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고등어
이따금 밤늦은 식당에 들르곤 하는 할아버지가 있었어.
근처 길가에 있는 조그만 복권방 주인이라고 하던데,
노인이 밤잠이 없어서 그런지 다른 가게들 보다 훨씬 늦게 까지 문을 열어놓은 모양이더군.
그 노인은 늘 말없이 늦은 새벽에 식당에 들어와서 별다른 망설임 없이 늘 그날의 메뉴를 시켜 먹곤 했어.
귀찮게 다른 걸 시키진 않으니 감사하기는 한데,
워낙 우리 식당의 그날의 메뉴는 대개 냉장고 안의 낡은 식재료가 더 낡아서 폐기되기 전에 처분을 하는 스타일이라 좀 미안하곤 했지.
물론 이왕이면 신선한 식재료를 쓰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손님들 취향에 따라 오락가락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식재료가 쌓이곤 하거든.
그날은 냉동실을 정리하다 보니 정체 모를 나무토막 같은 것이 나왔어.
이게 뭘까 싶어서 비닐봉지 채 수돗물에 담가놓았다가 약간 녹은 상태에서 보았더니,
오래전에 누가 보내줘서 손질만 하곤 그대로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고등어였어.
나무토막처럼 얼어버린 고등어를 보니 아무리 냉동고지만 그래도 이제는 처리를 해야 할 것 같았지.
반쯤 녹다 만 고등어를 쌀뜨물에 담가 놓았어.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녹이면 비린내가 좀 잡히거든.
그리곤 건져서 날짜 다되어 가는 우유를 그릇에 붓고 고등어를 삼십 분 정도 담갔지.
이러면 살이 좀 더 단단해져서 잘 풀어지지 않고 비린내도 더 잡을 수 있거든.
뭐 싱싱한 놈 이면 당연히 비린내가 덜 나겠지만 냉동고에서 미라가 되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거의 쉬어빠져서 흐물 해져 가는 묵은 김치가 있어서 수돗물에 박박 헹궈서 냄비에 넣고,
양파를 듬성듬성 썰어 올린 후 그 위에 고등어를 깔아 눕혔어.
그리고 멸치육수 물에 다진 마늘과 다진 생강, 조림간장, 고춧가루, 맛술, 올리고당, 집된장을 휘휘 섞어서 그 위에 끼얹어 주었지.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쯤 위에 잘게 썬 파를 솔솔 뿌려 주면 끝.
고등어 김치 찜이 완성되었어.
마침 그렇게 고등어 찜을 완성시키고 있는데 그 복권방 노친네가 들어온 거야.
노인은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그걸 달라고 하더군.
아, 이건 좀 미안한 일인데.
물론 오늘의 메뉴 이긴 하지만 한참 된 냉동 고등어를 재활용 차원으로 한 것인데.
뭐 그렇다고 장사하는 처지에 거부할 수도 없고.
다행히 노인은 밥 한 공기와 고등어 김치 찜을 맛나게 드셨어.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노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넸어.
그런 경우는 참 드문 일이라서 난 사실 당황 했지.
- 이 고등어 찜 참 맛납니다. 사장님은 어디서 이런 걸 배우셨지요?
이거 참, 뭐 그게 대단한 조리법도 아니고 거의 모든 생선조림류에 쓰는 방법 이긴 한데…….
그렇다고 노친네께 사실대로 ‘그거 다 폐기 직전 식재료 재활용입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했다간 욕먹을 일이잖나.
난 최대한 정중한 목소리로 그 고등어 찜은 어머님이 어릴 적에 많이 해주신 것을 배워서....라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했어.
어릴 적에 고등어 찜을 먹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긴 하지만 알 게 뭐야.
게다가 그 시절에 어머니가 쌀뜨물을 썼는지 심지어 먹기도 어려운 우유를 쓰셨는지 내가 알 도리는 없지.
그래도 뭐, 원효대사 해골물이라 하지 않나.
마음먹기 따라서 그 빤한 조리법이 노친네께 옛날 추억을 더듬게 할 수 있다면 뭐....
- 오랜만에 집밥 같은 밥을 먹어서 고맙수.
사실 이따금 오늘의 메뉴로 나오는 스파게티 인가 그런 거 하고 뭔가 밍밍한 서양요리 들은 내 입맛은 아니거든.
- 네? 아니 그럼 어르신. 드시고 싶으신 걸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 뭐 세상살이라는 게, 내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으며 살 수 있나.
주는 대로 먹고사는 게지. 어쨌든 오늘 고등어찜 정말 입맛에 맞았수. 잘 먹었어.
노친네가 돌아가고 나서 난 좀 죄송스러웠어.
앞으론 폐기 전 식재료 재활용은 생각을 해야 할까 봐. 사실 이 고등어란 놈이 좀 묘해.
어릴 때는 정말 신물 나게 많이 먹은 게 고등어거든.
그땐 고등어가 정말 쌌나 봐.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 해역에서 많이 안 잡혀서 노르웨이 양식 고등어를 사 올 정도잖아?
고등어가 너~무 먹고 싶단 사람은 못 봤지만, 이게 또 없으면 서운한 생선이거든.
큰돈 안 들이고도 맛있는 한 끼 반찬이 되고 적당한 기름기에 얼마나 담백해.
말로만 들은 터키의 고등어 한 마리 집어넣은 샌드위치는 정말 궁금한 맛이야.
오래전 제주에 처음 갔을 때 제주토박이 분들은 고등어를 잘 안 먹었다고 들었어.
워낙 많이 잡히니 도미 정도라야 먹어주지 고등어는 막 밭 근처에 버려서 비료로 썼다고 하더군.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제주도에서 고등어 먹으려도 꽤 비싸잖아?
사실 얼마나 국민 생선이면 내륙인 안동에서 안동 간 고등어가 전통음식이겠어.
그런데 요샌 고등어가 귀하신 몸이 되었으니 좀....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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