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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Jul 19. 2021

은퇴를 꿈꾸며

내가 좋아하는 일 하기

암만 생각해도 나는 번아웃(Burned out)된 것 같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 도통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따라서 동기를 상실했고 게다가 이 일이 제대로 될까 의심마저 든다. 누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도 듣기 싫고 일정에 쫓기는 일에도 지쳐 버렸다.


나는 나 자신을 100% 엔지니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얼마의 자부심까지도 느껴 왔다. 지난 30여 년간을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수많은 엔지니어 중에서도 글자 그대로 엔진개발 관련 업무를 30년 동안 해 온 Engine Engineer이기 때문이니 100% Engineer 아닌가?

 

그런데 졸지에 멸종 위기(Endangered Species)의 한 종이 되어 버렸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내연기관(엔진)은 지구 온난화의 무시무시한 주적이 되어 버렸고 엔진 달린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겠다고 떠 벌리는 자동차 회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평생 엔진 갖고 먹고살아온 엔진 엔지니어들은 창졸간에 갈 곳을 잃어버렸다. 억울한 점 한 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떠들어 봐야 내 입만 아니, 키보드 치는 내 손가락만 아프다.


회사에서는 조직 개편을 통해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 대비하려는 노력과 배려를 제공했지만 내가 지쳐버린 이유는 지구 온난화의 유탄을 맞은 것, 그 보다 더 깊은 심연에서 나온다.


내가 택했던 나의 Professional Career는 일종의 차선책이었다. 나는 줄곧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자문해 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것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아라". 수많은 스승들의 가르침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 참 많이도 고심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깨달았다. 그런 호사가(더 이상 스승이라 칭하지 아님에 유의하라)들의 떠벌림이 적어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 사실을 말하자면 예부터 알고 있었지만 틀린 줄 알아 왔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노는 "일"이다. 늦잠이나 낮잠을 즐기며,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감상하며, 비 오는 날 낙숫물 소리에 취해 커피나 맥주를 마시거나, 자전거를 타고 풍광이 좋은 거리나 산야를 땀 흘리며 누비는 일 아니면 유럽의 이쁘게 꾸며진 거리를 카메라를 짊어진 채 유유자적하는 일이다. 물론 가족과 친구를 만난 이빨 까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 좋아하는 일은 목적이요, 택한 직업은 수단인 셈이다. 그래서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목적은 수단과 다르고 그것을 인정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더 이상 호사가의 말에 혼란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은퇴가 너무나 기다려진다. 은퇴를 하고 나면 여태껏 유보해 왔던,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들"을 열심히 할 것이다. 다만, 은퇴를 기다리는 만큼 회사 다니기가 더욱 싫어지는 부작용이 있지만 원래의 계획대로 유종의 미를 이루기 위해서 잘 참아내자.


내가 내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나의 Bucket List는 이미 꽉 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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