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정의 BMW 3 시리즈 touring을 15년 만에 다시 타다
2009년 독일에 도착했을 때, 무려 3개월간 눈이 왔다. 독일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눈이 온 해이며, 2009년 12월부터 2월까지 3일 정도 빼고는 계속 눈이 왔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는 쌓아 올린 눈으로 모든 도로가 눈벽을 만들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해가 나는 날에는 나는 영화 'Matrix'에서 Neo와 Trinity가 적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했을 때, 하늘 위로 솟구쳐 1초 정도 맑은 하늘을 봤을 때가 생각났다. '아! 파란 하늘과 해는 참 아름답구나'라고.
유럽이라는 지역은 출장이나 여행을 다니는 대륙이었지, 내가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는 오래 살았기 때문에 혹시 내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산다면 미국에서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내가 유럽, 그중에서도 북유럽을 제외하고는 가장 날씨가 꾸릿꾸릿한 독일에서 10년 가까이 살게 될 줄은 몰랐다. 하필이면 내가 유럽에 도착했을 때는 그리스발 유럽 경제 위기가 전 세계에 퍼진 직 후라 유로(Euro)가 1200원대에서 1800원대로 급등한 시기였다. '독일에는 아우토반이 있으니 좋은 차를 사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우선 독일 차 값은 어마무시하게 비쌌고 (특히 SUV), 새 차를 사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내 후배가 한국 가기 전에 나에게 차를 팔겠다고 했고, 그 차는 바로 검은색 BMW 320i 투어링(코드명 E92)이었다. 약 7만 km 정도 탔었고, 차 상태는 깔끔해서 차 보러 다니기도 귀찮으니 그냥 사버렸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투어링(웨건형) 차량은 잘 보기 쉽지 않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모두 SUV를 사면 샀지, 굳이 웨건형 차를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4년 정도 된 이 차량을 17,000유로에 샀고, 1,800원대 환율이니 약 3천만 원 정도 주고 산 것이다. 정상 환율이었으면 2천만 원에 살 수 있는 것을 원화로 약 1천만 원을 더 주고 샀다. 짜장면 한 그릇을 3만 5천 원씩 주고 먹었으니, 뭐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아는 touring의 장점은 우선 세단보다 차가 크고, 짐 싫은 공간이 넓으며, 내게 가장 다가왔던 것은 50대 50에 가장 근접한 무게 배분이라는 점이다. 내가 그동안 소유했던 차량을 보면 90년대 초에 현대 스쿠프 s, 그리고 90년대 말 미국에서 폭스바겐 제타와 현대 소나타, 2000년대 초에는 그랜저, 2000년대 중반 삼성의 SM5, 약 20년간 국산차 위주로만 차를 탔었다. 아무튼 차를 사고 처음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는데, 우선 브레이킹이 적응이 안돼서 혼났다. 한국 차들의 브레이킹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한국차를 다루듯이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급정거를 하는 것이었다. 이거 적응하는데 2~3일 정도 걸렸던 거 같다. 두 번째는 스티어링휠을 통해 전달되는 노면의 상태이다. 처음에는 차가 고장 난 줄 알았다. 한국차는 스티어링휠이 미국차들처럼 부드러워서 노면의 상태가 전달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E92 3시리즈는 노면 상태를 거의 90% 알 수 있게 전달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는 운전자에게는, 특히 다이내믹 드라이빙을 하는 운전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세 번째는 7천 RPM까지 올라가는 엔진이다. 웬만한 차들은 5~6000 RPM이 max인데, 이 괴물은 F1차도 아닌 것이 엄청난 고 RPM으로 아우토반을 달린다. 마지막으로 정말 날카로운 핸들링이다. 정말 스티어링휠을 양손의 두 손각으로 쥐고 미세하게 움직여도 차가 반응하는 엄청난 reaction인 것이다.
사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나는 이 3 시리즈를 아내에게 주고 나는 폭스바겐 골프 TDI를 탔다. 골프는 수동인 데다가 디젤이었기 때문에 연비도 뛰어나서 매일 출퇴근을 하는 나에게는 최적의 차였다. 하지만 가끔 아우토반을 달리고 싶을 때는 어김없이 3시리즈를 탔다. 물론 골프도 200km까지는 나가지만, 고 RPM에서 240km까지 달릴 수 있는 3 시리즈는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엄청난 차였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는 2018년 한국에 돌아왔고, 여지없이 한국에서는 한국차를 타야 한다라는 생각에 가족들이 탈 수 있는 산타페와 어머니의 에쿠스를 타고 다녔다. 사실 운전의 재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냥 널찍한 세단이자 패밀리 차였던 것이다 (사실 산타페는 한국 들어오기 직전에 탔던 BMW X1에 버금가는 놀라운 발전을 하긴 했다). 그렇게 운전과는 아무 상관없이 살다가 BMW의 신형 3시리즈가 언론과 팬들에게 욕먹는 내용을 많이 봤다. 대부분 비판의 핵심은 신형 3시리즈(Code명 F)가 BMW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고 평범한 세단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내가 3시리즈를 탈 기회가 없어서 속으로 '말도 안 돼. 3시리즈가 그냥 세단이라니'라고 혼자 읊조렸다. 그러던 중 하루는 직장 직원이 3시리즈 전기차를 타고 다니는데 한번 탈 기회가 생겼다. 전기차는 너무너무 잘 달렸고, 옛날 3시리즈를 타던 기억이 소록소록 피어올라 집에 와서 '그래 차르 바꿔야겠어'라고 결심했다.
우선 나의 옵션은 BMW 3시리즈, 5시리즈, Z시리즈, E-Class 컨버터블, 마즈다 미아타였다. 시승도 하고 계약서도 작성하면서 5 시리즈로 살 뻔했는데 아저씨 차 같은 5 시리즈는 살 수 없다로 결론 내어 취소했다. E-Class 컨버터블은 1억이 훌쩍 넘어서 포기하고, 미아타는 훌륭한 차지만 내가 70 넘으면 사는 걸로 미뤘다. 결국 3시리즈와 Z 시리즈인데, 전무님이 2인승 컨버터블을 타고 회사에 나오면 쏟아질 눈총에 결국 포기했다. 결국 남은 것은 3 시리즈였고,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지방에서 1만 km밖에 안 탄 G바디 3시리즈 투어링이 싸게 리스한다고 해서 덜컥 사버렸다.
역시 3 시리즈 투어링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나는 마치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너무너무 기쁘고 즐거웠다. 하나 아쉬운 점은 가솔린이 아니고 디젤이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50을 훌쩍 넘은 시점에 그렇게 쏠일이 없고, 디젤은 연비가 엄청나게 좋으니 1석2조라 생각된다. 연비는 그야말로 살인적으로 좋은데, 둘째 아들 면회하러 목포에 다녀왔는데, 출발할 때 만땅 넣고 800km를 넘게 달렸는데, 서울 올라와도 반 정도 기름이 남았었다. 물론 서울에서 시내 주행하니 금방 감소했지만, 고속도로 연비는 토요타 하이브리드를 무릎 꿇릴 정도이다. 또 하나 정말 칭찬하고 싶은 것은 테슬라 FSD에는 못 미치지만 그 어떤 반자율주행보다 완벽한 성능을 보였다. 부드러운 출발과 안정적인 브레이킹, 전혀 손을 대지 않아도 마치 내가 운전하는 듯한 주행감각. 180km를 넘게 밟아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안정성. 정말 BMW가 왜 빨리 FSD를 안 내놓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이다.
사실 한국차들의 넓은 실내 공간과 넓은 트렁크는 BMW와 같이 후륜 자동차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뒷좌석은 성인이 타기에는 앞의자를 많이 당겨야 하고, 투어링임에도 불구하고 골프채 1개, max 2개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는 좁은 트렁크 공간. 하지만 어차피 혼자 타고 다닌다면 이 모든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단점은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발톱을 감추고 있는 블랙 판다 같은 야생성은 여전히 살아있다. 내 두 아이들이 어릴 적 타고 다녔던, 가족들의 유럽 여행의 동반자였던 BMW 320 투어링, 이제는 어른이 된 아들들도 아빠가 다시 이 차를 샀다고 했을 때 흠칫 놀랐지만, 모두가 기쁘게 이 차를 좁게 탄다. 정말 BMW 3 시리즈는 명차이고, 내 장담컨대, 힘 빼고는 벤츠의 SLS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15년 전 타던 BMW 3 시리즈 투어링 E92 모델, 우리 가족들의 친구이자 동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