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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말을 거네 20

너희가 예술을 알아?

by 능선오름

너희가 예술을 알아?


문화예술진흥법 제12조(건축물에 대한 미술 장식)

① 법 제9조 제1항에 따라 미술 장식을 설치하는 데에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용하여야 할 건축물은 「건축법 시행령」 별표 1에 따른 용도별 건축물 중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건축물로서 연면적[「건축법 시행령」 제119조 제1항 제4호에 따른 총넓이를 말하며, 주차장·기계실·전기실·변전실·발전실 및 공조실(공조실)의 면적은 제외한다. 이하 같다]이 1만 제곱미터(증축하는 경우에는 증축되는 총넓이가 1만 제곱미터) 이상인 것으로 한다. 다만, 제1호에 따른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각 동의 총넓이의 합계가 1만 제곱미터 이상인 경우만을 말하며, 각 동이 위치한 단지 내의 특정한 장소에 미술 장식을 설치하여야 한다. <개정 2008·6·11, 2009·7·16>


상세한 시행령은 더 복잡하니 관두자.

어쨌거나 좀 크다 싶은 건물들의 주변에는 예외 없이 예술품, 흔히 조형물이 서 있다.

보기에 좋은 것도 있지만 최근 세종시에서 구설에 올라 철거가 된 공공조형물도 있고,

강남 포스코빌딩 앞 조형물은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긴 하지만 이래저래 구설수에 오른 지 오래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고,

공공장소에 설치된 대형 조형물이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해 철거된 예는 많다.

아무튼, 뭔가 큰 건물을 짓는다면 반드시 법적으로 주변에 조형물 설치를 해야 한다는 게 사실이다.

연면적×표준건축비×법정 이용 비율(0.1~1%)과 기준으로 안다.


이를테면,

백억짜리 건물이면 일억짜리 조형물을 설치한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보통 대형건물들의 도심 건축비는 꽤 비싸므로,

법적 조형물 설치에 드는 비용도 무시무시하다 할 수 있다.

이 정도 돈이 들어간다면 그때부터는 예술이 아니라 사업이 된다.

어느 정도 기준은 있지만,

금액이 정해져 있으므로 당연히 기성작가 중에서도 지명도 높은 사람들의 작품이 대상으로 선정된다.

이 법제에 대해 관리 역할을 하는 ‘위원회’도 있고 그 면면은 안 봐도 짐작할 일이다.


큰돈이 오갈 때는 또 당연히 거간꾼이 존재하게 마련이고,

이런저런 명목의 조세 혜택도 무시하지 못한다.

일정 부분에서는 예술품은 객관적인 가격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머리 좋은 일부 건축주는 비자금을 조성하는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어떻게 따져봐도 약간의 ‘눈먼 돈’ 냄새가 날 수 있다.


게다가 ‘공공성’ 이란 게 무엇인가.

사전에 그 공공물을 자주 접하는 사람들에게 투표를 받는 것도 아니고.

이러저러한 연유로 설치가 되었는데 보는 사람은 갓뎀이다,

이러면 참 곤란한 상황들이 벌어질 거다.

이게 과연 그저 문자 그대로 ‘문화진흥’에 이바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건축물도 그렇지만 예술품들이 당대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기피 대상이 되는 예가 적지 않았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호불호에 따라 관객이 안 보고 싶은 건 안 봐도 그만이다.

그러나 공공예술품이라면 안 볼 재주가 없다.


그렇다고 공공장소에 노출되는 예술품이 다 보기에만 좋은 그런 걸 설치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막대한 돈을 들여서 – 선택의 여지없이 –

설치한 작품이 다수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흉물’ 소리까지 들어서야 좀 곤란하지 않을까.

건축주의 처지에서는 당연히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이왕 비용을 들여야 하는 거라면,

뭔가 인지도가 증명된 작가의 작품을 설치해야 훗날이라도 투자 대비 상승효과가 있는 게 아닌가.

그 작품을 건축 허가와 사용승인 행정절차 과정에서 과연,

지극히 객관적이고 아무런 연고 지연 학연 없이 선정된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어렵다. 어려운 얘기다.

나는 예술을 모른다.

좋아하는 분야이지만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일부러 탐구한 적도 없으니 그냥 일반인의 시각으로 본다.

어릴 적 학교에서 미술 시간에 교과서에 등장하던 모네의 ‘수련’ 시리즈를 기억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이후로도 온갖 매체에서 본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그랬다.

인상파가 뭐, 그래서 빛의 변화가 뭐.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스위스 출장길에 우연히 취리히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연작 중 하나를 보았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색채에 질려 한동안 말잇못이었던 게 기억난다.

그때 생각했었다.


미술품을 화집으로 보고 배우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구나.

실물을 보지 못하고 그저 이 그림은 누구 것이고 어떤 느낌이고…. 무슨 파이고….

이거 다 소용없다.

평소 그다지 흥미를 못 느끼는 추상화도 직접 가서 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맛본다.

역시 사람의 시선은 다 비슷하다.

내가 좋다고 보는 건 타인들도 대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면.

거기에 ‘공공예술’이라는 명제에 대한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20150319_054639.jpg 암스테르담 공항 환승 길에


3F7ACS5BNSNCLJNYAE2CFIUX5E.jpg 포스코 아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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