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때는 말이야 19

영화는 영화다

by 능선오름

영화는 영화다

19.

딸아.

요즘 너는 동영상에 푹 빠져있지.


얼핏 봐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등교 전에는 아이패드로 유튜브 동영상이나 숏컷을 보고,

하교해서 시간이 될 때면 다른 동영상들이나 아니면 티브이로 만화영화를 보곤 하지.

아빠가 어릴 땐 집에 티브이가 없어서 라디오를 듣거나 빌려온 만화책을 보거나 혹은 누나들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나이에 안 맞는 소설책을 읽곤 했었단다.

당시 그리 넉넉지 않았는데 부모님은 공부 잘하는 막내가 기특해서였는지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조선 같은 아동 잡지를 매월 구독해 주셨어.

그런데 동네 만홧가게에서 만화를 빌려오는 건 질색하셨지.

이유는 모르겠어. 돈으로 따져봐도 그게 더 나았을 텐데.

아마도 부모님께서는 막연하게, 어딘가 침침하고 불량소년들이 모이는 것 같던 만홧가게에 아들이 드나드는 게 싫으셨던 것 같아.


나중에 흑백 티브이가 집에 생긴 건 중학교 졸업 즈음이었으니 당시 기준으로도 좀 늦긴 했었지.

거기서 펼쳐지는 신세계에 아빠도 정신없이 빠져들곤 했단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 컴퓨터라는 게 생겼고 인터넷이라는 게 생기면서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온갖 영상들이 넘쳐나서 뭘 볼지도 모르곤 하지.

정보뿐 아니라 영상 콘텐츠를 온종일, 몇 날 며칠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괜찮을 거야.

그런 거 보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영상에 마음을 쉽게 빼앗기는 거 같긴 하다.

재미있지.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를 정도로 재미있고 쉽게 지나가지.

오히려 오래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게 좀 버거울 정도로 짧고 자극적인 영상들이 많아.


예전에 어떤 유명한 영화감독이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좋은 영화는 없다. 나쁘지 않은 영화가 있을 뿐이다. ’


어떤 의도였을지는 모르지만, 아빠는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

영화를 안 보고, 히트한 영화를 모른다고 해서 개인에게 문제가 생기진 않지.

특별히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 말곤, 꼭 그 영화를 몰라도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어.

물론 재미를 느끼고 잠시나마 감동을 하고... 그런 건 있겠지.


하지만 영화라는 것. 드라마라는 게 대부분 타인의 상상과 공상을 현실화하는 거잖아.

그리고 관객은 일방적으로 감독이 의도한 내러티브에 따라가는 게 맞고.

그 과정은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은 해.

하지만 아빠는 그런 동영상들이 좀 더 무분별하게 사람들에게 교육 아닌 교육을 시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개 영상매체에 등장하는 내용들을 별로 거부감 없는 진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문자 매체도 마찬가지지만 영상매체가 더 강력한 것도 사실이고.


과거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로 인기를 끌었을 때는 그 소설을 모방해서 권총 자살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었다고 들었어.

어떤 폭력 영화를 보고 따라 했던 십 대들 이 결국 범죄자가 되었다는 뉴스도 있고.

물론 뭔가 상상의 산물들을 보고 그 상상의 영향을 받아서 현실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볼 수 있지.

하지만 분명 그런 것이 좋은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는 증명은 된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좋은 영화와 동영상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좋은 일을 하게 되고 자극받아서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는 건 사실 그 영향으로 범죄자가 된 사람만큼 극소수야.


즉, 안 봤으면 전혀 영향받을 일도 없고 말 그런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거지.

문자 매체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

활자로 무언가를 기록했을 때 기록자의 마음이 온전하게 글을 읽은 독자에게 전달이 되는 경우는 드물거든.

글로 작성된 작자의 심경이 독자에게 온전하게 전달이 된다면 그 글은 정말로 ‘명문, 명작’이라고 할 수 있지.

본래 사람이란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듣는 것이라서,

글로 전달을 하면 본래 의도의 반의반도 전달이 안 되고 전화 통화로 소통을 해도 절반만 전달이 된다고 해.

심지어 마주 앉아서 얼굴을 보며 의사소통을 했어도 완전히 전달이 안 된다고도 하거든.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그래서 아빠는 네가 온갖 상상의 산물들을 다 받아들여서 네 소중한 기억 저장고에 무작위로 쌓지 않기를 바라.

그건 그저 언젠가 삭제되어야 할 무가치한 정보들에 불과하거든.


그래도 활자로 기억된 것들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어.

작자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이게 무슨 의미이고 이런 전개는 어떤가 상상을 하는 동안 자신의 사고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영상매체로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된 장면들은 네게 그리 도움이 되진 않을 거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두뇌 회로를 아주 단순하게 따라 하는 회로로 바꿔버리니까.

이따금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그런 것들은 잠시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하는 용도로는 좋아.

과열된 두뇌 회로를 식히는 데는 그런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티브이를 ‘바보상자’라고도 하잖아.

티브이를 통해 들어오는 과잉된 일방적 정보들에 침식이 되면 사람이 좀 멍청해지거든.


네게 정보를 주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모든 영상, 음향, 문자 매체들은 실제와는 좀 다르게 너를 길들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렴.

그래서 무엇을 즐길 때도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

우리 딸은 그걸 잘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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