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 식당 16

어머니와 고등어

by 능선오름

이따금 밤늦은 식당에 들르곤 하는 할아버지가 있었어.


근처 길가에 있는 조그만 복권방 주인이라고 하던데,

노인이 밤잠이 없어서 그런지 다른 가게들 보다 훨씬 늦게 까지 문을 열어놓은 모양이더군.

그 노인은 늘 말없이 늦은 새벽에 식당에 들어와서 별다른 망설임 없이 늘 그날의 메뉴를 시켜 먹곤 했어.


귀찮게 다른 걸 시키진 않으니 감사하기는 한데,

워낙 우리 식당의 그날의 메뉴는 대개 냉장고 안의 낡은 식재료가 더 낡아서 폐기되기 전에 처분을 하는 스타일이라 좀 미안하곤 했지.

물론 이왕이면 신선한 식재료를 쓰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손님들 취향에 따라 오락가락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식재료가 쌓이곤 하거든.

그날은 냉동실을 정리하다 보니 정체 모를 나무토막 같은 것이 나왔어.

이게 뭘까 싶어서 비닐봉지 채 수돗물에 담가놓았다가 약간 녹은 상태에서 보았더니,

오래전에 누가 보내줘서 손질만 하곤 그대로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고등어였어.


나무토막처럼 얼어버린 고등어를 보니 아무리 냉동고지만 그래도 이제는 처리를 해야 할 것 같았지.

반쯤 녹다 만 고등어를 쌀뜨물에 담가 놓았어.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녹이면 비린내가 좀 잡히거든.

그리곤 건져서 날짜 다되어 가는 우유를 그릇에 붓고 고등어를 삼십 분 정도 담갔지.

이러면 살이 좀 더 단단해져서 잘 풀어지지 않고 비린내도 더 잡을 수 있거든.


뭐 싱싱한 놈 이면 당연히 비린내가 덜 나겠지만 냉동고에서 미라가 되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거의 쉬어빠져서 흐물 해져 가는 묵은 김치가 있어서 수돗물에 박박 헹궈서 냄비에 넣고,

양파를 듬성듬성 썰어 올린 후 그 위에 고등어를 깔아 눕혔어.

그리고 멸치육수 물에 다진 마늘과 다진 생강, 조림간장, 고춧가루, 맛술, 올리고당, 집된장을 휘휘 섞어서 그 위에 끼얹어 주었지.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쯤 위에 잘게 썬 파를 솔솔 뿌려 주면 끝.

고등어 김치 찜이 완성되었어.

마침 그렇게 고등어 찜을 완성시키고 있는데 그 복권방 노친네가 들어온 거야.


노인은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그걸 달라고 하더군.

아, 이건 좀 미안한 일인데.

물론 오늘의 메뉴 이긴 하지만 한참 된 냉동 고등어를 재활용 차원으로 한 것인데.

뭐 그렇다고 장사하는 처지에 거부할 수도 없고.

다행히 노인은 밥 한 공기와 고등어 김치 찜을 맛나게 드셨어.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노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넸어.

그런 경우는 참 드문 일이라서 난 사실 당황 했지.


- 이 고등어 찜 참 맛납니다. 사장님은 어디서 이런 걸 배우셨지요?


이거 참, 뭐 그게 대단한 조리법도 아니고 거의 모든 생선조림류에 쓰는 방법 이긴 한데…….

그렇다고 노친네께 사실대로 ‘그거 다 폐기 직전 식재료 재활용입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했다간 욕먹을 일이잖나.

난 최대한 정중한 목소리로 그 고등어 찜은 어머님이 어릴 적에 많이 해주신 것을 배워서....라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했어.


어릴 적에 고등어 찜을 먹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긴 하지만 알 게 뭐야.

게다가 그 시절에 어머니가 쌀뜨물을 썼는지 심지어 먹기도 어려운 우유를 쓰셨는지 내가 알 도리는 없지.

그래도 뭐, 원효대사 해골물이라 하지 않나.

마음먹기 따라서 그 빤한 조리법이 노친네께 옛날 추억을 더듬게 할 수 있다면 뭐....


- 오랜만에 집밥 같은 밥을 먹어서 고맙수.

사실 이따금 오늘의 메뉴로 나오는 스파게티 인가 그런 거 하고 뭔가 밍밍한 서양요리 들은 내 입맛은 아니거든.


- 네? 아니 그럼 어르신. 드시고 싶으신 걸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 뭐 세상살이라는 게, 내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으며 살 수 있나.

주는 대로 먹고사는 게지. 어쨌든 오늘 고등어찜 정말 입맛에 맞았수. 잘 먹었어.


노친네가 돌아가고 나서 난 좀 죄송스러웠어.

앞으론 폐기 전 식재료 재활용은 생각을 해야 할까 봐. 사실 이 고등어란 놈이 좀 묘해.

어릴 때는 정말 신물 나게 많이 먹은 게 고등어거든.

그땐 고등어가 정말 쌌나 봐.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 해역에서 많이 안 잡혀서 노르웨이 양식 고등어를 사 올 정도잖아?

고등어가 너~무 먹고 싶단 사람은 못 봤지만, 이게 또 없으면 서운한 생선이거든.

큰돈 안 들이고도 맛있는 한 끼 반찬이 되고 적당한 기름기에 얼마나 담백해.

말로만 들은 터키의 고등어 한 마리 집어넣은 샌드위치는 정말 궁금한 맛이야.


오래전 제주에 처음 갔을 때 제주토박이 분들은 고등어를 잘 안 먹었다고 들었어.

워낙 많이 잡히니 도미 정도라야 먹어주지 고등어는 막 밭 근처에 버려서 비료로 썼다고 하더군.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제주도에서 고등어 먹으려도 꽤 비싸잖아?

사실 얼마나 국민 생선이면 내륙인 안동에서 안동 간 고등어가 전통음식이겠어.

그런데 요샌 고등어가 귀하신 몸이 되었으니 좀.... 슬퍼.






이미지 네이버 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심야 식당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