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축?
“ 현대 건축(現代建築, Modern architecture)은 현대의 건축을 뜻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건축을 가리키는 것이 많다.”
라고 위키백과사전에 나온다.
또 현대란 그러면 무엇인가를 정의를 살펴본다면
“ 현대(現代, modern・contemporary period [1])는 역사 시대의 시대 구분 중 하나로 근대보다는 더 최근이며 지금 이 순간까지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현대'를 특별히 '현재'와 분리할 경우, 현재는 동시대라는 개념으로 다루기도 한다.”
라고 위키백과사전에 나온다.
앞으로 백 년 정도가 지났을 때 ‘현대’의 개념이 어떠할지 문득 궁금하다.
과거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던 시기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그렇게 일컬었나? 그건 아닐 건데.
일단 우리가 ‘현대건축’이라 부르는 것을 건축 사조 관점에서 구분한다면,
단순함, 조화, 유리와 철을 이용한 재료, 외부와 내부의 경계선 연결, 가볍고 비구조적인 구조의 지향 정도일까.
개인 의견으로는 현대의 건축은 크게 두 가지 성향으로 나눈다고 본다.
하나는 경제성을 최대치로 높인 도시건축이다.
형태나 미적 감각에 우선하여 도시의 토지 가격과 용적률 (대지 위에 법적으로 허용되는 최대치 건축 연면적)에 기초한 경제성을 높인 건물.
두 번째는 소위 ‘랜드마크’로 불리는 특별한 건축들이다.
이 중에서 건축적으로 거론되는 건물들은 대개 두 번째 건축물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현대건축으로, 서울 도심에서 눈에 띄는 건물들이 뭐가 있을까.
비교적 현대 고층건물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1970년에 완공된 3.1 빌딩이 있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앞서의 글에서 자주 등장한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 직원이었던 김중업 건축가이다.
그런데 이 건물도 어떤 측면에서 보면... 묘하게 뉴욕의 시그램 빌딩과도 닮아있지만.
남산 극장. 지금은 아난티 호텔로 불리는 과거 자유센터. 세종문화회관, 여의도 국회의사당. 예술의 전당 같은 것들이 아닐까.
그중에서 국회의사당의 예를 들어보면,
그것은 건축가들의 작품이 아니라 정치가들의 작품이다.
당대에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이라는 김중업, 김수근 씨가 최초부터 참여했었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작가 불명의 건축이 맞다.
최초의 기획안과는 전혀 상관없는 형태가 되었으니까.
그 덕분에 아직도 단일 건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회의사당이라는 명예? 까지 갖고 있으니 말이다.
유사시에 그 돔이 갈라지면서 로봇 태권브이가 출현한다는 전설은 덤이다.
세종문화회관도, 예술의 전당도 마찬가지였다.
건축주인 ‘국가’를 상대로 건축가들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보는 안목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안목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 결과로 아시아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국회의사당을 보면 좀 그렇다.
비교할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우리나라 국회의사당과는 좀 결이 달라 보이는 건 내 편향적 시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대건축’이라는 전제를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회의사당은 어쩐지 좀 묘하다.
딱 현대스럽지도 고전도 아닌 어정쩡함.
일본은 1936년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므로 오히려 이해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은 1975년도이니,
거의 40년의 차이가 있는데 그다지 현대적인 것도 아니지 않나?
방글라데시의 국회의사당은 1982년에 완공되었으나 착공은 1961년도이다.
인도의 찬디가르 주의회 의사당을 보자.
이 건물의 설계는 1951년에 시작하여 1962년에 준공되었다.
중국의 인민대회당은 1959년에 준공된 건물이다.
가까이 북한의 만수대 의사당은 1984년 준공되었다.
아래의 북한 인민대 학습당은 공공도서관이자 시청각 교육을 전담하는 장소인데,
이게 뭔가.... 전통건축을 반영한 것 같으면서도 뭔지 모르게 '주체적'이다.
북한의 공공건물은 아마도 우리나라 이상으로 정치적인 입김이 세게 들어간 건물일 것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현대건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정치적인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로 인해서 아쉬운 점이 많다.
대부분의 공공건축이 그렇고, 사기업이나 개인이 진행한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여러 방면의 건축규제와 미관심의를 통해서 이렇게 저렇게 바꾸다 보면 건축가의 당초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좋다.
건축가라고 해도 사실 굳이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 싫고 같은 작업을 번복하기 싫으니 적당히 허가기관의 입맛에 맞춰주게도 된다.
건축 관련 법규를 대강 넘어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파리, 로마 같은 곳은 자기 소유의 건물 하나 뜯어고치는데도 엄청난 규제를 받는다고 알고 있다.
그리스의 산토리니 같은 곳은 오죽하면 에어컨을 놓을 수도 없다고 들었다. 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그러나 그런 규제들은 인허가 기관의 횡포가 아니라 몇 백 년이 넘게 이어온 건물들의 특성을 보존하고 보전해서 그들 특유의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
전공도 아니거나 실무 경험도 부족한 공무원이 보수적인 법 적용으로 강제하는 우리 현실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으로 역사에 남는 건물들은 당대에 대중으로부터 욕을 심하게 먹은 예가 많다.
인도하면 떠오르는 타지마할은 인도인들에게 관광자원을 남겨주었으나 타지마할을 짓도록 지시했던 왕은 그 때문에 몰락했다.
파리의 에펠탑이 만들어졌을 때, 그것이 계속 존재할게 아니라 만국박람회 기간 전시용으로 만들어져 존치기간이 정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지앵들과 파리의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반발을 일으켰다고도 한다.
최근 주목받는 런던아이, 런던의 대관람차도 당초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는 반발이 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젠 런던 관광코스에서 뺄 수 없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앞서의 글에서 등장했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궁전 또한 다 짓기도 전에 궁전을 짓도록 했던 차우셰스쿠 대통령은 총살을 당했지만, 지금은 루마니아의 유명한 관광코스가 되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들이 역사에 남는 건축물을 기획하는 건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게 넘쳐서 전체적인 도시의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가 된다면 그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도시의 건축과 계획에 있어서 밸런스를 찾는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인데,
그걸 결정짓는 최고권자들이 대개 건축에 무지한 행정가들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무려 1964년에 우리나라 반대편 국가인 브라질의 국회의사당이 준공되었다.
당시의 시선으로 봐도 놀라운 건물이었을 것이다.
브라질 공무원들의 사고가 자유로운 것인가, 아니면 건축가의 위상이 높았던 것일까.
일편으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