐버린다.
나는 언제 사람이 될까. 사랑이 사람의 필수전제라면 그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내가 알기로 사랑은 우리들의 통속적 일상 속에서 의식할 새 없이 슬쩍 피어오르다 돌연 자취를 감추는 게 자신의 미덕인 양 행동하곤 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길을 지나던 사랑이 사랑 없는 사람의 마음에 잠깐 들렀다 나간 것인가 아님 내 속에 내재된 사랑이 외부의 거친 환경과 척박한 숙주인 인간의 몸속에 자신을 숨기다 존재에 대한 증명을 위해 가까스로 한 번씩 고갤 들어 바깥을 내다보며 숨을 쉬는 것일까
언젠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면 의심 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면 책을 읽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라는 오명 외에 내가 가질 수 있는 이름은 더는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글을 안 쓰는 편이 스스로를 위해 이로운 길이 아닌가. 그렇다 해도 글은 계속 써야 한다. 내게 어떤 오명이 내려져도 나는 나를 알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야 하고 그건 내가 어느 시대 어느 누구로 태어났어도 반복했을 어쩌면 내 직업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 있어서이다. 글의 끝에 구원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글 밖의 어느 곳에서라도 구원을 찾는 다면 그 흔적의 결과가 표출된 형태는 글일 것이므로 구원이란 빛의 그림자이자 마침표를 찍어줄 글 역시도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피곤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