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란 무엇인가? 아, 그것은 단순히 태어난 땅, 자란 마을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그림처럼 그려지는 하나의 이상향이 아닐까. 사람은 떠나고, 풍경은 바뀌고, 옛 골목은 사라졌지만, 가슴속 한편에서 고향은 여전히 따뜻한 숨결로 남아 있다. 하지만 돌아가 보라. 그곳은 과연 예전의 그 고향인가? 고향은 변했을 뿐 아니라, 어쩌면 우리 스스로도 변한 것은 아닐까?
고향이란 결국 기억의 그릇이다. 아이 시절 맑은 하늘 아래 뛰놀던 골목, 친구들과 나눠 먹던 과자 한 조각, 어머니가 지어 주신 갓 지은 밥의 향기. 이 모든 것이 고향이라는 이름 아래 조각조각 마음에 남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곳을 찾으면, 어릴 적 그 따스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낯선 풍경만이 우리를 맞이한다. 도대체 고향은 어디로 간 것인가? 우리가 찾던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 낸 환영이었단 말인가?
나는 고향을 떠나기 얼마 전 외설악 백담사 한 건물에 걸려 있는 한용운 선생의 오도송 한 문장 "남아도처 시고향(한문생략) "사내라면 가는 곳마다 고향으로 삼을 수 있다."을 보고 감동하였고, 마오쩌둥이 중국판 다아스포라를 향해 일갈했다는 "낙지생근(떨어진 곳에 불휘를 내려라!)"이란 외침을 듣고는 더 이상 뒤 돌아보지 않았다.
고향이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우리가 가슴에 품은 추억과 정서라면, 어디든 우리가 애정을 쏟고 살아가는 곳이 곧 새로운 고향이 될 것이다. 정든 땅을 떠나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친구가 있는 곳이야말로 고향이 아닐까?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우정,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듯 편안한 그 느낌. 비록 태어난 곳은 아닐지라도, 친구와 함께하는 곳이라면 우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금 안식을 찾는다. 진정한 고향이란 지명이 아니라, 정이 흐르는 곳이라는 말이 어찌 틀리겠는가?
그래서 그렇게 고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모습이 바뀌고 사람들은 떠나도, 우리가 마음에 간직하는 한, 고향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다시 찾은 고향이 낯설다 하여도, 그곳에서 흘렀던 시간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우리가 고향을 기억하는 순간마다, 고향은 우리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결국, 고향은 떠나온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곳이며, 만들어 가는 곳이다. 비록 옛 고향은 세월 속에 사라지고 변했을지라도, 우리가 마음을 두고 애정을 기울인다면, 그곳이 바로 우리의 새로운 고향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어디서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 그러면 그곳이 바로 너의 고향이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