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San Tiago)는 기독교 신약 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제자인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은 물론 유럽 전역에 흔해 빠진 남자 이름중의 하나인데, 영어권에서는 James, 불어로는 Jacques, 이태리어로는 Giacomo 그리고 라틴어로는 Jacob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래서 야고보라는 이름이 성경에 세명이나 등장 해 읽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데 첫번째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인 큰 야고보(세베데의 아들 야고보라 묘사 되는..), 두번째는 알패오의 아들로서 첫번째 야고보보다 나이가 적어 작은 야고보라 불리우며, 세번째 야고보는 예수의 사촌 동생이자(친 동생이라는 설도 있다) 신약 성경중의 한 권인 야고보서의 저자로서 야고보이라는 것이다.
세명의 야고보는 일반 독자만 헷갈리게 하는게 아니고 성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헷갈리게 하는 것 같다.
특히, 작은 야고보가 야고보서의 저자로 알려진 야고보와 같은 인물인가에 대한 논란이 기독교내에서도 분분하다고 한다.
가령 첫번째와 두번째 야고보는 예수의 제자인 반면 예수의 동생 야고보는 심지어 자기의 형인 예수를 믿지 못했다는 설도 있고(그러나 후에 믿고 야고보서를 집필하게 되었지만….) 야고보는 실제로 두명뿐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유력한 것 같다.
하기야 신학자들의 다양한 연구결과나 교파간의 이해관계로 성경에 관한 한 헷갈리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니 어쨌든 지금부터 이야기해 나아갈 주인공, 즉 순교를 당한 뒤 스페인 서쪽 끝 산티아고의 거대한 성당 밑에 묻혀 있는 야고보는 예수의 제자, 요한의 형제인 바로 그 “큰” 야고보이다.
그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예수가 활동하던 시절, 예루살렘에서 보았을 때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이베리아 반도의 끝, 지금의 스페인 서쪽이나 포루투갈지역에 퍼져 살던 이스라엘 민족*(디아스포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 여행을 떠나 마침내 스페인의 수호성자가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AD44년 헤롣왕에게 참수를 당함으로써 열두 제자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야고보의 순교이야기를 성경(사도행전)이 전한다.
<스페인 선교를 놓고 사도 바울과 야고보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흘렀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생각이다. 야고보는 스페인에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을 개종 시키려 포교여행을 떠났지만 바울은 스페인 지방의 모든 이방인을 개종 시키려 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바울은 끝내 스페인 전도 여행에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야고보 즉 산티아고는 성질이 불 같은 사람이었다. 때문에 예수는 야고보 형제를 일컬어 “천둥의 아들(Sons of Thunder)”이라는 별명을 붙혀줄 정도였다 (마가 3:17).
야고보가 헤롣(Herod Agrippa, 재위 AD41-44세례 요한과 예수를 죽인 헤롣왕은 Herod Antipas로 Herod Agrippa의 삼촌이다) 왕에게 목이 베이는 형벌을 당한 것은 바로 그의 급한(혹은 더러운, Nasty) 성격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는데 당시 세력이 커지고 있는 기독교의 배후에 이런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헤롣왕에게 커다란 정치적인 위협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추론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열두 제자중에서도 예수의 특별한 배려를 받았다는 세명의 이너써클 즉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모두가 다혈질의 사나이였던 것 같다.
베드로의 불 같은 성질도 남 못지 않은 것 같다. 예수를 체포하러 온 로마 병정을 칼로 내리쳐 그 병정의 귀가 떨어져 나갔으니 말이다. 웬만큼 앞뒤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대 최고로 강력한 로마 군대의 병정 한 무리를 대항해 감히 칼을 빼어 드는 행위가 자신들에게 얼마나 불리하게 작용할 지 모를리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예수 자신도 성질이 보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성전안에 온갖 장사꾼이 설치는 광경을 보고 채찍으로 내려치며 벌려 놓은 좌판을 둘러 엎어 버리기도 하고, 서기관들을 향해 독사의 새끼라고 욕을 해대기도 하고 성전을 부수면 삼일만에 다시 짓겠다는 등 때로는 폭력적이고 때로는 래디칼한 언행도 서슴치 않았으니 말이다. (요즘 한국 교회에 필요한 언행이랄까?)
그야말로 부창부수(夫唱婦隨) 아니 선창제수(先唱弟隨 - 스승이 노래하니 제자가 따라 부르네)의 훌륭한 샘플이다.
그의 불같은 성질은 악이나 위선을 대상으로 할 때 작동되는 것일 뿐, 다시 말하지만 그는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엄격하고 매우 절제된 사람이며 동시에 강력한 실천주의자 였던 것 같다. 돌려 말하지 않고 애매하게 접근하지 않는다. 과연 그가 오늘의 신앙인들을 본다면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산티아고 (San Tiago)에 대한 전설
야고보가 참수당한 스토리는 성경(사도행전 12장)이 전하지만, 그의 스페인 포교 비하인드 스토리나 목 없는 그의 몸이 스페인 끝자락 지금의 산티아고에 묻히게 된 이야기는 아주 흥미 진진한 두 개의 전설이 전한다.
전설 하나(스페인 포교중 일어 났던 일)
야고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베리아 반도 포교는 결과가 시원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Ebro 강(French Way상에 있는 도시 Logrono나 Leon등을 따라 흐르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두번째로 길다는 강)이 휘돌아 나가는 고장에 들러 그 지방 사람들을 상대로 또 다시 열심히 전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 그는 크게 낙담했다.
실의에 찬 야고보는 강둑에 올라 무릎을 끓고 기도를 시작 했는데 불현듯 그의 앞에 성모 마리아가 양쪽에 천사를 대동하고 나타나 아름다운 붉은 빛이 도는 커다란 옥(玉)기둥을 건네며 분부를 내린다. 이 기둥으로 이 곳에 성당을 세우라! 그렇게 해서 성당 건물이 올라가고 성당이 세워진 후 비로서 그의 스페인 포교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포교를 시작한 지 14년 만의 일이고 이렇게 지어진 성당이 자라고사(Zaragoza)에 있는 마리아 성당이다.
그러나 그 성당은 French Way 도상에 있지 않아 아쉽지만 순례중에 들릴 수는 없다.
전설 둘 (산티아고에 묻히게 된 일)
AD44년 처참하게 참수당한 야고보의 목 없는 시신은 예루살렘 길거리에 내던져져 바햐흐로 까마귀와 들개의 먹이 거리가 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곧 어둠이 내리고 인적이 드물어진 틈을 타 그를 따르는 일곱명의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Port of Jope라는 포구로 옮겨와 배에 싣고 자신들의 스승이 그토록 열심을 다해 포교를 했던 스페인으로 옮겼다.
놀라운 것은 야고보의 시신이 포구에 도착 한 순간 어디선가 텅 빈 그러나 모든 항해 장구가 완벽히 구비된 배가 스스로 다가와 그의 시신이 실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또 다른 작은 전설에 의하면 배는 돌로 만들어졌고 천사들이 가져왔다고 한다.)
해서 일행은 지중해를 동에서 서로 횡단한 후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포루투갈 해안을 따라 남에서 북으로 항해한 뒤 마침내 지금의 산티아고에 가까운 갈라시아지방의 해안에 닿았는데 그 항해에 걸린 시간이 불과 6일 (7일째 도착 했으니) 이었다.
그런데 일행이 야고보를 육지로 옮기자 그의 몸이 홀연 햇빛 비추는 방향으로 둥실 떠 올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놀라고 황망한 마음으로 제자들은 일대를 샅샅히 뒤지기 시작했지만 별 무소용, 며칠이나 흘렀을까? 지친 몸을 쉬이려 마침 근처에 있던 평편한 바위에 누워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 보니 밤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었고 자신들이 누워 있던 바위, 그 대리석 바위밑에 야고보가 고이 안장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제자들은 뛸 듯이 기뻤다…….. 전설은 그렇게 흐른다.
그래서 그 곳을 Santiago de Compostela 즉, “별빛(Stela)이 쏟아져 내리던 아름다운 들판(Compo)에 누워 있는 야고보(Santiago)”라 부르게 되었고 자신들이 누워 있던 대리석 바위를 기초로 성당을 세웠는데 그 것이 바로 지금의 산티아고 대성당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를 들은 스페인의 왕 알폰소 II세가 작은 성당을 지었고 그후 계속 증축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공중 부양설 말고도 다른 버젼의 전설이 있다.
전설 둘의 또 다른 버젼
이야기의 전반부인 7일간의 항해 스토리는 같은데 갈라시안 해안 상륙 후의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상륙 후, 제자들이 야고보의 몸을 어디론가 옮겨 가던 중 잠시 휴식을 취하려 스승의 몸을 마침 길가에 있던 반듯한 대리석 바위에 올려 놓았다. 그랬더니 대리석이 마치 불에 녹은 왁스처럼 흐물흐물 녹아 내리며 야고보의 시신을 감싸고 저절로 석관으로 변해 버렸다. 놀란 제자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들였고 그 곳에 산티아고 대성당이 세워졌다.
그 밖에도 스페인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야고보에 관한 전설 하나 더,
클라비오의 전투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거쳐 스페인으로 쳐들어(712년) 온 이슬람 무어족은 톨레도, 그라나다, 세빌등에 그 들의 근거지를 확보하곤 스페인 북부를 넘보게 된다.
세월이 제법 흘러 마침내 844년, 클라비오(Clavijo)라는 곳에서 양쪽 군대는 운명의 일전을 벌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세는 무어족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스페인 군대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 전멸 직전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 어디선가 홀연, 뽀얀 먼지를 뚫고 말 달려 오는 장수가 있었으니 그의 한손엔 흰 깃발이 또 다른 손엔 검이 들려 있었다. 그가 바로 야고보였다. 용맹을 자랑하던 무어인 군대는 야고보앞에서 추풍낙엽! 힘없이 나가 떨어졌다. 이에 힘을 얻은 스페인 군대는 500명 이상의 적을 순식간에 처치하는 큰 승리를 거두고 그들을 스페인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그후, 사람들은 야고보에게 무어인 도살자(Moor Slayer)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지어준다….
단, 이게 사실이라면 야고보는 예수에 이어 800년만에 부활한 인물이 된다…
물론 모든 역사학자가 의견을 같이 하는 바로는 844년 클라비오라는 곳에선 어떤 전투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ㅎㅎㅎ
그 밖에 야고보의 시신이 옮겨진 것과 템플 기사단(기독교 기사단)과 연관된 설도 있지만 클라비오 전투처럼 일단 시대적 연대가 너무 다르므로 생략.
어떤 전설이, 어떤 버젼이 진짜인 지 몰라도 하나 분명한 건 신통력 또는 기적에 의해 이 모든 사건이 일어 났다는 것이고 스펜인의 수호성자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들이다.
좌우지간 산티아고 필그림의 스토리는 역사와 성경기록과 전설이 짬뽕이 되어 현재에 이르는데 이 때문인가 야고보 순례길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도 받고 뭐 그러고 한다는 게 스페인 사람들 얘기다.
순례길을 따라 여러곳에서 접하게 될 그림이나 조각속의 야고보 이미지는 크게 두개로 나누어 진다. 사랑과 화평의 이미지와 이교도를 처단하는 이미지. 극단적인 두개의 이미지를 서로 연결하기란 쉽지 않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