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때는 말이야 20

의사는 신이 아냐

by 능선오름


20.

며칠 전 네 생일을 지나고 나니 네가 태어나던 상황들이 문득 떠오르는구나.

당시에 네 엄마는 주기적으로 근처 산부인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8개월 차에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하는 거다.

초음파 촬영한 내용을 보여주며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너의 모습과 함께 센티미터 단위 그래프를 보여주는 거였어.

네가 너무 작고 자라지를 않으니 큰 병원에 가서 확인을 받으라는 것이었지.

두려운 마음을 품고 대학병원을 찾았는데 그곳의 전문의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네가 팔도 짧고 다리도 짧은데 배 속에서 자랄 환경이 아니니 제왕절개로 조기 출산을 해야 한다는 것.

청천벽력같고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그곳에서 바로 수술이 하긴 어려웠어.

일단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한다고 소문난 산부인과 전문병원을 찾았다.

행여라도 거기서는 다른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랬더니 그곳의 의사도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가 콩팥이 안 보인다는 거야.

그러면서 좌우 팔 길이도 다른 것 같으니 수술을 서두르자고 권유했었어.

너무 낙담했지만 세 군데 병원에서 뭔가 문제를 이야기하니 도리가 없었지.

그렇게 급히 수술 날짜를 잡아서 네가 태어났어.

몸무게 1.2㎏. 정말 너무나 작고 여린 너를 보고 아빠는 기쁨보다 두려움이 훨씬 컸었다.

그리곤 산부인과에서 바로 소아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다음날부터 의심스럽다는 네 몸에 대해 검사를 했었지.

뚱하게, 아주 쿨한 어투로 말하던 소아과 전문의의 말이 지금도 생각나.

“ 팔 길이가 정상이네요. 아, 그리고 콩팥도 이상이 없군요. 아이가 작지만, 생각보다 자가 호흡도 잘하고. 초유요? 산모가 수유할 수 없으니 뭐 분유 먹이면 괜찮아요. 제 자식도 분유만 먹고도 잘 컸어요. ”

며칠간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놓은 무시무시한 말들을 언제 했냐 싶을 정도로 시크하게 자기 할 말만 던진 전문의의 얼굴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아빠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의사들의 말은 참고 사항이지 권능을 가진 신탁 같은 건 아니라는 거야.

물론 그들의 전문적 지식과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내리는 진단은 따르는 게 좋지.

하지만 그들 또한 사람이고, 자신의 경험치 내에서 이야기하는 것이고 늘 최악을 산정하고 거기에 맞춰 환자를 대하므로 어느 정도 선별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아빠의 주변에서도 시한부 통보를 시크하게 받았는데 다른 병원에서 아무 문제 없다는 진단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문제없으니 퇴원하라 했는데 다음날 바로 운명을 한 예도 없지 않아.

의사는 신이 아니므로 모든 걸 다 알 순 없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른 병원들에 다니며 평균적인 진단 결과를 종합해서 어떻게 치료할까 걱정해야 하는 건 온전히 환자의 몫이지.

의사라는 직업이 고도의 직업윤리를 요구하며, 의사로 임명될 때 무려 ‘선서’를 하는 직업이란 아빠가 알기로는 직업군인이나 경찰 같은 직업 외에는 없어.

그만큼 중요한 위치의 중요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 또한 직장인이자 사업자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몇 배로 긴 시간을 오직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막대한 공부를 해야 하고, 남들보다 더 박봉에 오랜 시간을 수련의로 보내며 경험치를 쌓아야 하는 직업이라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야 비로소 직업인으로 시작을 하는 건데.

그러고도 잦은 야근과 추가 근무는 기본이고 직업 특성상 원망을 받는 역할도 하고, 개업이라도 하면 잔뜩 빚을 지고 시작을 하는 것이니 그들도 이해타산이 안 맞는 병원을 운영할 수는 없어.

그래서 좀 과한 진료, 혹은 비용을 좀 더 받을 수 있는 진료를 선호하고 권하게도 되는 거지.

모든 의사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좀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빠의 눈으로도 저런 의사가 있다니 할 정도로 정말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충실한 분들도 여럿 보았으니까.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의사도 사람이고 실수도 할 수 있으며 개개인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편향적일 수 있으니 온전한 판단은 너 자신이 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전문성이라곤 1도 없는 황당한 자연치유전문가 라던가 뭔가 이상한 자연 추출물 같은 걸 만병통치약처럼 떠드는 그런 쪽에 눈을 돌리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만약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치자.

그걸 누군가가 찾아내서 열심히 환자치료에 널리 널리 퍼뜨린다고 쳐.

그런 거면 인류 역사 일만 년 동안 아무도 못 찾은 걸 그 사람은 찾은 거니 그야말로 ‘신급’ 인물이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굳이 의사의 예를 들은 건 네가 태어날 때 상황이 생각나서이고,

그 어떤 직업의 사람도 ‘절대적’일 수 없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야.

그걸 알기에 그 속에서 가능한 덜 실수하고 덜 속아가며 살려고 하는 거지.

어렵지. 아빠도 어려운 이야기야.

다만 아빠는 우리 딸이 그런 말들에 휘둘리지는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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