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좀 부려도 돼
16.
딸.
어제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휴대용 암호 자물쇠가 택배로 도착했었지.
그리고 또 네가 필요하다던 체리맛 립밤도.
기다리던 것들을 보고 좋아라 하던 네게 아빠가 장난을 쳤어.
그걸로 이번 달 네 생일 선물은 준거다?
에?
아빠의 말에 입을 삐죽하던 네가 일초도 안 지나서 ‘그래!’ 하고 흔쾌히 자물쇠를 들고 신나라 하는 걸 보고 아빤 마음이 아팠어.
넌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릴 때도 그랬지.
보통은 아이들이 뭔가 갖고 싶은 것 때문에, 먹고 싶은 것 때문에,
아니어도 그냥 아무 이유 없이도 떼를 쓰곤 하잖아.
그런데 너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지.
왜 안되는지 이유를 설명하면 늘 흔쾌히 포기해 버렸고,
이유가 좀 석연치 않다고 해도 네 고집을 내세우지 않았어.
주변에선 어쩌면 애가 저렇게 어른스럽고 착하냐고 칭찬들을 하지만,
난 그게 착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고 어른스럽다는 건 결코 칭찬이 아닌 것 같아.
아이는 아이다운 게 좋은 거지.
그리고 떼도 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
왜냐면 무엇이든 욕심이 좀 있고 바라는 게 있어야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가질 수도 있을 거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찾아야 네가 나중에 후회 없을 것 같거든.
쉽게 체념하거나 쉽게 욕심을 버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건 아냐.
반대로 절대 이루기 불가능한 것을 과하게 욕심내거나,
현재 상황관 전혀 맞지도 않는 것들에 집착하는 건 정말 아니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또 사람의 집념과 에너지임은 알아.
하지만 너무나도 불가능한 것을 평생 꿈꾸며,
이루어지지 않을 것에 맹목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삶은 정말 괴롭지.
아빤 네가 그런 괴로움에 처하는걸 원치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어릴 때부터 시도조차 않고 체념한다는 건 또 아니라고 봐.
지금 현재의 네게 아빠가 이런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는 못할 거야.
되레 어쩌라고? 하겠지.
이 또한 어렵고도 어려운 이야기야.
욕심이 없고 소유를 고집하지 않는 평화롭고 고요한 삶.
끝없이 원하는 건 많은데 현실은 거리감이 있어서 늘 허기가 진 삶.
둘 중 무엇이 좋은가 하면 당연히 첫 번째겠지.
그렇지만 그게 너무 일찌감치,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네 나이 때부터 시작이 되어 버린다면 그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잖아.
수많은 선택의 기로가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며 수없이 시행착오도 할 거고,
또 간절히 바라고 노력했던 것을 이루고 거기서 성취감을 느끼고 할 나이인데.
어린 나이부터 모든 욕심을 초월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어떤 관점에서는 그건 욕심을 초월한 무욕의 경지가 아니라,
아예 자신이 없어서 쉽게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어.
그리고 사람은 본질적으로 욕심이 있는 존재야.
‘내 것’ ‘ 나만의 것’ ‘ 내 목숨’ ‘ 내 삶’ 이런 것을 욕심내지 않고,
모두가 초월하여 양보하고 시도를 하지도 않으며 서로에게 평온한 삶.
만약 인류가 그런 종족이었다면 아마도 다 멸종되었을 거야.
아빠가 아는 얄팍한 인문학 지식으로는 그래.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선조들이 그렇게 살았다고 해.
내 것 이 아니라 모두의 것.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며 세상의 모든 것을 신령스럽게 여긴 삶.
심지어 어떤 부족은 전쟁은 할 수 있지만,
부족 사람 간에 주먹질을 한다는 것은 아예 그 방법조차 몰랐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도 있었어.
그런 사상들에 경탄해서 인디언들의 사상을 철학이나 인문학 책으로 엮은 것도 보았지.
그런데... 욕심 많은 백인들에 의해 멸종된 상태나 마찬가지가 되었잖아.
이건 또 아빠의 좀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고,
너무 단편적인 면만 들여다본 편파적 생각 일순 있어.
그렇지만,
분명한 건 네가 욕심이 없고 양보를 잘한다고 해도 너의 주변인들이 그걸 좋게만 보면 다행이다만,
본질적으로 은연중에 너는 희생해도 되고 늘 양보하는 게 당연한 성격으로 각인될까 봐 걱정돼.
너 또한 본능적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 딸아.
너 자신을 위해서 욕심을 좀 부려도 괜찮아.
그 욕심으로 네가 더 나은 삶이 될 거라면 아빤 당연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