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대하여
24.
딸아.
넌 무서워하는 게 참 많지.
혼자 잠시 있는 것도 무섭고 티브이에 무서운 장면 나와도 무섭고.
보통 아이들이 쉽게 들어가 즐기는 놀이카페도 분위기가 어두우면 무서워하지.
네가 좋아하는 어린이 뮤지컬 같은 데서도 큰 탈을 쓴 캐릭터들이 가까이 오는 것만 봐도 질색하고.
그래서 가끔 아빠가 네게 좀 화를 내곤 하지.
아빠가 네게 화를 내는 건 사실 네가 짜증스러워서가 아니고 안타까워서 일 거야.
아빠도 어릴 때 겁내는 게 많았었고, 그 무서움을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무서움을 주는 주체는 달라졌는지 몰라도 어른이 되어서도 무서운 건 무섭지.
무서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사실 높은 곳에서 느끼는 고소 공포라던가 넓은 곳에서 무서움을 느끼는 광장 공포 같은 건 워낙 본능적인 거라 이겨내기가 쉽지 않지.
천성적으로 롤러코스터를 즐기지 못하는 그런 것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대개 그런 것들은 무서움을 참고 여러 번 겪어보면 대체로 익숙해지기도 해.
물론 살아가며 굳이 본능적으로 무섭고 피할 수 있는 무서움을 애써 이겨내려고 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
그렇지만, 사람이 보통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을 다 피해가다 보면 일생에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줄어들게 되거든.
인간은 근원적으로 타고나는 공포심이 있고 그 공포심이 생존과 연결되므로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해.
대체로 그런 공포들은 상황도 있고 각자의 상상 때문일 수도 있고.
아빠의 예전 군 생활을 생각해보면 일 주야를 낮엔 숲속의 텐트에서 자고 밤에는 밤새 걷는 그런 훈련이 있었어.
게다가 군사훈련이라 손전등도 켜면 안 되는 것이고, 그냥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별빛에 의지해 걷는 거지.
등에는 30㎏의 군장을 메고 말이야.
어둠 속을 걷는다는 건 생각보다 매우 힘들지.
잠이 오는 부분도 있고 앞이 잘 안 보이는 길이 평탄하지도 않은데 안 넘어지려 애쓰면서 계속 밤새 걷는 건 좀 어려워.
거기서 어둠에 대한 공포 따윈 없어. 일단 몸이 너무 힘드니까.
그렇게 밤새 탈탈 털린 몸으로 새벽이 어스름해지면 숲에 모여 텐트를 치고 잠이 드는 거야.
보통 그럴 때 가장 인기 있는 텐트 자리 1순위는 산소 앞이었어.
산소 자리는 대체로 볕이 잘 드는 곳이고, 이른바 명당이잖니.
볕도 잘 들고 물도 잘 빠져서 보송보송하고 주변에 적당히 풀도 베어져 있어서 바닥도 없는 군용텐트를 치면 잠자기가 편했거든.
그런 상황에선 귀신이고 뭐고 산소고 뭐고 중요하지 않았어.
무서움 같은 게 사치스러운 감정이 되는 거지.
그런 시절들을 지내다 보면 보통의 사람들이 갖는 선천적인 공포에서 좀 무뎌지긴 해.
어둠 속에 나타나는 나뭇가지들을 보고 헛것을 본다거나 하는 일이 없어지지.
겪어보니 정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체득하게 되거든.
오히려 그런 데서 무서운 게 나타난다면 멧돼지나 사람의 인기척 이었을 거야.
대개의 공포는 그렇게 상상의 산물인 경우가 많아.
아빠가 경험한 것 같은 극한의 훈련이 일반적인 세상에는 없지.
대신에 그런 경험보다 무서운, 사람들에 의한 공포가 더 많아.
대체로 어떤 환경이나 상황들이 주는 공포들은 오히려 사람에게 크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아.
그 상황에 있는 사람이 혼자 상상하고 착각하며 무서움을 느끼게 되는 거지.
하지만 사람들은, 만약 악의를 가진 상대라면 범죄까지는 아니어도 보통의 사회생활에서도 상대방을 모함하거나 악용하거나 은근히 정신적인 괴롭힘을 줘서 힘겹게 만드는 경우가 많지.
그런 사람에 의한 무서움이 사실은 더 개개인에게 타격이 커.
상황. 환경. 이런 것들의 무서움과는 비교가 안되는 게 사람들에 대해 느끼게 되는 공포지.
그런데 그것도 실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멘탈에 달려있어.
방식은 각기 다르겠지만 사람에 대한 무서움 또한 각자의 방식에 의해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지.
어찌 보면 선천적으로 가진 고소 공포보다 극복하기가 쉬워.
적어도 사람이란 건 정 상대가 어려우면 피할 수 있는 거니까.
어딘가에 갇혀서 피하는 것조차 어려운 게 아니라면 괜찮아.
피하고, 안 만나고, 안 해도 되니까.
여러 상황이 겹쳐 도리없이 그런 사람을 마주하는 과정이 있다면,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벗어나면 그만이야.
그런 사람들에 대한 공포로 자신이 휘둘릴 필요는 없단다.
딸.
홀로 있음을 두려워하지 마.
산속에서 고립이 된다 해도 우리에게 두 다리가 있는 이상 걸어서 벗어나면 그만이야.
네가 어떤 장소에서 혼자 남게 된 시간에 두려움이 든다면 벗어나면 돼.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