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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후 Mar 17. 2021

난춘

호모루덴스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돌아온다. 추위가 잦아들고, 출근길에 몸을 떠는 일이 적어졌다. 대신 밥을 먹고 나면 몸이 무거워진다. 봄과 식사의 나른한 무게를 견디면서, 나를 지나간 수많은 계절들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떠올린다. 


계절이란 항상 불분명한 시간이다. 그 변화를 지칭하는 여러 가지 단어들이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정확한 시기가 정해져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떨 때에는 너무 빨리 추워졌고, 너무 오래 더웠고,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괜찮아지기도 했다. 


계절은 나에게 오롯이 계절뿐만은 아니었다. 더위와, 추위와 함께 지나간 어떤 순간들이었다.



사랑은 한 계절인데

그건 불분명한 시간이라

당신은 계절이 떠나고 나서도

추위와 더위에 몸서리친다


사랑이 언제 정말 떠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계절이라는 불분명한 시간을, 냄새로 미리 알아채는 작은 재주가 있었다. 계절이 다가오기 며칠 전쯤부터, 다가올 다음 계절의 냄새를 느끼면서, 나는 아 곧 겨울이 오겠구나, 곧 여름이구나 하고 가늠하곤 했다. (여름이 다가오면 비에 젖은 아스팔트 같은 냄새가, 겨울을 앞두고 선 묵직한 공기의 냄새가 나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계절의 냄새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다가올 순간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 다가옴이 동반하는 설렘 또한 잊어버렸다. 원래부터 그런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런 것은 조금 서글프다. 세상에 통용되지 않았지만, 나만이 갖고 있었던 소중한 지표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 이건 대단한 신념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삶의 일부를 지탱해주는 머릿돌 같은 것이다. 그러한 것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자, 왜인지 느닷없이 가을이 찾아온 것처럼 쓸쓸한 기분이 든다.


나만이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젊은 날, 각자의 재주가 있었을 것이고 각자의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잃어버린 것은 되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진 적이 있던 것은 되찾기에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재주를 되찾기 위해, 좋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한 방법들이 나만 가지고 있던 재주를 되찾는 방법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에게 전한다. 


서른에 가까워지자, 나는 계절을 미리 알아채는 신기한 재주를 잃었다. 그건 어떤 낭만의 상실 같기도 해서 조금 애잔한 마음이 들지만, 언젠가 다시 되찾을 재주라 여기며 글을 쓰고 있다.


글쓴이: 호모루덴스

소개: 낭만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맛있게는 해줍니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월/수/금]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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