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 식당 11

소쩍새 우는 사연

by 능선오름


심야 식당 11

이따금 식당에 채소류 배달로 이따금 들르곤 하는 초로의 아저씨가 있지.
그 양반은 듣기에 잘 나가던 큰 회사 직원이었다는데,

나이가 들어 강제 실직을 했던 모양이야.
실직 후 퇴직금으로 주식투자 같은 걸 많이 했었는데 실패를 해서 쫄딱 망했다 하더군.
그러다 보니 이혼도 하게 되고, 노숙 생활 비슷하게 방황도 좀 하다가

벽제 근처 고향으로 내려가서 집안에서 하던 농사일을 도우며 사는 모양이야.
그렇게 몇 년 살아보니 뭐 그럭저럭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는데,

그 비닐하우스 농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끔 와서 일을 돕곤 했었는가 봐.
거기서 우연히 알게 된 태국 색시가 하나 있어서 어찌어찌 함께 살게 된 모양 이더라고.


거기까진 뭐 어쩌면 우리나라 농촌에 흔한 스토리이니 그러려니 할 일이지.
그런데 그 시어머니가 영 그 태국 색시를 고깝게 여기는 모양이었어.
지금이야 어쩔 수 없이 낙향해서 노모를 ‘모시는’ 것도 아닌 빌붙어서 농사짓고 살아가는 모양새 이긴 해도, 그래도 서울에서 대학도 나오고 대기업에 다녔던 아들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가무잡잡한 여자를 재취로 받아들인 게 영 마땅치 않은 모양 이더라고.
그런데 이 할머니도 참 그런 게, 예전이야 어찌했었든 간에 그 아저씨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고.
흔하디 흔한 게 그런 조건 아저씨 인 데다가 게다가 경제적으로 능력이 전혀 없어졌잖아.
나이는 들대로 들은 모양새이고.


그렇지만 부모란 늘 자기 새끼는 세상에서 제일 나아 보이고,

언젠가는....이라는 어리석은 기대치를 가진 법이니 뭐라 할 순 없겠지.
그런데 이 아저씨가 가끔 채소배달을 마치고 이따금 내어주는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한탄 비슷하게 하는 소릴 들어보니 그 태국 색시가 참 안되긴 했더라고.
시어머니의 등쌀이 심해서, 거의 밥 먹을 시간만 되면 그리 일을 시키는 모양 이더군.
안 그래도 입맛이 잘 안 맞아 밥도 잘 못 먹는다는데.
그렇게 끼니를 놓치고 밥 늦게 라면이라도 끓이고 있으면,

밥때 밥 안 먹고 비싼 라면 처먹는다고 냄비째 엎어 버린 일이 한두 번 아니라는 거야.
아저씨가 안쓰러워 색시 역성을 들어주면 할머니는 거품 물고 나자빠지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매일 두 여자 사이에서 눈치만 보는 아저씨도 꽤 힘든가 보더라고.
어쩌겠냐고, 잘 토닥거려서 살아야지 어쩌시겠냐.
뭐 이런 식상한 멘트 말곤 해 줄 게 없었지.

가게를 여는 초저녁에 조금 늦은 배달을 온 아저씨 곁에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아저씨 키 반 만한 작은 여자가 따라온 걸 보고 직감적으로 그 태국 색시 구나 짐작을 했지.
아저씨와 더불어 꾸벅 인사를 하고, 배달 온 야채를 내려놓곤 두 사람이 가게 구석에 앉았어.
그렇게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저씨가 부탁을 하는 거야.

"저, 사장님. 죄송 하지만 이 사람 먹을만한 음식 좀 가능할까요? 근처에 태국 음식점도 없고... 어머니 때문에 늦게 들어가기도 어렵고 해서, 간단히 식사라도 좀 먹여서 들어가려고 하는데요..."


어라, 내가 할 줄 아는 태국 음식? 이거 참 곤란한데.


소쩍새 우는 사연

만 리 길 바다 건너 머나먼 땅에
나 하나 시집가면 많은 동생들 먹거리라도
조금은 나아지리라는 마음으로 건너온

낯설고 물설고 생전 처음 겪는 추위 속
종일 허리 한번 펼 수 없는 비닐하우스 속
파릇파릇 돋아나는 작물 들은
내 피와 땀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내 나라에서는 나도 배운 사람인데
한국말 도 못한다 지청구 들으며
시어머니 밥주걱에 뺨 맞던 저녁
내동댕이쳐진 라면 냄비가 흥건한
그 바닥의 라면이라도 먹어야 했다

오래전 한국에도 솥이 적어서
굶어 죽은 며느리가 새가 되었다던데
우리 시어머니는 전생에 어인 사연으로
나를 생아귀 지옥으로 밀어 넣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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