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말을 거네 19
노출 콘크리트 좋아하세요?
브런치를 시작한 게 오래되지도 않았고,
순수 이과? 출신으로 글재주가 미천하니 글을 읽어주시는 분 대다수가 건축과는 무관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건축계에 오래 몸담은 분들이 보시면 혀를 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 소름이 돋기도 한다.
왜냐하면 건축이란 게 너무 넓고 방대해서 잘못된 지식을 얻는 경우도 흔하고, 또 학교의 학풍이나 스승에 따라 편향된 시각을 갖는 경우들도 흔하기 때문이다.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대부분 건축과 무관할 분들이라 생각하며 건축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는다.
때로 올리는 사진에도 그렇고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많은 편이다.
주변에도 요즘은 심심치 않게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건물들이 보이고, 내부 마감재 같은 것도 노출 콘크리트 느낌의 패널이나 벽지도 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노출 콘크리트라고 하면 아무래도 마감재 비용이 추가로 들지 않으니 건축비를 절약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반대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현대건축을 시작할 때는 대부분이 노출 콘크리트였었다.
당대의 현대건축가라고 불리는 분들이 르 코르뷔지에 같은 분들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었고,
당시에는 노출 콘크리트로 공사를 하는 것이 더 저렴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노출 콘크리트는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일단 거푸집 (콘크리트를 붓는 형틀)을 만드는 것도 꽤 정교해야 한다. 일단 동상을 찍어내듯 형틀 안의 상태에 맞춰 콘크리트가 굳을 테니까.
게다가 콘크리트 품질이 좋아야 한다.
콘크리트라는 게 시멘트와 모래와 골재들이 섞여서 찰흙처럼 만들어진 건데,
골재의 품질이 나쁘면 나중에 거푸집을 떼어냈을 때 여기저기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된다.
과거의 골재는 거의 강 자갈 이었어서 품질이 좋았지만, 지금의 골재란 대개 암석을 인공적으로 부숴서 만든 쇄석이라 동글동글한 자갈과 달리 다면체로 거칠다.
표면이 거칠면 질퍽한 시멘트 페이스트의 접착력이 떨어진다.
아무래도 골재 자체에 분진도 많은 편이라 더 그렇다.
김중업 건축가의 광희문 산부인과 건물
거기에 거푸집 속에는 콘크리트를 보완하기 위한 철근이 들어있다.
이 철근의 촘촘함이 클수록 구조는 강해지는데,
대신 촘촘한 철근 때문에 콘크리트 골재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여기저기 공극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그걸 막기 위해 바이브레이터라는 것을 쓰는데 일종의 진동기 다.
강력한 바이브레이터의 진동에 의해 골재가 철근 사이사이로 퍼지고, 거푸집과 시멘트 페이스트가 잘 달라붙도록 휘젓는 역할이다.
그러나 이 진동기도 너무 지나치게 쓰면 시멘트 페이스트에서 비중이 높은 모래와 골재가 바닥으로 가라앉고 물과 시멘트가 위로 떠오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거푸집을 떼어냈을 때 마치 지각의 단층처럼 각 재료들의 층이 켜켜이 나뉜 걸 보게 된다.
이것은 진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콘크리트의 혼합비율이 안 맞거나 적정설계에서 벗어났을 때도 문제가 일어난다.
그래서 형틀을 만드는 목수와 콘크리트를 붓는 기술자 개개인의 능력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현대건축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당연히 바이브레이터 같은 게 없었다.
거푸집을 망치로 두드리고 긴 막대를 콘크리트 속에 넣어 휘저어야 했다.
콘크리트도 요즘같이 레미콘 트럭으로 만들어져 오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순전히 인력으로 비율을 맞춰 비벼? 넣어야 했었다.
순전히 노동력에 의존하는 그런 방식으로만 만들어진 게 앞서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이다.
기계장비의 도움 없이 오직 사람의 힘으로만!
그래서 오히려 결과는 오래 걸렸으나 품질이 우수하다는 역설이다.
비 라도 내린다면 더더욱 대책이 어려운 게 노출 콘크리트다.
온도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콘크리트를 붓고, 그게 굳은 이후에 다시 그 위로 층을 올리는 게 일반적인데 그 과정에서 타이밍이 안 맞으면 노출 콘크리트의 색상도 달라지고 연결부위가 드러나서 흉하다.
석고틀로 흉상을 만들거나 하는 것처럼 한번 잘못 찍어내면 보완할 방법이 전무하다.
다시 부숴서 하는 방법밖에.
제주대학교 구 본관 (구조상 문제로 철거)
제주대학교 구 본관 김중업 작
요즘 수요들이 늘어서 노출 콘크리트 기술자들이 다시 늘어난 것 같기는 하다.
최근 만들어진 노출 콘크리트 건물들은 꽤 품질이 높은 편이니.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현대건축 초창기에 만들어진 건물들을 보면 그 정교한 마무리에 놀랍기만 하다.
대체 어느 정도로 손을 댔기에 저 정도로 정묘 한 마감이 된 걸까.
이름도 남기지 못했을 그 당대의 기술자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세월이 흘러 현대건축의 태동기에 만들어진 노출 콘크리트 건물들의 표면이 오염되거나 훼손이 되니 그 위에 시멘트를 발라 도색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결국 석굴암 불상에 페인트 칠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루이스 칸 작. 노출 콘크리트
앞서 기술한 방글라데시의 국회의사당은 순수한 노동으로 빚어낸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다.
그러나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거푸집의 이음매가 매끄럽지 못했을 것이고,
그 부분에 대리석을 붙이는 것으로 오히려 개성 있는 마감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