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비전공
나는 보통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과정을 밟아 건축계의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업계로 입사하거나 대학원 과정을 밟고 진출하거나 가 보편적인데,
난 개인적 사정으로 군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비전공자인데 전역 후 건축에 관련된 일을 하며 실무를 배웠다.
도면을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거의 독학으로 한 셈이다.
그리곤 늦게 학부에 진학하고 늦공부에 재미가 들려 석박사 과정을 마쳤으니 뭔가 한참 거꾸로 건축을 배운 셈이다.
때문에 아직도 배울 것이 너무 많고, 현재의 사업도 건축의 아주 작은 부분을 하는 것이라 늘 본질에서 좀 벗어나 있다는 자괴감이 있다.
그런 내게 건축이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늘 아리송하게 다가오는 존재감이 있으니 앞서 가장 많이 언급된 르 코르뷔지에와 일본의 현존 건축가 중 가장 한국에 많이 알려진 안도 타다오 다.
르 코르뷔지에가 거의 전설급 일화를 남기며 현대 건축의 신에 등급 한 것은 그렇다고 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안도 타다오의 일화는 내겐 아직도 아리송한 현대의 전설 같은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까지 아마추어 권투선수였고,
졸업 후에 우연히 건축을 접하게 되면서 세계여행을 통해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 감명을 받았고,
그런 영향으로 일본에 돌아와 건축설계사무소를 차렸고.
게다가 그 유명하다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는 점.
정작 정규과정의 건축교육을 받진 못했다는데.
배우자의 건축면허를 가지고 설계사무소를 운영한다 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어쨌거나 프랑스에서 훈장까지 받았다는 건 이 건축가의 작품이 제대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안도 타다오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진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
내가 일본의 건축계 현실은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를 봐도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대강 짐작은 한다.
우리나라 이상으로 학벌, 학연, 지연, 그리고 정규 교육에 대한 정통성 같은 것이 강한 풍토라 생각한다.
일본의 정치가들만 봐도, 대개 대를 이어서 정치를 하고 출마를 하고 당선이 되는 것을 보면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풍토의 일본에서 특이하게 다른 방식으로 일본보다 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인물들이 있는데 안도 타다오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다.
둘 다 공통점이 객관적으로 정통적인 그 분야에서 시작을 한 게 아니다.
또 일본 국내에서는 일부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거꾸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쳐 일본 자국에서 인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입지전적 인물들이기도 하다.
고베의 로코 하우징 집합주택
우리나라에도 안도 타다오의 건물들이 꽤 많으며,
그의 영향으로 노출 콘크리트 건물들을 신봉하는 건축가들도 꽤 있다.
재미있는 건 건축과 교수님들 중에 르 코르뷔지에를 비판하는 분은 거의 안 계신데,
안도 타다오를 높게 사는 분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뭔가 정통의 뿌리에서 벗어나 성공한 자에 대한 불신 같은 거랄까.
일종의 ‘시기’와 ‘운’을 잘 타고난 자에 대한 시기심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건축가는 운과 시기를 잘 타고나야 한다.
건축가에게 운은 바로 건축주라는 운이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건축가 가우디도 만약 구엘이라는 걸출한 건축주를 만나지 못했다면,
가우디 특유의 기괴한? 건축들을 구현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시기가 그때가 아니었다면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건축주의 의지가 있었다 해도 현실로 구현하긴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가까운 일본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홀로 뚝 떨어져 나와,
대성공 신화를 만든 안도 타다오는 내게는 정말 미스터리 하고도 기이한 존재이다.
그의 결과물들을 나도 한국의 몇몇 건물에서 경험해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작품’은 될 수 있으나 역시 일본풍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당연한 게, 사람이 어떤 창작을 한다 해도 자신의 직간접 경험에 녹아있던 것들이 바탕이 될 터이니.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자신이 성장하며 보고 듣고 겪은 것들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롭기는 어렵다.
또, 그 경험이 바탕이 된다 해서 비난할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에 프로젝트를 할 때는,
그 국민의 정서와 주변과의 어우러짐에 대하여 좀 더 배려를 하면 어떨까 싶은 마음은 든다.
제주에 건축된 그의 건물들을 보면,
당당한 건물의 외관이 제주 특유의 자연환경에 어우러져 보이지는 않는다.
지니어스 로사이는 그나마 낫지만 글라스 하우스 같은 경우는 구조물로 인해 성산 특유의 풍경을 가리는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 일본 아와지섬의 '물의 절'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혼푸쿠지를 보면,
특이하게 절 구조물이 연못 아래로 진입하게 되어있어서 주변 경관을 가리지 않는데 이와 같은 배려가 제주 섭지코지에 되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주의 자연경관은 그 건물이 존재하는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또 한 가지는 무의식적으로 차용된 '자기 복제'라는 점이다.
원주 뮤지엄 산
오사카 성의 해자
원주의 뮤지엄 산을 찾아간 것은 안도 타다오의 작품을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평범한 미술관을 서울에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을 굳이 찾아가기엔 힘드니까.
물론 그곳에서 제임스 터렐관을 만난 건 우연한 행운이었지만.
뮤지엄 산의 주차장에서 본관으로 들어가는 길에 본 입면의 파사드가 어딘지 모르게 또 기시감을 줬었다.
이게 뭔가? 생각해 보니 일본 오사카 성의 해자 앞에서 느낀 첫인상과 거의 흡사한 것이다.
내가 좀 유별난가 싶긴 했지만 나중에 사진들을 모아보니 전혀 다르다고 하기엔 좀 그랬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은 건축가를 감히 무명의 건축 말학 후배가 돌려 까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좀 성의가 덜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건축의 장소성을 따져봐도,
배려심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