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 식당 18

소소한 프러포즈

by 능선오름


그 진상커플이 한동안 식당에 안 보여서 또 싸웠나 어쨌나 했었는데,

어느 날 진상 사내 녀석이 혼자 식당에 나타났어.

그래서 속으로 결국 그리 다투더니 헤어졌나 했지.


사내 녀석은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으로 그날의 메뉴를 먹고 있더니,

느닷없이 비장한 얼굴로 내게 속삭이듯 말을 거는 것이었어.


- 사장님. 저 죄송한데 혹시 여기서 스테이크도 가능한가요?


난 속으로 역시 그러면 그렇지. 네놈 이 어째 조용하다 싶었다 생각을 했어.

하다 하다 못해서 별거로 다 골탕을 먹이려고 하는 군.


- 이봐요, 그동안 별의별 걸 다 해드리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여긴 그냥 백반집이오. 밥집이라고요.

그런데 스테이크.... 못 할 건 없지만 굳이 왜 여기서?

여기 평상시에 스테이크용 고기를 가지고 있을 턱이 없잖소?

레스토랑이 흔한데 굳이 왜.


- 사장님. 죄송해요. 실은 제 여자 친구 아시죠. 그 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하려고 하는 겁니다.


- 하, 이보쇼. 그러려면 더욱더 좀 좋은 레스토랑을 가셔야지.

그렇잖소? 이런 뒷골목 밥집에서 스테이크 썬다고 레스토랑 되는 거 아니잖아.

프러포즈를 밥집에서 했다고 평생 욕먹고 싶소?


- 하지만, 저희가 처음 데이트를 시작한 곳이 여기이기도 하고 두루두루 추억이 있는 장소라서 꼭 여기서 하고 싶습니다. 사장님. 부탁드립니다.


아, 몰라. 알 게 뭐야. 그거야 지네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뭐.

대신 미리 날짜 정해놓고 반드시 하루 전에 연락을 해 놓아야 나도 준비를 한다고 했어.

하다 하다 밥집에서 스테이크라니……. 싶긴 하지만.

뭐 사실 스테이크가 별건 아니야.

일단 소고기 값이 만만치 않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레스토랑이나 가야 먹는 음식이 곤 하니 뭔가 엄청 고급진 느낌을 주는 것 이긴 하지만,

아, 물론 레스토랑 셰프들이 들으면 매우 짜증 나는 말이란 건 알아.

스테이크가 단순한 프로세스의 음식 같이는 보이지만 그 과정은 절대 단순하진 않거든.

원래 식재료가 심플할수록 그것으로 맛을 내기는 어려워.


그래도 뭐. 사실 뭐 그냥 고기 구워 먹는 거잖아.

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사람들한테는 그냥 밥 먹는 거지 별게 있느냐 말이지.

일단 이왕에 이벤트용 식사를 하는 것이니 돈은 맞춰 준다 했으니까,

돈 아끼지 않고 한우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고기를 샀어.

드라이에이징이란 말 그대로 고기를 낮은 온도에서 말려가며 숙성시키는 거야.


이론은 뭐 경찰 과학수사대에서 사망자 추정시간 예측 하는 것과 비슷한 과학이지.

동물이 죽으면 당연 사후강직이 일어나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단백질 분해효소가 근육을 분해시키면서 물렁하게 만드는 현상.

거기서 더 오래 진행되면 당연히 부패가 되겠지.


좀 무서운 이야기 같지만 사실 같은 거야.

드라이에이징 고기가 비싼 것은 그 과정에서 고깃덩이의 겉껍질 부분이 바싹 말라서 못 먹게 되면서 버리는 부위가 절반에 가깝기 때문이지.

같은 양의 고기가 절반이 되면서 육즙이 내부로 갇히게 되고 아미노산이 증가하면서 감칠맛을 주는 그런 원리인 거야.

간혹 누린내가 날 수도 있어서 호불호가 있지만 씹을 때 감촉은 정말 찰진 맛이 나지.


고기를 준비하고,

곁들임 채소로 아스파라거스 와 적양파, 컬리 플라워, 방울양배추 와 방울토마토, 양송이버섯과 미니 당근을 준비했어.

사실 뭐 그런 거야 다른 흔한 재료로 대체해도 맛이야 거기서 거기지.


하지만 이벤트잖아.

자그만 채소류가 곁들여지면 그럭저럭 보기가 좋은 거고, 그래야 뭔가 이벤트스러운 거니까.

뭐 서양식 스테이크라는 게, 좋은 고기 잘 구워서 소스만 주룩주룩 뿌려주면 대충 비슷하잖아.

소스는 흔하게 슈퍼에서도 파는 A1 소스라는 게 있는데,

이건 브랜드 이름 이자 스테이크 소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뭐, 난 내 맘대로 요리를 하니까 내 맘대로 소스를 만들어 얹을 거야.

양파, 토마토, 청양고추를 송송 다지고 간장, 설탕, 물, 비네거 식초, 포도씨유를 섞어서 쉐키쉐킷.

이렇게 하면 끓인 소스와 달리 깔끔한 맛의 소스가 되지.


고기는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준비하고,

채소류는 잘 다듬어서 썰고 가염버터를 준비하면 이제 끝이야.

식전 수프는 일전에 만들곤 하던 토마토 베이스의 야채수프로 준비했어.

조리 라고 할 건 별거 없는데 준비할 게 좀 많아서 귀찮아. 내가 꼭 하루 전에 미리 연락을 달라고 한건 고기를 냉장숙성 시키기 위해서야.

이미 숙성이 된 드라이 에이징 이라 해도 칼질을 하고, 거기에 올리브 오일을 적시고 로즈메리 잎 같은 허브를 함께 넣어두면 아주 훌륭한 향기가 고기에 스며들거든.

그러니까 미리 허브 올리브 오일에 고기를 '절여'두는 셈이야.






이미지 네이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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