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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후 Apr 30. 2021

만찬

순환선

 나의 아버지가 되기를 원했던 그는 우리가 살기 위한 집을 짓기 위해 증평으로 내려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름에 쏟아진 폭우를 집은 버텨내지 못했다. 난 홀로 버틸 수 없었던 엄마와 다시 함께 살기 위해 파주로 돌아갔다. 그 해 가을, 엄마는 늘 전화기를 붙잡고 악을 쓰거나 눈물을 흘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가가서 엄마를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가을이 끝나갈 때쯤 엄마는 내일 아빠가 올 거라고 말했다.


 네 시간을 걸려 파주로 온 그의 모습은 초췌했다. 깎지 않은 수염과 몇 달간의 고생 때문에 볼이 쑥 들어가 있었다. 우리가 뉴스로 흘깃 봤던 폭우는 농가에 큰 피해를 안겼다. 그건 뉴스에서 언급하는 몇 줄의 짧은 단신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며 난 짧은 글이 담을 수 없는 폭우의 흔적을 느꼈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는 거실로 들어오는 통로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그 사이에 서서 나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엄마와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초췌한 엄마와 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식사는 하셨어요?”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왔어.”

 엄마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숨을 쉬었다.

 “밥 먹고 오지, 뭐가 급하다고.”

 “빨리 정리를 해야 할 거 아냐.”

 엄마가 소파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밥 먹으면서 얘기해.”


 우리는 함께 집을 나섰다. 밖에는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우리는 무작정 인근의 상가로 걸어갔다. 엄마가 가장 먼저 걸었고, 난 그 옆에서 살짝 뒤처져서 걸었다. 그는 우리에게서 살짝 떨어진 뒤에서 걸어오며 담배를 피웠다. 난 걸음을 조금 늦춰야 할지 빨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상가 거리에 도착해 가장 먼저 보이는 닭갈비집으로 들어가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닭갈비를 불판에 올리자 지글지글 익어갔다. 

 엄마와 그는 처음엔 조용히 얘기를 시작했지만,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한 번은 엄마의 팔을 잡았고, 그다음엔 그의 어깨를 잡았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다가 소리쳤다. 그는 소리치다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가만히 끓고 있는 닭갈비를 바라봤다. 아무도 닭갈비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닭갈비는 점점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 나는 끓어 넘치는 닭갈비를 물끄러미 보다가 가스 불을 끄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일단 좀 드세요.”

 나는 집게를 들어 엄마와 그의 접시에 닭갈비를 올렸다. 두 사람은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우리는 닭갈비 몇 점씩을 집어먹었다. 그런데 엄마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못 먹겠어. 가자.”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포장해달라고 해.”

 닭갈비는 반도 채 먹지 못했다. 난 끓어오르다가 식어버린 이인분의 닭갈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종업원이 닭갈비를 포장하는 동안 나는 서서 기다리다가 가게 밖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엄마와 그는 서로를 보지 않았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점심이었다.


 우리는 주차장으로 걸어왔다. 엄마는 말없이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군데군데 흙이 묻은 다마스에 올라타서 창문을 내렸다.


 “미안하다.”

 “운전 조심하세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창문을 올렸다. 다마스의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급하게 액셀을 밟았을 때 나는 자동차의 파열음이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멀어지는 다마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을 둘러봤다. 식어버린 닭갈비가 담긴 비닐봉지가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엄마가 방 안에서 나왔다. 운동복 차림이었다.

 “어디 가게?”

 “연습 갔다 올게.”

 “같이 갈까?”

 “괜찮아. 속에 천불이 나서 공 좀 치고 올게. 혼자 먹어, 저녁.”

 엄마는 집을 나갔고 나는 거실에 혼자 남았다. 식탁 위 비닐봉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식어버린 닭갈비를 프라이팬에 올려 데웠다. 닭갈비에서 기름이 나와 지글지글 소리가 났다. 밥을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고, 기름진 닭갈비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꼭꼭 씹어 넘겼다. 그 순간 난 어떤 시절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세상엔 어찌할 수 없이 감당해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 날 저녁, 파주의 집은 고요했고 나는 홀로 저녁을 먹었다.   



글쓴이: 순환선

소개: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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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월/수/금]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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