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 식당 12

안남미를 아시나요

by 능선오름


심야 식당 12

- 태국 음식 같은 거 만들 줄 아는 거 있음 이상한 거죠. 여긴 그냥 밥집인데.
- 그래도, 아내가 워낙 한국음식을 어려워하기도 하고, 집에서 편히 먹질 못해서 그러는데 뭐 좀 비슷만 해도 되지 않을까요. 죄송합니다.

저렇게 까지 말을 하는데 어떻게 끝까지 외면할 수 있겠어. 에잇.
그냥 있는 재료들로 대강 만들어 보겠다고 할 수밖에. 다행히 쌀국수는 내가 좋아해서 있으니까.

일단 쌀국수를 찬물에 담가 놓아야 해. 불려야 하니까.
이 쌀국수는 이미 증기로 익힌 것을 말린 것이니 물에 오래 불려 놓기만 해도 되는데,
그럴 시간이 부족할 때는 찬물에 잠시 불렸다가 끓는 물에 데치는 정도로 만 해도 금방 불어나니까 그럭저럭 괜찮아.


국수가 불어나는 사이에 들어갈 재료들을 준비 하지.
뭐 있는 대로 대강 넣으면 되는 거야.
청경 채가 있으면 청경 채를, 시금치가 있으면 시금치를.
간 고기가 있으면 간 고기를, 그냥 조개류 나 오징어 나 새우나 뭐든 있는 대로.
부재료는 뭐가 들어가든 상관없지만, 그래도 반드시 숙주나물은 있어야 해.
그게 빠지면 뭔가 동남아 음식스럽질 않더라고. 고수도 그렇고.
한국에서 고수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라 늘 상비해 놓곤 하지.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좀 있으면 단단한 부침용 두부를 작게 깍두기처럼 토막 내서 기름에 살짝 튀겨줘도 좋아.
요런 부재료들이 많이 들어가면 맛이 좋지.
뭐 그것 조차 없다! 그러면 소시지 든 햄 이든 뭐든 다 넣으면 그만이야.
뭐 어때. 가정식이 다 그렇지.

중화 팬에 살짝 식용유를 두르고 먼저 고기류, 어패류, 순으로 볶아 줘.
절반 정도 익었을 때 채소류를 넣고 중국식 XO소스 나 베트남 쌀국수에 들어가는 해선 장을 두루두루 뿌려서 볶아 주는 거지.
여기다가 땅콩버터를 살짝 물에 개어 섞어줘도 아주 고소한 맛이 돌지.
순차적으로 쌀국수가 들어가고 마지막에 숙주나물이 들어가는 거야.
숙주는 사실, 거의 안 볶고 쌀국수와 부재료의 열기로 숨을 죽인다 정도로 생각하면 돼.
그렇게 양념이 배이도록 살살 저어서 볶아 준 후에 접시에 담아.
여기서, 좀 더 동남아 요리 냄새를 풍기고 싶으면 위에 고수 잎을 뿌려주고,
볶은 땅콩을 두드려서 땅콩가루를 만들어 살살 뿌려주는 거야.
요렇게 하면 좀 가짜스럽긴 하지만, 태국식 팟타이가 만들어져.
뭐 대강 가정식 팟타이라고 우기기로 하는 거지.

뭔가 공허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색시가 앞에 놓인 팟타이 비스무레 한 음식을 보더니,

그 아저씨를 쳐다보더라고.
그러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젓가락으로 볶음 쌀국수를 한두 점 집어 먹다가,

접시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야. 아, 이런.


안남미를 아시나요

아주 오래전 우리나라에
쌀이 드물던 시절이 있었지

밀가루 많이 먹으라 장려하고
도시락에 보리가 섞여있지 않으면
교실 뒤로 불려 나가 벌 받고

일주일에 하루는 칼국수를 먹어라
라디오에서 빅브라더처럼
경고하고 광고하고 부르짖던 시절

들어 보지도 못한 안남미 란
희한하게 생긴 길쭉한 벌레 같은 쌀이
정부미로 지정되어 나왔었지

밥을 지으면 그냥 튀밥처럼
후 하고 불면 날아가곤 했어
대체 이걸로 밥을 해 먹는 사람들은
얼마나 가벼울까 생각하곤 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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