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뭐냐고?
22.
딸아.
네가 엊그제 ‘아빠 나 남친에게 차였어’ 할 때 아빠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어.
초등 저학년인 네가 남친 남친 말을 꺼내면 그래그래 하던 건 그냥 농담 비슷한 거였지.
근데 진짜 남친, 게다가 차였다니.
말하고 싶지 않다는 너를 구슬려 들어본 너의 짤막한 연애? 스토리는 미안하지만 아빠에겐 약간 웃픈 이야기였지.
1학년 때 같은 학급이던 남자애와 서로 사귀자 말을 하고,
그 이후로 함께 놀고, 학년이 올라가서는 다른 반이었지만 이따금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운동장에서 마주치면 함께 놀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보고.
그랬는데 네가 방과 후 활동 시간에 만난 그 아이반 여자애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 남자애 이야기가 나와서 내 남친이라고 네가 말했다지?
그리고 그다음에 다시 여자애를 만나니 그 여자애가 같은 반의 남자애에게 물어봤는데 남친 아니고 그냥 ‘친구’라고 말을 들었다는 거.
그래서 그 남자애에게 차였다고 묻는 네 진지한 얼굴에 귀엽기도, 측은하기도, 착잡하기도 했었단다.
애써 아빠가 해줄 수 있던 말은 네게 남친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었고,
너는 ‘연인’ 아니야 라고 되물었고 연인이 뭐냐 묻는 내 말에 다시 너는 ‘나중에 결혼도 할 사이’라고 대답했지.
그래서 내가 네 나이에 벌써 나중에 어른이 되어 결혼할 상대로 그 아이를 만난거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는 게 너의 대답이었어.
그래서 아빠가 말했지.
남자와 여자 아이들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고.
넌 사귄다고 생각할 때 그 남자애가 네게만 특별한 ‘남친’ 이라 생각했어도 그 남자애는 아직 남녀 구분이 희미한 상태라 그냥 ‘친구’라 생각했을 거라고.
그러니 어쩌면 너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거니 창피할 것도 차였다고 생각할 일도 아니라고.
딸아.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그 사건이 네 최초의 연애 실패 사례로 기억될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살아가며 어른들도 흔히 겪을 수많은 과정 중 하나라고 아빠는 말할 수밖에 없네.
항상 남자와 여자는 정말 화성인과 금성인 만큼이나 다르다는 걸 느껴.
네 아빠인 나도 남자이고, 그래서 내 딸인데도 이따금 너의 생각을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거든.
앞으로 네가 자라면서 더 그 차이가 벌어지겠지만 말이야.
요즘 아이들이 빠르다곤 하지만 그건 어느 부분 인정한다만 남자아이들의 이성에 대한 지적 성숙도는 굉장히 느려.
그리고 어느 정도 성숙도가 생겨도 늘 본능이 앞서고, 또래 여자들에 비해 감정의 주기도 굉장히 짧은 편이야.
어제는 어떤 여자애가 좋다가도 오늘은 아닌 경우가 많거든.
그건 남자라는 성의 문제이지 상대방인 여자의 문제는 아니야.
반면에 또 여자라는 성은 남자라는 성을 완전히 이해 못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현상과 여자에게 보여주는 남자의 모습에 믿음을 가지기도 해.
사랑이라는 단어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굉장히 심오하고 복잡한 주제야.
고대로부터 수많은 철학자와 현인들이 정의를 내리거나 그 주제로 많은 책을 쓰고 수많은 토론이 있었지만 결론이나 정답은 없어.
왜냐하면 사람이란 거의 엇비슷한 행동 패턴을 갖고 있긴 해도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일관된 부분은 많지 않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거지.
우리는 수많은 과거의 이야기들과 사랑에 대한 수많은 상상이야기와 실제 이야기들을 통해 알게 모르게 이성간 사랑을 하는 방법과 사랑을 느끼는 과정에 대해 후천적으로 교육을 받아온 건지도 몰라.
사랑=결혼이라는 공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고 아빠는 생각해.
오히려 사랑(상황+조건+객관성) =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내커플 갬퍼스 커플로 결혼에 골인하는 게 우연은 아니야.
일단 자주 접할 기회가 없는데 만날 순 없다는 것.
그리고 만약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 두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않고 시작도 안 했을 커플이 많다는 거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 만남은 우주의 조화라는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이야기야.
처음 사랑을 시작했는데 어쩌다 시공간이 떨어진 곳으로 헤어졌을 때 그 사랑이 유지될 확률은 굉장히 작거든.
신데렐라 동화의 예를 들면, 신데렐라가 왕자의 파티에 가지 못했으면 만날 확률은 없었을 거야.
그리고 거기서 만난 상대가 왕자가 아니라 파티의 시종이었다고 해도 그 스토리가 해피엔딩이 되었을까? 그건 아닐 거야.
아빠도 이성 간의 사랑을 정의하기엔 아직 한참 모자라.
아마 평생을 살아도 모를 거야.
너와 아빠처럼 혈연으로 맺어져 무조건으로 사랑을 하는 것과는 다르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