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호 Oct 14. 2022

푸디와 함께 떠난 카미노

자전거 모험-피레네를 넘어

산티아고 순례길은 더 이상 프로스트가 노래한 Road less traveled(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 아니다.


코비드가 터지기 전 2019년 한 해 동안 산티아고를 향해 이른바 The French Way라고 불리는 코스로만 대략 3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순례의 길을 떠났으니 대략 하루에 평균 1000명의 순례자들이 거쳐 갔으며, 걷기 좋은 계절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감안하면  숫자는 더욱 높아져 그 길 1km당 매일 네댓 명의 순례자들 동시에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한국 순례자들의 수는 압도적이어서 세계적으로도 190여 개국 중 7번째를 차지함은 물론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단연 최고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왜 한국인들에게 그토록 인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스페인 사람들은 물론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들 정도라 하는데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나의 이론은 이렇다.


1. 구도를 위해 장도를 떠나는 것은 우리의 전통이다. 멀게는 최치원, 원효대사부터 가깝게는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를 우리는 배웠다. 원효는 중도에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 얼마나 먼 거리를 여행했나 가 아니라 어쨌든 도의 시작은 길을 떠남에 있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도 시베리아와 만주를 향해 구도의 길을 떠났다. 비록 병이 나는 바람에 도중에 돌아왔지만 그도 역시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悟道頌(도를 깨닫고 부르는 노래/시) 첫 구절을 보면

"男兒到處是故鄕 - 싸나이 머무는 곳 그 어디나 고향이네"!! 얼마나 파워풀한가? 나는 읽기만 해도 힘을 얻는다.

더군다나 우리가 장도를 떠난 이유는 단지 득도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득돈", 즉 돈을 벌기 위해서도 우리는 먼길을 떠난다. 열사의 사막이나 험한 파도치는 큰 바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어느 곳이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그것은 순례길보다 더 험한 생존과 번영을 위한 희생의 길이기도 하다.


2. 군 복무 시절 행군... 나는 영천에서 훈련받을 때 엄청 걸었다. 사격장까지 걸었고, 산악훈련 받느라 걸었고, 특수전 훈련 땐 주로 밤에 걸었고, 행군의 백미 완전 군장 80km 행군도 했다. 완전 군장! 군인은 전투를 위해 사람에 필요한 의식주를 모두 들고 메고 다녀야 한다. 판초우의, 여벌의 군화, 모포, 텐트, 야삽, 밥통, 수저, 기타 등등에 소총, 탄약, 대검.... 철모... 방독 마스크... 난 처음 내가 저 배낭을 멜 수 있을까 의심이 갔다. 그러나 두 어깨에 배낭을 메고 끄~응 하며 일어서니 정말 일어서 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행군 전문가인 셈이다. 우리 여자들도 남자들 영향을 받아 역시 그렇다. 의심이 들면 애리조나 여자들이 말 타고 소 타고 설치는 거 한 번 보시라! 카우보이가 많은 미국 애리조나엔 드세 빠진 카우걸이 많은데 이게 어쩌다 그런 게 아니고 부창부수, 다 그 때문이다.... 아무렴!


3. 험난한 역사를 살아온 단일 민족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다. 어디 좋은 거 있다면 모두 동참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비록 분열은 있으나 크게 보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우리는 서로 엄청 닮았기 때문이다. 


4. 산티아고 순례길에 구축돼 있는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 종교적, 정신적, 또는 구도의 행위라는 가치가 역사와 권위(특히 종교개혁 이전의 기독교)에 정립되어 있고, 길을 따라 편리하게 발달한 저비용의 숙소와 이정표등등...


그것도 모르던 나는, 이왕 힘든 여행을 할 바엔 주위 사람들에게 순례길 무용담 자랑도 하고 또 필요한 사람들에겐 아주 유용한 정보가 되도록 훌륭한 여행기를 한 번 책으로 출간하면 어떨까 하는 궁리를 하며 친구가 아는 출판사 연락처를 받아 원고도 없는 책의 출간을 의뢰했다.


그러나 출판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현재 국내에 산티아고 관련 책들이 이미 많이 나와있습니다……중략……요즘 출판사들이 원고를 볼 때 제일 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팔릴 것인지, 시장성이 있을  것인지입니다…...”


오 마이 갓!


해서 인터넷에 키워드 “산티아고”를 쳐 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제들 다녀왔는지 산티아고 여행, 산티이고 순례 등등 엄청 많은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유튜브를 검색하니 거긴 더 많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리모컨을 전속력으로 눌러 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유명 배우를 내세워 “스페인 하숙”이라는 리얼리티 TV쇼까지 몇 년 전에 방영된 적이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모르고 김칫국부터 마셔 댄 꼴이니 출판사 직원이 나를 얼마나 한심스럽게 생각했을까?.


비밀스레 혼자만 알고 있던 신비스럽고 성스럽기까지 했던 구도의 길 산티아고 순례길일 거라 기대했었는데.... 이제 진로 아니 Problem Statement 수정이 불가피하다.

 

스페인 북부의 늦가을은 일광이 현저히 짧아지고 낮은 기온에 흐리고 비가 많은 계절로 변해 가고 있으니 나에게는 주어진 환경과 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달하겠다는 현실적인 목표로 갈음한다.

<가져갈 짐을 모아 보았다. 아무래도 조금 줄여야 할 듯....>


처음에는 판초우의만 가져가기로 했는데 Water Proof 재킷과 바지를 추가했고 비수기엔 많은 수의 숙소나 식당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소고기보다 단백질이 다섯 배나 더 풍부하다는 말린 오징어 한 봉지를 비상식량에 추가했다. 그리고 자전거에는 Mud Guard(바퀴에서 튀는 물이나 진흙 따위를 막아주는)를 붙일까 고려중이다. 아무래도 짐을 줄여야 할 텐데.....

혹시 무엇 빠진 것 있나? 아님 추가해야 할 것 있나?

자전거 장착용 가방 두어 개, 배낭 하나로 짐을 꾸렸다. 배낭에는 급하게 꺼낼 팔요가 있는 물건들을 넣어 급변하는 날씨에 대비한다.

그밖에, 에어 펌프, 여분의 튜브, 물통, 간단한 공구 등은 자전거에 직접 장착한다. 이제 자전거를 분해해 박스에 넣는다.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은 주 여호와이시라." -끝-


작가의 이전글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