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학창시절
한강 따라 동쪽으로 향하는 짙은 먹구름 편대가
설악산에 도달했을 때
수없이 많은 굵은 빗방울이
뉴톤이 알아냈다는 중력의 법칙 때문인가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지상 제일의 꼭대기 대청봉 정상, 단단한 바위에
내 팽개쳐 버리듯 부딪히며 여러 갈래로 튕겨져 나갈세
더러는 백담사가 있는 서쪽으로
더러는 오색 약수가 있는 남쪽으로
더러는 곧장 동해바다를 향해
폭풍보다 더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다시 아래로 아래로 휘운각을
순식간에 지나,
양폭, 오련폭포에서 앞으로 떨어지고 뒤로 자빠져 포말이 된 후
천불동의 기암괴석
귀신의 얼굴을 닮았다는 바위를 휘돌아 나갈 땐 이미
세찬 물줄기로 변해 버렸다.
이리 받히고 저리 부딪히며 성난 듯 비선대, 선녀탕을
우당탕탕 지나는 순간 어디선가
머루주 달래주의 향긋한 내음이 나는 듯도 했고
도회의 젊은 애들 깔깔대는 웃음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하필이면 그 뇌성 같은 비선대의 우당탕 물소리가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사월 초하루의
이른 새벽에 귓전을 때린단 말인가?
잊혀진 오랜 세월 침묵하던
미처 목청도 가늠지 못한 질긴 향수가
무슨 명령 같은 물음을 묻는다
저게 언제 적 얘긴고?
Read Only Memory 뇌세포가 대답한다.
70년대 말 80년 초니까
한 40년 전 얘기요.
한 사십 년의 스케일에는
그해 겨울
흰 눈에 묻힌 드넓은 설악의 한구석
비룡폭포는 한길도 더 되는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고
울긋불긋 두꺼운 외투를 입은 지난여름의
그 젊은 도회 것들이 다시 모여
마치 雪國에 피어 난 꽃 봉우리처럼
둘러선 몇몇은 버너불에 라면을 끓이고
한편에선 짓궂은 사내애 몇 놈이 집어던진 눈덩이가
아직도 솜털 송송한
계집애의 발긋한 뺨에 떨어져
아스라이 녹아내리던 그런
못 이룬 풋사랑도
포함되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