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건축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르 코르뷔지에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국내 건축산업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건너뛰었다.
고전 건축은 일반적으로 세계사에서 많이 다루는 이야기이고,
현대건축은 많이 노출되진 않은 이야기라 고대의 건축보다 현대건축의 효시라고 할만한 부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현대건축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업무차 일본에 자주 가본 편인데,
도쿄에 처음 출장을 가서 시내를 돌아다니며 느낀 점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어쩐지 도쿄의 구도심을 걸으며 묘한 기시감이 있었던 거다.
왜지? 일본이란 데를 처음 왔는데 느껴지는 이 기묘한 기시감은?
자세히 보니 주변의 높은 건물들이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건물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건물은.... 싶은 건물들의 나열.
특히 강북 종로권에서 많이 보던 건물들이 꽤 있었던 거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고 해외여행도 쉽지 않던 시절에,
무단으로 일본의 현대건물들을 본뜬 엇비슷한 건물들이 서울에 세워졌던 거다.
물론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돌아온 현대건축가가 많던 시절이기도 하고.
아래의 건물들을 보면 대체 뭐가 원조인지 모를 셈인데,
설계자는 미국인으로 시저 펠리라는 사람인데 공통의 설계자가 한 작업이긴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비슷하다.
건축주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하니, 뭐 선택권은 없었겠지만,
돈 받고 설계하는 그 건축가 입장에서도 뭔가 씁쓸도 하고 아니면 쉽게 쉽게 가니까 공돈 버는 느낌도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또 아래의 사진을 보면 뭐가 뭔지 헷갈린다.
건축의 문외한이 본다 해도 그리 다를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이 또한 한때 법적 논란에 휩싸였던 경주타워 건물이다.
제일 한국인 출신의 이타미 준 이 현상설계에 참여해서 가작을 받았던 설계안을 교묘하게 바꿔서 완공한 경주의 건물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한국인의 신분을 포기하지 않은 흔치 않은 인물이다.
그가 정작 모국이라 여기던 한국에서 이와 같이 사기에 가까운 결과를 알았을 때 얼마나 경악하고 실망했었을까.
그것도 일본의 이타미 준 사무실 직원이 그런 표절을 발견한 것이니 얼마나 창피했었을까.
부여 박물관 (구)
일본 신사의 지붕모방은 제2의 창조라는 말을 듣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방을 통해서 재현하려는 욕망이 있다라고 말했다는 게 그 말의 원조쯤 되겠다.
그러나 그리스어에서 ‘모방’ ‘재현’ 이런 뜻이 온전히 영어로, 일본어로, 다시 한국어로 제대로 바뀐 거 맞을까.
그리스어라곤 모르고 영어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알 순 없지만,
아마도 그런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모방을 하는 것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면죄부를 줬다?
상식적이지 않다.
물론 많은 예술작품들 조차 모방이나 표절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거 업무차 스위스에 출장을 갔을 때 그곳의 미술관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주제가 인상파 화가들이 ( 모네, 고호 등등 ) 당시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우키요에 그림들을 따라서 그린 그림들이었다.
19세기 일본의 대중적인 판화 형태였던 우키요에는 화가들 중 고흐는 '탕기 할아버지'라는 작품의 배경으로 우키요에를 그리기도 했고,
에두아르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도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에드가 드가, 메리 카사트, 피에르 보나르, 에드와르 부에 야루,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고갱 등에게도 우키요에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때는 유럽에서도 평소 접하기 어려운 풍의 일본 화풍에 자극을 받아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건축에서 대놓고 건물을 표절하는 것들은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천박한 인식이라는 생각을 벗어나기 어렵다.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 원을 들여서 건물을 만드는 건축주가,
자신의 건물을 엇비슷한 무언가를 보고 따라 하기를 원하는 것.
이거 너무 돈이 아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