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대한 잡학을 털어놓기에는 건축에 대한 지식도 짧고,
업으로 삼고는 있으나 건축이라는 방대한 분야의 아주 작은 모퉁이에 해당하는 전문성밖에는 없으므로 감히 ‘건축’을 논하기 어려운 처지다.
하지만 건축에 대해 특별히 교육받지 않았던 사람들 앞에서는 굉장한 전문가인 척을 해야만
목구멍에 풀칠이 가능한 현실적 구조 때문에,
이곳에서는 특별한 긴장을 않고 나름대로 건축에 대한 잡생각 들을 풀어 놓을까 한다.
이마저도 한계가 온다 싶으면 언제든지 손을 놓을 수 있다 하며 발을 뺄 틈은 있다고 생각하니까.
의식주라고 우리는 부른다. 반면에 중국과 북한에서는 식의주 의 순서대로 부른다고 한다.
“의식주(衣食住)가 맞을까, 식의주(食衣住)가 맞을까.
동양과 서양 문화를 ‘편 가를(?)’ 때 주로 등장하는 이 질문에는 예의와 격식을 중요시해 먹는 것보다는 입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존을 위해서는 일단 배부터 채워야 한다는 동서양 각자의 설명이 뒤따르곤 한다.
옷이 먼저인지, 밥이 먼저인지는 몰라도 결국 지구인의 관심은 머무르는 곳으로 이동한다. ”
출처 :
서울경제 2018-07-13 17:56:03 기업 1면
대개 한국은 유달리 의복에 대해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라 해석하고 중국은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하며 북한이 식의주로 관용어에 가까운 ‘의식주’를 ‘식의주’ 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라 북한의 식량난에 근거한 것으로 추측한다.
의식주이건 식의주이건, 의식, 식의 뒤에 ‘주’ 가 붙은 것은 비교적 오래전이 아니라고 한다.
어쨌거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 요소로 ‘住’ 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한문 중에 집을 나타내는 단어는 여러 개가 있는데 하필 住일까?
家 나 宅은 안되나?
한문 학자도 아닌 데다 순전히 내 얕은 지식에서 비롯된 해석일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住는 사람인 변에 ‘사람이 산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에 家는 ‘집’이라는 뜻을 우선으로 가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 住는 심리적 측면의 집을 일컫고 家는 형태적 측면의 집을 일컫는 게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이에 대하여는 정확한 해석을 읽은 기억이 없다.
『주ː택, 住宅
명사 1.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지은 집. 거관(居館). 거택(居宅). 순화어는 `살림집'.
"∼난"
2. 특히, 단독 주택을 이르는 말.
"조용한 ∼가“
가옥, 家屋
명사 `집1①'을 문어 투로 이르거나, 외형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순화어는 `집'.
"전통 ∼"』
이런 사전적 의미를 보면 의식주에서 말하는 ‘주’란 아무래도 외형이 아닌 사람이 사는데 필수적인 부분이 단지 동굴이 아닌 ‘살 수’ 있다는 측면을 강조한 게 아닌가 싶다.
굳이 따지고 든다면,
컨테이너 하우스에서라도 충분히 살 수 있고 자그마한 오두막이라고 살기에 불편할 게 없이 해놓고 살 수 있을 텐데 굳이 우리가 더 좋은 집을 찾는 이유일 수 있겠다.
혹은 인간이 구축한 거대한 구조물 혹은 역사적 건축물에서 우리가 직관적으로 받는 인상들,
경외감을 비롯하여 복합적으로 인간에게 작용하는 요소들을 아우르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들은 권력의 크기를 건축과 같은 조형으로 표현한 예 가 많으며,
종교적 외경심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축물들 또한 권력의 표현이랄 수 있었다.
2011년 5월 국토해양부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최소한 확보해야 할 주거면적도 14㎡다.
2004년 최소 주거면적을 12㎡로 고시한 이후 처음으로 올려잡은 것이다.
12㎡는 우리에게 익숙한 평당 개념으로는 3.63평이다. 14㎡는 4.235평이다.
이건 법적 권장 기준이 그렇다는 것이고,
건축가들은 보통 1인당 최소 면적을 6평이라고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6평 * 4 = 24평. 최소 24평짜리 주택이어야 거주하는데 최소한의 쾌적성을 가진다고 계산하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 주변 월든 호숫가에 14㎡ 면적의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명작 ‘월든’을 썼었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는 프랑스 로크브륀 카프 마르탱 해안에 자신이 살기 위한 오두막 (Cabanon)을 지었다.
르코르뷔지에는 1951년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 집을 만들었다.
부부는 이 오두막을 '카프 마르탱에 있는 나의 궁전'이라고 불렀으며 그 크기는 16㎡ 즉 4.84평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면적은 정말 6평이면 충분한 것일까?
이것은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공간에 대한 직관적 느낌은 인간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6평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최소’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변 환경으로 인한 영향 고려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소로의 오두막이나 르코르뷔지에의 오두막은 주변에 숲이 있고 트인 공간이었다.
만약 6평 4평 오두막들이 불과 사람 하나가 지나갈 수 있다는 최소의 통행 거리인 60cm를 기준으로 빼곡하게 둘러 쳐져 있다고 상상해 보라.
한보 양보해서 최소 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 수 있도록 1.2m 폭의 골목에 6평 4평 오두막들이 밀집하게 세워져 있다고 상상해 보시라.
만약 사진에서 그런 주택들의 밀집을 본다면 아마 누구라도 판자촌, 난민촌 이상을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와! 정말 좋아. 저런 집에서 꼭 살고 싶어. 그러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태초부터 살아온 공간들은 어떤 형식들이 있었을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되짚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